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제들
많은 사람들, 특히 교육받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좀 더 조용하고 좀 더 소박하게 살기 위해 대도시를 벗어나
소도시나 시골로 옮겨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진흙을 한 움큼 집어 들고 힘껏 쥐면, 일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올 것이다.
이와 같이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빠져나올 길을 찾는다.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다가올 인류의 종말에 대해 내게 묻는다.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세상적이라고 함은 무슨 뜻인가? 무엇이 세상인가? 모른다고?
세상이라고 함은 바로 이 모름, 바로 이 어둠이며, 무지가 있는 바로 이 자리를 뜻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사로잡혀 있으면, 지식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이 어둠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그런 문제들의 본질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세상의 어둠 위에서 빛나고 있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요즈음 우리의 문화는 탐욕과 미움과 망상에 빠져서 길을 잃고 타락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부처의 문화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문화는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서 훔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적인 문화를 지배하고 인도하는 것은 욕망이다. 부처의 문화는 자비와 법,진리가 인도한다. --83쪽
오직 그만큼
잘 들여다보면 이 세상은 오직 그만큼이다. 이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에 지배받는 것도 오직 그만큼이다. 빈부귀천도 오직 그만큼이다.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는 오직 그만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며 얽매여 있는가?
삶의 대상들과 함께 노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즐거움 역시 오직 그만큼이다.
재미있고 맛있고 신나고 좋은 것들도 오직 그만큼이다. 그것은 모두 자체의 한계가 있으며, 그 이상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오직 그만큼이며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이 점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수행하기 위해 여기에 온 서양인 승려들을 보라. 그들은 즐겁고 안락한 삶을 누렸지만, 그것은 오직 그만큼이었다.
그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노력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하며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역시 오직 그만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집착과 고통, 모든 것을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숲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조건지어진 것들은 다 똑같다. 모두 일시적이며, 태어남과 죽음의 순환에 얽매여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것들은 오직 그만큼이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선하게 살고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도 늙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말은 몸에 대해서는 맞을 수 있지만
가슴과 덕(德)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 차이를 아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것들은 조건지어진 현상으로서 어떤 원인에 의해 생기는 까닭에 일시적이다. 그것들의 성질은 늘 똑같고 바뀌지 않는다.
귀족의 신분이든 하인의 신분이든 다를 게 없다.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면 그들의 연극도 끝난다.
그들은 더 이상 잘난 체 으스대거나 가면 뒤에 숨을 수 없다. 어디를 갈 수도 없고, 음식을 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늙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귀는 어두워지며, 몸은 약해진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들은 ‘오직 그만큼’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선과 전쟁을 하고, 악과 전쟁을 하고, 작은 것과 전쟁을 하고, 큰 것과 전쟁을 하고,
짧거나 길거나 옳거나 그른 것과 전쟁을 하며 용감하게 싸우지만, 그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다 많은 고통을 지어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물소와 같아서 네 다리가 단단히 묶이지 않으면 어떤 약도 받아먹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네 다리가 꽁꽁 묶여 움직일 수 없게 되면, 그제야 물소에게 다가가서 약을 줄 수 있으며 물소는 피하려고 몸부림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우리 대부분은 고통에 완전히 묶인 뒤에야 망상들을 놓아 버리고 포기할 것이다.
몸부림칠 기력이 남아 있는 한 항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 법을 깨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대부분은 삶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삶은 우리를 끝까지 가르칠 것이다. 밧줄을 잡아당기는데 한 쪽 끝이 단단히 걸려 있으면 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움직이지 않는다.
밧줄을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그 끝이 어디에 걸려서 움직이지 않는지 알아야 하고, 문제의 근원과 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수행을 하면서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걸려 있는지 알아내고 평화의 중심을 발견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잃어버린 황소를 찾으려면 황소가 외양간을 떠난 지점부터 발자국을 따라가야 한다.
중간 어디에서부터 발자국을 따라가면 누구네 황소의 발자국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점을 바로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고통의 뿌리가 무엇인지,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한다.
모든 것은 오직 그만큼임을 아는 사람은 참된 길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조건지어진 현상들의 실상,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오직 그때에야 우리는 이 세상에서 평화로울 수 있다. --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