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행하는가?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아잔 차 스님을 찾아와서 세 가지 훌륭한 질문을 던졌다.
왜 수행합니까?
어떻게 수행합니까?
수행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유럽의 어느 종교 단체가 보낸 대표단이었는데, 아시아에 있는 저명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서 잠시 묵묵히 있던 스님이 세 가지 질문으로 답했다.
왜 밥을 먹습니까?
어떻게 먹습니까?
잘 먹고 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웃었다.
나중에 스님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며 가르침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자기 내면의 지혜로, 자기 본연의 법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스님은 이 사람들이 온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을 그들 자신의 내면에서 찾도록 되돌린 것이다. --93쪽
나무가 스스로 자라게 하라
모든 일은 스스로 일어난다.
자기의 할 일을 했으면 결과는 자연에 맡겨라.
쌓인 업의 힘에 맡겨라.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가르치셨다. 하지만 노력을 그치라는 말은 아니다.
나무를 심은 뒤 억지로 빨리 자라게 할 수 없듯이, 지혜의 열매도 억지로 빨리 맺히게 하거나 천천히 맺히게 할 수 없다.
나무들은 저마다 자라는 속도가 있다.
그대가 할 일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해충들이 갉아먹지 않도록 나무를 지키는 것이다.
그대가 할 일은 그만큼이며, 나머지는 믿음으로 맡겨야 한다. 나무가 어떻게 자랄지는 그 나무에게 달려 있다.
이런 자세로 수행한다면 그대는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으며, 그대의 나무는 잘 자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과 나무의 일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무의 일은 나무에게 맡기고, 그대는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라.
만일 마음이 자기의 할 일을 잘 모른다면
나무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게 하려고 억지로 밀어붙일 것이다.
이것은 그릇된 관점이며 고통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오직 올바른 방향으로 수행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업에 맡겨라.
그러면 이번 삶에 깨닫든, 백 번이나 천 번을 더 태어난 뒤에 깨닫든 그대는 평화롭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