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우리가 희망을 잃을 즈음에
봄은 느릿느릿 나타난다.
옷자락에 야생화들을 끌면서
안개의 장막을 걷고
가느다란 비를 데리고
늦은 손님으로 와서
민들레 숨결을
우리 귀에
불어넣는다.
그래도 우리는 용서해 준다.
추위에 웅크린 겨울의
길들을 벗어나
우리의 충실한 스웨터들을
벗어던지고
두 팔을 활짝 벌려
봄을 반긴다.
- 린다 패스턴 <봄> (류시화 옮김)
계절은 우리를 바꾼다. 하나의 느낌에서 다른 느낌으로. 겨울이 아직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봄을 노래하는 것은 죄인가. 추위와 절망이 강타해 얼굴에 멍이 들 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 봄과 희망을 노래하는가. 촉토족 인디언은 ‘나는 겨울 한가운데서 여름을 보네’라고 노래했다.
내 집필실은 80년 된 목조 주택이라서 겨울이 혹독하다. 잠시 얹혀 살기 위해 왔던 사람이 일주일 만에 떠날 정도이다. 11월만 되면 내가 인도로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해마다 약속 날짜를 잊어버리는 봄이 야속하다. 희망은 기척 없는 나뭇가지에 얼어 있다. 삶은 우리에게 겨울을 견딜 것을 요구하며, 우리는 견딘다. 그러면 봄이 그 보상으로 주어진다. 희망을 거의 잃을 즈음에 언 연못 모서리에 봄물이 들 것이다.
어느 날 마당으로 나가면 봄이 와 있으리라. 늦게 온 것이 미안한 봄은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오리라. 제비꽃, 민들레가 웃으며 반긴다.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미는 것은 같은 자리에서 20년 넘게 피는 마늘꽃이다. 그토록 기다린 봄이 온 것이다. 다 용서할 수밖에 없다. 웅크린 마음을 펴고 두 팔 벌려 반길 수밖에 없다. 당신이 늦게 온다 해도 나는 용서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꼭 오라.
목판화_Inagaki Akemi, <이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