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좋아도
아잔 차 스님이 미국에 새로 세워진 수련원을 방문했을 때 많은 수련생들은 스님의 가르침에 매료되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집착을 놀리는 스님의 설법은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이면서도 애정 어리고 익살스러웠다.
그처럼 노련하고 유명한 스승을 직접 대하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스님이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들,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 새롭고 신선하게 법을 표현하는 스님의 설법은
하나같이 다 감동적이었다. 수련생들은 스님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제발 예정대로 일찍 가지 마시고 좀 더 오래 머물러 주세요, 스님이 계시니 저희는 참 행복합니다.”
아잔 차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내게 싫증이 날 겁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흥분이 가라앉을 때 여러분의 수행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머지않아 내게 싫증이 날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뭔가 새로운 것을 바라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을까요? 누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래야만 참 진리를 배울 수 있을 터인데.”--97쪽
제3부 삶이 수행이다
명상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상황들은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기회, 지혜와 자비 안에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잔 차 스님은 가르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늘 알아차리는 것이 바른 수행이다.
세상에서 도망치지 말라. 집착 없이 행동하는 법을 배워라.
스님은 덕이야말로 영적인 삶의 토대라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덕(德)을 대수롭지 않게 보지만 덕을 명상의 기초로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덕이란 우리가 생각이나 말, 행위로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존중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주위의 모든 생명과 조화로워진다.
오직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에만 마음을 고요히 하고 가슴을 열 수 있다.
우리가 비폭력을 실천할 때 삶의 모든 상황은 수행으로 바뀌어 간다.
스님은 삶을 중도(中道)위에 더욱 튼튼히 자리 잡게 하는 수단으로 중용(中庸)과 홀로 서기를 권한다.
극단으로 흐르는 삶에서는 지혜가 자라기 어렵다.
알맞게 먹고 알맞게 자고 알맞게 말하는 등 기본적인 것들에 유의하면 내면의 삶이 균형 잡히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
다른 사람의 수행법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지 말라. 아잔 차 스님은 그렇게 주의를 준다.
그들을 내버려두어라.
자기의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까지 판단하여 짐을 더 무겁게 하는가.
호흡과 일상생활을 명상의 장소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반드시 지혜안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늘 깨어 있으라
알맞은 노력은 특정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알아차리며 깨어 있으려는 노력이며,
게으름과 번뇌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을 명상으로 삼으려는 노력이다.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