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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법의 변질


'무아, 윤회, 열반, 상락아정' 등의 불교용어에 대한 오해와 진실

<상락아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붓다는 ‘무아(無我)’라고 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 교리를 고수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교단에서 ‘무아’의 교리에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아’이기는 하지만 어떤 개체적 성질을 지닌 개아는 존재할 거 아니냐? -인상(人相)-
뭔소리냐? 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내가 소멸해버리는데 그럼 뭐하러 수행하느냐?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럼 나는 해탈을 추구하지 않고 중생으로 남겠다. -중생상(衆生相)-
깨달음이란 업을 완전히 정화해서 순수 영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순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 -수자상(壽者相)-

이렇게 ‘무아’에 대한 반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가장 지독하게 공격한 곳이 브라만교(지금의 힌두교)입니다.
신에게 헌공물을 올리며 제사를 지내고 그 복을 받는 은총 신앙이니까 복을 빌어야 할 대상인 신이 존재해야 하고, 복을 받는 주체인 ‘내’가 있어야 합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무아를 깨달아 해탈해야만 한다면 기복신앙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그렇게 수많은 종교단체의 무자비한 공격을 초기대승까지는 열심히 방어를 합니다.
초기대승의 꽃이라고 불리는 <금강경>이 ‘무아’의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이때 만들어집니다.
금강경에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라는 문장이 수없이 반복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승의 이론이 변천하면서(정확히 말하면 붓다가 가르친 교리가 변질되면서) 은총신앙이 후기 대승불교(화엄경류, 법화경류, 정토경류를 만든 불교)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신적 능력을 가진 보살이라는 신들이 만들어지고 붓다도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열반에서 되돌아와 법당에 앉아 공양을 올리면 받아먹고 복덕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이제 ‘무아’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해탈해야 한다는 교리는 현실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복을 주는 붓다도 영원히 존재해야 하고 복을 받는 나도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열반이라는 개념에 수정이 가해집니다.

초기불교에서 열반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대승의 은총신앙에서는 열반을 성취했어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해야 할 일은 다시 몸을 받아 세속에 내려와서 중생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열반이라는 것이 무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수 영혼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며 뭇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노력 봉사해야 하는 상태로 바뀝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 붓다는 수 억겁 전에 붓다가 되었지만, 순전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 석가모니 몸으로 태어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다시 열반에 듭니다.
즉 열반이라는 것이 ‘무아’를 깨달았지만 ‘순수한 아’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언제든지 몸을 만들어 인간계에 태어날 수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후기 대승불교인 <대승열반경>에서 열반의 개념이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바뀌게 됩니다.

상(常); 열반은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상태다.
락(樂); 그 열반의 상태는 지복의 상태다.
아(我); 그 상태는 ‘무아’가 아니고 ‘아’이다.
정(靜): ‘아’라는 상태는 중생들이 경험하는 ‘아’가 아니다. 즉 이기적인 ‘아’가 소멸하고 탐진치가 완전히 제거된 고요하고 깨끗하고 순수하다.

남방에서 붓다는 이미 가고 없는 사람입니다.
남방에서 열반은 존재의 소멸은 아니더라도 하여튼 몸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영원한 해탈입니다.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완전한 소멸인지 붓다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아’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열반이 도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붓다는 “네가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면 스스로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다).’ 또는 ‘설명해봐야 희론에 불과하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붓다 당시에 아라한이 된 사람은 법구경이야기에 따르면 수십만 명은 되어 보이지만 ‘무아’라는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기 대승에 들어와서 그렇게 과거 선배들이 지키려고 했던 붓다의 말씀이 불순한 의도(죽기싫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믿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나와 나의 확장인 내가 속한 집단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들어주고 구원해주면 좋갰다 등등과 같은 개인적 집단적인 탐진치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개입된 의도)에 의해 왜곡되면서 불교는 바야흐로 샤머니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9재, 천도재,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등등....
어~으~아~오~!(이것은 감탄사가 아닙니다. '범패,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윤회(輪廻), 열반’의 교리가 왜곡되어 ‘상락아정(常樂我淨)’식으로 되어버린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립니다.

[출처 : 무념스님 포스팅, https://www.facebook.com/mahabhante/posts/552003585535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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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중요 용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분명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1》 무아無我 vs 아낫따an·Attā

무아無我는 붓다가 설법하실 때 사용한 고대인도어(빠알리어) 아낫따an·Atta(산스크리트어 an·Atman)를 중국어(한문)로 번역한 것이다. 아낫따an·Attā(아낫트만an·Atman)는 '앗따Atta(아트만Atman;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 즉 실체)가 아니다(an)'(비실체)라는 뜻이다.

영어 un·happy의 un처럼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an은 단어 앞에 붙는 부정형 어두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 붙는다. 닛짜Nicca처럼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는 a가 붙는다. 아닛짜a·Niccas는 '닛짜Nicca(항상)하지 않다(a), 즉 매 순간 변한다'라는 뜻이다. 아닛짜a·Nicca는 '무상無常, 즉 항상(常)함이 없다(無)'로 한역했는데, 무상無常은 별로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무아無我, 즉 나(我)는 없다(無)'라는 말과 '아낫따an·Attā, 즉 나(를 포함하여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앗따Attā 또는 아트만Atman)가 아니다(an)'라는 말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불교佛敎, 불법佛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잘 이해한 후에는 그 차이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이란 단지 무상(a·Nicca;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함), 고(Dukkha; 근원적인, 즉 근본 원인이 있는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음), 무아(an·Attā, an·Atman; 비실체, 즉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 또는 주체가 아님)라는 특성을 지닌 '몸(물질작용 무더기; 색온)과 마음(정신작용 무더기; '수상행식'온)'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작용이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 흐름 현상(줄임말로 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붓다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하고 독립적인(독자적인) 존재'(이를 철학,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실체'라고 함; 고대인도어로는 앗따Attā 또는 아트만Atman)로서의 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서의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탁월한 분석과 명료한 설법으로 대중을 제도한 논의제일 제자, 마하깟짜야나(마하가전연 존자)가 붓다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까?"

“그는 자신과 세상이 지금(현재순간, 매 순간) 사라지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세상과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또한 그는 자신과 세상이 현재순간(매 순간) 일어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세상과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나와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하는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나와 세상이 지금(현재순간, 매 순간) 일어나고(生) 사라지는(滅) 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내가 그리고 세상이 있다(有)는 것에도 없다(無)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이른바 양극단, 생멸, 유무, 상견과 단견 ... '나'를 기준으로한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좋고 싫음, 사랑과 미움 ... 등등에서 벗어나라는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다.

붓다가 듣는 사람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와 처지(처한 환경, 상태)에 맞춰서 설하신 수많은 가르침은, 사람들이 무지(인식의 착각, 의식과 무의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를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우주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를 수행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깊이 관찰)하여 통찰지를 계발함으로써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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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어도단言語道斷
; 열반(특히 무여열반/빠리닙바나/반열반)의 상태, 윤회를 벗어난 상태를 말(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다)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이른바 석가모니 부처님, 석가모니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불佛, 즉 불타佛陀'는 고대인도어(산스크리트어 & 빠알리어) 붓다Buddh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우리말(한국어, 한글)로는 '부처'라고 음역한다.

붓다는 자신과 중생(생명의 무리)을 포함한 우주자연을 수행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직접 통찰(깊은 관찰)한 현생 인류 중 최초의 사람이다. 붓다는 자신이 발견한(깨달은) 우주자연의 실상(실제 상태, 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우주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를 법法(고대인도어로 담마Dhamma 또는 다르마Dharma)이라고 지칭했다. 붓다는 법法을 깨닫고 나서 법法을 가르쳤다.

법法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빠알리어 담마Dham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달마達磨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물 수水 + 갈 거去'의 합성어인 법法은 '물 흐르듯 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물이 자연의 법칙(질서, 이치)에 따라 흘러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글자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되 거기에는 일정한 길(질서, 이치, 법칙)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법法은 '우주자연의 질서, 우주자연의 이치, 우주자연의 법칙'을 의미하는 단어다.

노자老子는 우주만물에 대해 깊이 사유한 최초의 중국인으로 우주자연의 근본 질서 또는 이법理法(이치와 법칙)을 도道라고 이름지었다. 노자는 우주자연의 근본 이치(원리)와 법칙(질서)인 도道가 개체적으로 구현된 현상을 덕德이라고 이름 짓고, 도道와 덕德에 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노자가 가르친 도道와 붓다가 가르친 법法은 그 내용(깨달음의 내용, 즉 도道 또는 법法을 깨달은 내용)이 일맥상통하다. 도道가 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우주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표현이라면 법法은 과학적(경험적·합리적)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노자의 가르침에는 '도道의 경지(완전한 깨달음의 경지, 완전한 행복의 경지)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도道 또는 법法을 깨닫는 방법; 실천법, 수행법)과 '나(己, 我, ego)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인 자비慈悲(Metta-Karuna)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노자는 일생 동안 말로 (자세히, 상세히, 소상히, 친절하게) 가르치고 글로 쓰는 걸 싫어했지만, 설산(히말라야?)을 향해서 떠나는 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만난 국경수비대 제자의 간곡한 권유로 도덕경으로 알려진 5천 여자 정도로 된 도道경과 덕德경을 저술하여 제자에게 남겼다.

도道경은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한다. 이 구절은 '말(언어)을 사용해서 도道라고 표현 가능可한 도道는 항상常한(진정한, 보편적인, 예외가 없는, 완전한) 도道가 아니다非'라는 뜻이다.

인간의 말(언어)이란 인류가 지구 상에 존재한 이래 인간의 물질(육체)적 정신적 경험을 기호화(개념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언어는 실재(여기서는 道)가 아니라 실재의 근사치일 뿐이다. 때문에 도道 또는 득도의 경지(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상태, 도道 또는 법法을 완전히 깨달은 경지/상태l; 열반의 경지/상태, 윤회를 벗어난 경지/상태)를 말(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말할 길이,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다).

그러나 도道의 경지(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상태)에 도달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도道 또는 법法을 완전히 깨닫는 방법을 언어로 가르치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500년 전에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가 그리하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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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아無我 윤회輪廻
;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한 주체가 없는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현상, 생명체; 중생-생명의 무리)과 무정(정신작용이 없는 존재; 무생물, 물질현상, 물체; 물질 무더기)의 윤회'(소위 무아 윤회)

Q (GMS님) :불교는 무아를 가르치는데 그러면서도 윤회를 강조합니다. 무아와 윤회는 상호 모순되는 가르침인 듯합니다. 어떻게 무아이면서 윤회합니까? 어떤 분은 부처님은 윤회를 설하지 않으셨다고도 하던데… 윤회는 부처님 가르침인가요?

Q (JJS님) : 페북에 올리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수양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기회가 되시면 "재생연결식"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Q (DUO님) : 삼보에 귀의합니다. 재생연결식과 윤회에 관한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겨 여쭙니다. 그야말로 잘 몰라서 질문하는 것이니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생연결식은 말 그대로 생의 마지막 의식이 다음 생의 첫 의식과 연결되는 윤회의 고리라고 압니다. 당연히 두 식은 찰나에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생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의 실제기록이 언급된 책을 보니, 죽은 날과 태어난 날 사이에 시간적인 차이가 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 2, 3년이나 혹은 그보다 훨씬 길거나 또는 짧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저는 단순히 생각하여, 재생연결식은 찰나에 이루어 지는 것이므로 사람이 사망과 동시에 새몸을 얻어(어머니의 자궁에 수태되어) 10달 후에 태어나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만...

A : 아래 글은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가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고(깨닫고) 설(설명)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현상, 생명체; 중생-생명의 무리)과 무정(정신작용이 없는 존재; 무생물, 물질현상, 물체; 물질 무더기)의 삼사라samsāra(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윤회輪廻-바퀴처럼 계속 돌고 돎)와 '고정불변한 주체(실체; 앗따Attā, 아트만Atman)가 없는 윤회'(소위 무아 윤회)에 대한 붓다의 지식(교학, 교리)차원의 설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옮긴 것입니다.

"나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이란 단지 무상(a·Nicca;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함), 고(Dukkha; 근원적인, 즉 근본 원인이 있는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음), 무아(an·Attā, an·Atman; 비실체, 즉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 또는 주체가 아님)라는 특성을 지닌 '몸(물질작용 무더기; 색온)과 마음(정신작용 무더기; '수상행식'온)'(이를 '오온五蘊'이라 지칭함)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작용이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 흐름 현상(줄임말로 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붓다(석가모니 부처님)

식識(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오온五蘊('색·수·상·행·식'작용 무더기; '물질色-정신名'작용 무더기) 중 한 부분이자, 십이지연기의 열 두 고리 중 한 부분이다.

매 순간 생멸하는 정신작용과 물질작용 무더기가 인과 연기적으로 상호의존 작용하는 생명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인 중생(생명의 무리) 또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죽는 순간, 매 순간 생멸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작용) 중에서 죽는 순간의 식識('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빠알리어 paṭisandhi-viññāṇa; 이전 생의 마지막 식이자 다음 생의 최초의 식)작용의 인과 연기적 생멸 흐름은,

정신작용('수상행식'작용)이 상호의존(연기) 작용하던 물질작용(사대작용; 몸)과의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이 다하는 순간,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註1],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새로운 물질토대(몸)와 연기(인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생명체(생명현상; 정신-물질 작용 무더기/집적/쌓임의 인과 연기적 생멸 흐름 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의 또 다른 생이 이어진다.

이렇게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포함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현상, 생명체; 중생-생명의 무리)은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정신작용과 물질작용 무더기'('색수상행식'작용 무더기; 오온五蘊)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samsāra; 윤회]을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一生)적으로 계속한다.

이처럼 '윤회(순환; samsāra)의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한 주체 없이(무아; an·Attā),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오온五蘊('색수상행식'작용 무더기; 물질작용과 정신작용 무더기)이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을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一生)적으로 계속하는 것'(이른바 '무아 윤회')이 '붓다가 설(설명)한 윤회, 불교(붓다의 가르침)의 윤회'다.

미시(찰나)적 측면에서 보자면 매 찰나 전개되는 오온의 생멸(생기 소멸) 순환 자체가 윤회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매 찰나 생멸 윤회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거시(일생)적 측면에서 보자면 한 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찰나 사몰심死沒心(또는 재생연결식)이 일어났다(생기했다) 소멸하고,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다음 생에서 오온의 생멸(생기 소멸) 순환을 계속하는 것이 윤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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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정신작용이 없는 존재; 무생물, 물질현상, 물체; 물질 무더기) 또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순환하는 '물질의 사대(지수화풍) 작용 무더기'[註2](물질작용 무더기; 색온)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samsāra; 윤회]을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一劫)적으로 계속한다.

여기서 삼사라samsāra는 '순환(circulation), 계속된 흐름(continuous flow)'이라는 뜻을 지닌 고대인도어다. '바퀴(輪)처럼 계속 돌고 돎(廻), 바퀴(輪)처럼 회전(廻)하면서 계속 굴러감' 이라는 뜻을 지닌 윤회輪廻는 부처님이 사용히신 고대인도어 삼사라samsāra를 한문(중국어)으로 번역한 것이다.

생명체가 한 번 생로병사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생一生(a life cycle period)'이라하고, 우주가 한 번 성주괴공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겁一劫(a world cycle period)'이라고 한다. 겁劫 또는 겁파劫波는 고대인도어 깝빠kappa를 한문(중국어)으로 음사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루빠(色; 물질, 물질작용) 무더기'(색온)는 수정란 단계에서 하나의 세포로 존재한다. 하지만 계속 분열하며 집적되어 태어날 때는 약 3조 개의 세포 무더기(집적/쌓임)가 되고, 어른이 되면 평균적으로 약 60조 개까지 늘어난다. 그 중 약 50만 개의 세포가 1초 간에 소멸되고 동시에 약 50만 개 세포가 생기(생성)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 없이, 그런 일상적인 매 순간의 생멸(생기 소멸) 순환[삼사라; 윤회]의 반복 과정으로 '나'라는 생명체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이 유지된다. 나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을 구성하는 세포의 일상적 수준의 생멸 순환[삼사라; 윤회] 주기는 (세포의 기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5-30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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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이 우주가 생기生起하여 팽창하는 작용을 현대 물리학에서는 ‘빅뱅Big-Bang’이라고 표현한다.

빅뱅 시, 물질이 생기하면서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과 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시공간(시간-공간)과 물질은, 부처님의 표현으로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 양자역학의 표현으로는 ‘시時-공空-양자量子(질량)수 관계', 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의 표현으로는 '시공간(시간-공간)과 질량의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물질-시간-공간의 팽창 흐름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매 순간 변하고 팽창하며 흐르는 시공간(시간-공간)과 함께 물질이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분산하여 오늘 날 우리가 보는 우주(해, 달, 지구, 별, 은하 등의 물질 그리고 시공간_시간-공간)가 되었다.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르면, 현재의 우주는 생기하여 팽창 중에 있지만 인연(직간접 조건)이 다하면 수축하여 소멸하고 다시 생기하는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의 순환(삼사라, 윤회輪廻, 바퀴輪처럼 돌고 돎廻)을 계속한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대작용('지수화풍'작용, 물리학 표현으로는 우주 4대 상호작용, 즉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 중력 상호작용)이 연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다른 표현으로 인연 화합하여) 물질이 생기하면 그와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물질은 시간-공간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인 순환(삼사라, 윤회)을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一劫)적으로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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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물질세계의 물질-시간-공간은 한 세트로 함께 생기 소멸한다.

생명체가 죽는 순간, 즉 생명체의 정신작용('수상행식'작용, 인식작용)이 인식정보(여섯 감각)를 의존하고 있던 육근(여섯 감각 기관; 육신, 몸, 물질)과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물질세계의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정신(정신작용)은 물질(물질작용)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의 시간-공간과의 관계도 한 세트로 함께 끊어진다.

그리고 정신작용('수상행식'작용 중에서 금생의 마지막 식이자 다음 생의 최초의 식인 '재생연결식')은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1년 뒤든 10년 뒤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상관 없이 시간-공간을 초월하여)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 감각 기관)에 인식정보(감각)를 의존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작용, 인식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一生)적으로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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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2] '물질의 사대(지수화풍) 작용 무더기'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은 (1)무거움(중력 또는 질량) 작용, 지地[pathavi] 작용 (2)‘수축, 응축, 인력, 잡아당김’ 작용, 수水[apo] 작용 (3)‘팽창, 척력’ 작용, 풍風[vayo] 작용 (4)‘변화, 열’ 작용, 화火[tejo] 작용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물질色을 형성하는 네四 가지 기본大 작용(또는 요소)'을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에서는 ‘사대四大 또는 사대색四大色’이라고 표현한다.

"루빠rūpa(물질, 물질현상,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징이다."라는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

물질(물체)은 정신과는 달리 물질세계의 공간을 차지하는 형상(형태)을 지니기 때문에 '형상의 변화'(변형)는 물론이고 물질(물체)이 차지하는 '공간의 변화'(변형;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자들이 설명하는 공간의 휘어짐, 빅뱅 이후 우주 공간의 팽창, 수축)' 또한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특성(성질)이다.

부처님이 설(설명)하신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작용인 사대四大(지수화풍地水火風) '작용'을 요즘 시대의 표현인 물리학 용어를 빌려서 ‘힘’으로 표현하는 쪽이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의미에도 가깝다. 마하부따루빠mahā-bhūta-rūpa(한문으로는 사대색四大色으로 번역함)를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물질色을 형성하는 네四 가지 기본大 작용(힘)’이다

참고로 현대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물질세계를 지배하는(형성하는) 4대 힘(작용)은 '강력(강한 상호작용), 약력(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전자기 상호작용), 중력(gravity 상호작용)'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4대 힘(작용)'이라는 설명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사대 작용'이라는 설명이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몸(육신, 육체)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를 더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이 사용하신 용어로는 깔라빠kalāpa)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지地[pathavi, 무거움, 중력 또는 질량] 작용(힘)‘이 있다. 이 무거움(질량, 地) 작용은 다른 작용, ’수水[apo, 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풍風[vayo, 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화火[tejo, 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로서의 원자는 없다. 원자(깔라빠)로 구성된 모든 물질(물체, 육체)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 그리고 깔라빠(원자)로 구성된 모든 물질(루빠; 물체, 몸)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 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 윤회]하는 ’사대四大 작용(힘)’의 ‘역학적力學的 인과 연기 연속체’ 또는 ‘인과 연기적인 흐름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이처럼 사대(지수화풍) 작용이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면(연기 작용하면, 인연 화합하면)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라고 인식된다.

이 각주 [註2]는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사대(지수화풍) 작용'에 대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 옮긴 것입니다.

GMS님, JJS님, DUO님의 질문에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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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스님 포스팅에 언급된 바와 같이, ‘무아(無我), 윤회(輪廻), 열반’의 교리가 왜곡되어 ‘상락아정(常樂我淨)’식으로 되어버린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무아, 윤회, 열반, 상락아정' 등과 같은 불교의 중요 용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분명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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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 : 지리산 실상사 사시불공
사진(우) : 49재, 천도재, 영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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