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변질되지 않은 붓다의 가르침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Gautama Buddha, BC 624 ~ 544)를 바르게 알고자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신화나 전설로서의 붓다가 아닌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붓다와 붓다의 변질되지 않은 바른 가르침(正法)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자하는 노력들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신화와 전설로 가득 찬 여러 나라의 불전문학佛傳文學... 세월이 흐르면서 가필, 윤색된 경전과 위경(위작 경전), 특히 붓다 사후 500년이 지난 AD 1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작자 미상의 수많은 위작 경전들... 붓다의 가르침(담마; 경전)에 대한 왜곡이 포함된, 정각을 이루지 못한 자들이 저술한 논장(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주해서, 복주서 등의 해설서)... 등에 기록된 것들을 붓다의 가르침 또는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붓다는... 당신 사후에 ‘당신(붓다)에 대한 우상화’(형상의 우상화, 붓다-부처의 신격화)와 ‘당신(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우상화’(관념의 우상화, 가르침의 절대화)를 통해서... 종교(Religion), 종파, 전통 따위를 만들고 그것에 집착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경계했다. 붓다는 종교(Religion) 창시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의사를 누누이 밝히고 강조했다. 종교(Religion)로서의 여러 불교 그리고 여러 종파와 여러 전통은... 붓다가 만든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사실 붓다는 종교인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과학자에 가깝다.
붓다는... ‘자신은 법(法; 실상과 진리), 즉 우주자연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를 만든 자(신神)’가 아니라... 과학자가 관찰 경험을 통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듯이...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의한 깊은 관찰 경험을 통해서 법(法; 실상과 진리)을 발견하여 깨달은 자일뿐이고, 그 깨달음을 향해가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일 뿐이며... 자신의 가르침은 그 깨달음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 또는 강 건너 깨달음의 언덕(해탈의 언덕; 완전한 자유와 평화,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완전한 행복의 경지)을 향해 가는데 필요한 뗏목일 뿐이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부처)에 대한 우상화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우상화가... 붓다 사후에 2500년 동안, 여러 가지 형태(위작된 경전.. 왜곡된 논장, 아비담마, 아비달마.. 불상, 탱화.. 왜곡된 전설 등)로 계속되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붓다의 생애 속에는 신화적, 전설적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기록했다는 경전들 속에도... 후세 사람들의 가필加筆, 윤색潤色, 각색脚色과 위작僞作이 매우 많다. 후대에 변질, 변형된 이러한 요소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서의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에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깨달음의 언덕(해탈의 언덕; 완전한 자유와 평화,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완전한 행복의 경지)을 향해 가는데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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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의 성도成道 : 붓다가 정각正覺에 이르기까지
"붓다는 삼명三明(세 가지 밝은 지혜)으로 완전히 바르게 깨달았다."
붓다는 고대인도의 소수 지배계층인 브라만계급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붓다가 활동했던 갠지스강 중북부지역의 고대인도 민중어인 마가다Magadha어로 가르침을 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가다어는 사장되었다. 그런데 이 마가다어와 가장 유사한 고대인도 민중어인 빠알리Pāli어를 사용해서 붓다의 가르침(붓다가 설한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경에서 부터 마지막 설법인 대반열반경에 이르기까지)을 기록하여 모아 놓은 것이 빠알리어 경장經藏(경전 모음, 니까야Nikāya)이다.
붓다가 무상정등각(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 줄임말로 정각)을 이루기 전후의 과정, 이른바 붓다의 성도成道(정각 이룸) 과정은 빠알리어로 기록된 맛지마니까야(中部)의 36번째 경(M36)인 <삿짜까 경(Saccaka Sutta), M36; 이 경은 자이나교교주 니간타의 제자인 삿짜까가 질문한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에 관한 질문에 붓다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짐. 이 질의응답 중에 붓다 자신이 깨달음을 이루게 된 전후 과정을 삿짜까에게 설(설명)한 것이 있음>에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이 경전(삿짜까 숫따)에 있는 붓다의 성도 과정에 관한 내용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수행자를 위한 '4념처-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사띠 확립'의) 단계별 길들임 경(Dantabhūmi Sutta), M125>의 내용을 반영해서 요약 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제 나는 우유죽을 먹어 힘을 얻어서, 모든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마음의 탐색적 작용(위딱까)과 회귀반성적 작용(위짜라)이 아직 있는 상태(마음의 미세한 진동 또는 동요가 아직 있는 상태)에서, 신체 감각(오감각)을 멀리 떠난 삼매에서 생겨난 희열(삐띠)과 행복(숙카), 그리고 청정한 사띠(심일경성)를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더욱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진동, 동요)를 가라앉힌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삐띠)과 행복(숙카), 그리고 청정한 사띠(심일경성)만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더욱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비교적 거친) 희열(삐띠)을 가라앉힌 삼매에서 생겨나는 행복(숙카), 그리고 청정한 사띠(심일경성)만을 갖춘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더욱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괴로움(둑카)도 즐거움(숙카)도 뛰어넘은 깊은 삼매에서 생겨나는 깊은 고요함(평정심; 우빽카)과 깊고 청정한 사띠(심일경성)만을 갖춘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다.
이와 같은 선정에 들었다 나옴으로써 이와 같이 마음이 고요히 집중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삶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다. 이와 같이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상기하여 관찰했다. 한 생, 두 생, 열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세계(우주)가 팽창하고 수축하는 여러 겁의 여러 삶들을 관찰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이름을 가졌고 어떤 모습(용모, 신체)을 가졌고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행복과 어떤 고통을 경험했고 어떤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과 모습을 가졌고.....이처럼 한량없는 인과 연기적인 전생의 삶들을 상기하여 깊이 관찰했다. … 그리고 이렇게 통찰(깊이 관찰)한 것을 깊이 사유했다. … 이것이 내가 초경(初更)에 도달한 첫 번째 지혜다." [이른바 숙명명宿命明]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이러한 지혜(숙명명)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
이와 같이 마음이 고요히 집중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 삶(유정, 중생; 생명의 무리)과 모든 존재(유정과 무정)들의 생기 소멸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다.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한 눈으로 인간을 뛰어넘어 뭇 삶과 모든 존재들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을 보았다. … 그리고 이렇게 통찰(깊이 관찰)한 것을 깊이 사유했다. … 이것이 내가 이경(二更)에 도달한 두 번째 지혜다." [이른바 천안명天眼明]
"이와 같이 마음이 고요히 집중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둑카(苦; 괴로움, 고통, 번뇌)의 인과 연기적인 생기 소멸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지혜로 향하게 했다.
'이것이 중생(아직 깨닫지 못한 생명의 무리)의 실존 양상(실상)인 둑카(苦; 괴로움, 고통, 번뇌)의 삼사라(순환; 윤회)다'[고성제]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중생의 실존 양상(고苦의 순환)이 발생하는 원인이다'[집성제]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둑카(苦; 괴로움, 고통, 번뇌)와 삼사라(순환; 윤회)의 소멸이다'[멸성제]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다.
'이것이 둑카(苦; 괴로움, 고통, 번뇌)와 삼사라(순환; 윤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도성제]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다.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이른바 아라한도의 혜慧 해탈), 미세하게 남아있던 존재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침내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했다(이른바 아라한과의 심心 해탈). 그리하여 모든 욕망(탐)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혐오(진)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치)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생겨났다(이른바 아라한과의 혜慧 해탈).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생사 순환(삼사라;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알았다. 이것이 내가 삼경(三更)에 도달한 세 번째 지혜다." [이른바 누진명漏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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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고타마 보살은 먼저 네 번째 선정에 들었다 나와서... 마음이 고요히 집중되고, 맑고, 밝고, 더러움이 없고, 무엇에 의해서도 장애를 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고타마 보살은... 인과 연기적인 과거 생의 일들을 상기하여 깊이 관찰하고... 뭇 삶(유정)과 모든 존재(유정과 무정)들의 인과 연기적인 생기 소멸을 깊이 관찰하고... 둑카(苦; 괴로움, 고통, 번뇌)의 인과 연기적인 생기 소멸을 깊이 관찰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과 세상(뭇 삶과 모든 존재들)의 실상(실제 모습, 실존 양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한 것을 깊이 사유했다.
달리 표현하면, 고타마 보살은 먼저 사선정四禪定의 네 번째 선정 삼매에서 극대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 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정한 마음상태)를 이용해서,
신수심법身受心法(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거친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 ‘현재에서부터 과거’(12연기 순관), ‘현재에서부터 미래’(12연기 역관)... ‘안과 밖’...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했다. 그리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깊이 관찰)한 것을 깊이 정사유(바르게 사유)했다.
이런 과정으로 고타마 보살은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통찰지(통찰지혜)를 계발했다(닦았다). 그리하여 고타마 보살은 초경에 첫 번째 명지明知(밝은 지혜)인 숙명명을 이루고, 이경에 두 번째 명지인 천안명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미세하게 남아있던 존재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하여... 삼경에는 마침내 지고至高의 밝은 지혜인 누진(멸진)명을 이루고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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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삼명三明(세 가지 밝은 지혜)*으로 정각을 증득한 후... 반조에 들어가서 4주(또는 7주) 동안, 모든 고(苦; 괴로움, 고통, 번뇌)의 완전한 소멸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지고至高의 행복, 완전한 행복, 열반락 속에서... 좌선과 경행을 반복하며 반조하고,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의 성취를 반복하며 정각의 증득을 반조했다. 이렇게 고타마 보살은 고타마 붓다가 되셨던 것이다.
붓다의 성도(정각 이룸)는 출가의 목적인 해탈(모든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남, 완전한 자유)의 완성이며... 현세에서 열반(닙바나Nibbana, 니르바나Nirvana; 완전한 행복)을 실현한 것이다. 성도하기 이전의 고타마를 보살이라고 하고, 붓다(Buddha, 부처; 깨달은 자)가 되신 후에는 세존世尊(바가와Bhagavā, 바가바트Bhagavat)이라고 존칭尊稱되었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줄임말이다. 보리살타菩提薩埵는 붓다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보디삿따(Bodhisatta,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한문으로 음사한 것이다. 보디삿따(보디사트바; 보리살타, 보살)는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자'를 지칭하는 고대인도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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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명三明(세 가지 밝은 지혜)
삼명三明을 이루면 정각을 증득한 자(붓다, 부처, 아라한)가 된다.
삼명三明이란 정각(또는 아라한과)을 성취한 사람이 갖게 되는 지혜로 세 가지 밝은 지혜인데, 이를 한문(중국어) 경전에서는 숙명명, 천안명, 누진명(또는 멸진명)이라고 한역했다
(1) 숙명명宿命明 : 고타마 보살은 ‘현재에서부터 과거’를 통찰(깊이 관찰)하여 갖게 된 숙명명으로 인과 연기적인 업業(깜마Kamma, 카르마Karma)을 완전히 바르게 깨달았다.
지나온 과거 생을 상기하여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하고 깊이 정사유(바르게 사유)함으로써 갖게 되는... 인과 연기적인 업業에 대해 완전히 바르게 아는 밝은 지혜를 말한다.
과거 여러 생에 걸친 전생을 한문으로 숙세宿世라고 한다. 즉 숙명명은 겹겹이 쌓인 과거 전생의 인과 연기적인 업을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하여 완전히 바르게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인과응보의 법칙, 또는 업의 법칙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통찰하여) 보고 완전히 바르게 아는 것이다.
(2) 천안명天眼明 : 고타마 보살은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을 통찰(깊이 관찰)하여 갖게 된 천안명으로 우주자연의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 자연의 이치/법칙)을 완전히 바르게 깨달았다.
거리의 ‘가깝고 멀고’에 상관없이, 일체 세간의 모든 고락苦樂의 모습(相)과...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물, 생명체)과 무정(정신작용이 없는 존재; 물질, 무생물, 물체), 또는 물질작용(色; 루빠rupa)과 정신작용(名; 나마nama)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소멸) 변화를...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하고 깊이 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함으로써 갖게 되는... 연기의 실상과 진리에 대해 밝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천안명은 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를 말한다. 즉 우주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으며... 미시(찰나), 일상, 거시(성주괴공-일겁, 생로병사-일생)적으로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소멸)의 순환(삼사라samsara; 윤회輪廻-바퀴처럼 돌고 돎)을 계속하는 것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통찰하여) 보고 완전히 바르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숙명명과 천안명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유정(생명)과 무정(무생물)의 실존 양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한다. 중생(아직 깨닫지 못한 생명의 무리)에게는 그런 눈이 없다. 그래서 세간(감각적 욕망의 세계, 욕계)의 조건 지어진(conditioned, saṅkhāra) 부질없는 것들에 집착한다. 중생은 그런 지혜의 눈이 없기 때문에 무명(인식의 착각, 그리고 그로 인한 전도된 생각)과 갈애(물질, 정신적 감각에 대한 욕망과 집착)로 인해 계속해서 생사의 순환(samsara; 윤회)을 반복하며 근원적 괴로움(둑카dukkha)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3) 누진명漏盡明 : 고타마 보살은 누진(멸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하여 갖게 된 누진(멸진)명으로 사성제를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마침내 정각을 증득한 자(완전히 바르게 깨달은 자; 붓다, 부처)가 되셨다.
이른바 숙명명으로 숙세의 연기적 인과관계(업)를 꿰뚫어 보고, 천안명으로 세상의 연기적 실상(실존 양상)을 꿰뚫어 보게 되면[고성제]... 자신과 세상(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 실존 양상; 연기의 실상)과 진리(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완전히 꿰뚫어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존재의 연기적 인과관계를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실존 양상과 왜 그런 실존 양상을 갖게 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완전히 꿰뚫어 보게 된다[집성제].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알기 때문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존재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침내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하게 된다[멸성제].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이 괴로움(고통, 번뇌)을 근원적으로 다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중생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붓다께서는 그 길(팔정도)을 경험적으로 합리적으로 완전히 바르게 아시게 되었던 것이다[도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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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께서는 삼명三明으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를 증득하시고 나서,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암중모색하여 완성한 수행의 경험을 '경험적+합리적'(=과학적)으로 정리하시여... 자신과 같은 '깨달은 사람(붓다)이 되는, 무상정등각(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 줄임말로 정각)에 도달하는... 여덟 부분(八)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 줄임말로 팔정도八正道'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 수행)'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다.
붓다께서 듣는 사람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와 처지(처한 환경과 상태)에 따라 가르치신 수많은 가르침은, 정각으로 가는 바른 길인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다.
붓다께서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 계(실라; 정어·정업·정명)-정(사마디; 정정진·정념·정정)-혜(빤냐;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가르침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정각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다 (이른바 천이백 아라한)
당시의 인구 추정치와 역사적 자료를 참고한 학자들의 추정치에 의하면... 붓다께서 활동하셨던 갠지스강(항하) 중북부지역에서 사문(재가, 출가를 포함해서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효가 약 십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에서 약 천 명 정도(백 명당 한 명꼴)를 자신과 같은 아라한(붓다도 아라한이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붓다께서 펼쳐 놓으신 바른 가르침(正法)이 오늘날에도 바르게 전승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정각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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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종교宗敎 vs. Religion
종교宗敎는 '(산)마루 또는 근본 종宗 + 가르칠 교敎'의 합성어로, '산 정상(마루, 宗)에서 바라보듯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근본(宗)이 되는 훌륭한 가르침(敎)'이라는 뜻이다.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5세기경에 중국에서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동양 문화권에서는 신神과는 무관하게 '근본이 되는 훌륭한 가르침'이란 의미로 쓰여져 왔다.
19세기 말 서양 종교학(신학, Religious studies or Science of Religion)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Religion'을 번역할 때, 같은 의미의 동양 문화권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학자들이,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지칭하던 용어인 종교宗敎를 Relig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Religion의 어원은 ‘re(다시)+lig(신과 잇는, 결합하는)+ion(것)’이다. 이 Religion(신과 다시 결합 하는 것)을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지칭하던 용어인 종교宗敎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의 오류다.
국어사전에서는 Religion의 번역어인 종교를 ‘신神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그런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발견하시고 설하신 우주자연(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경험적+합리적'인 가르침인 불교佛敎(붓다佛의 가르침敎)'는, 우주자연(물질세계)의 보편적 이치/법칙에 대한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지식체계를 세우는 학문인 자연과학(물리학)이 종교(Religion)가 아니듯이, 종교(Religion)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격화된 부처와 신격화된 보살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는 기복불교는 종교(Religion)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Religion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종교宗敎가 아니라 신교神敎(신神의 가르침敎)를 사용했다면 용어가 주는 혼란과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