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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놓아버리기

『놓아버리기 (원제; Mindfulness, Bliss, and Beyond)』

목 차
1부: 수행의 행복
1. 수행의 기본 방법 Ⅰ
수행의 처음 네 단계를 통한 탄탄한 기초 쌓기
2. 수행의 기본 방법 Ⅱ
호흡이 아름다워지는 수행의 세 가지 높은 단계
3. 수행의 장애 Ⅰ
우리와 수행의 깊은 단계들 사이에 있는 다섯 가지 장애 중 두 가지 - 감각적 욕망, 악의
4. 수행의 장애 Ⅱ
나머지 세 가지 장애 -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
5. 알아차림의 특성
알아차림, 문지기, 그리고 수행에서 성공하는 방법
6. 수행에 활기를 불어넣는 다양한 방법
마음을 즐겁게 하고, 지루함을 없애고, 기쁨을 일으키는 방법
7. 아름다운 호흡
선정의 성취 그리고 깨달음의 통찰
8. 네 가지에 대한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
연꽃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 알아차림의 초점 이용하기

2부: 지복 그리고 그 너머로 (Bliss, and Beyond)
9. 선정 Ⅰ: 지복
여행의 시작 ‘아름다운 호흡’
10. 선정 Ⅱ: 지복 위의 지복
니밋따 - 선정으로 들어가는 입구
11. 선정 Ⅲ: 지복 위의 지복 위의 지복
선정에 드는 방법 그리고 네 단계 선정의 실제
12. 통찰(깊은 관찰)의 본질
무엇이 우리를 진실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가?
깊은 선정 삼매 수행에 의해 강화된 마음이 어떻게 진리를 발견하는가?
13. 해탈을 가져오는 깊은 관찰(통찰)
모든 것을 바꾸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깊은 관찰(통찰)
14. 깨달음의 흐름에 들어감
열반(깨달음)의 실제 그리고 열반의 첫 경험(예류)
15. 완전한 깨달음을 향해
깨달음의 네 단계 그리고 깨달은 이를 구별하는 방법
결론: 마지막까지 ‘놓아버림’
‘놓아버림’의 중요성, 부딪히게 되는 집착들 또는 장애물들, 그리고 바쁜 삶 속에서의 행복
옮긴이의 말
[ref.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936088526703713&set=a.1844617145850852&type=3&theater]

이 책에서 아잔 브람 비구가 제시하는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의 단계;
1단계 : 현재순간 알아차리기(사띠하기)
2단계 : 생각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사띠하기)
3단계 : 생각없이 현재순간의 호흡 알아차리기(사띠하기)
4단계 :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5단계 :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6단계 :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7단계 : 선정 삼매(초선정 삼매 ~ 제4선정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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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 현재순간 알아차리기

'과거'와 '미래'라는 짐

나는 수행을 지도할 때, 과거와 미래라는 짐을 버리고 현재순간을 알아차리는 단순한 단계에서 시작하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이 단계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 중에 과거를 버린다는 것은 일상생활, 일, 의무, 과거의 행위나 지나간 좋고 나쁜 시간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 중에 여러분은 과거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성장 환경, 출신 학교, 직업, 경력, 이런 모든 과거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집니다. 여러분은 모두 평등한 수행자일 뿐입니다.

과거의 생각, 기억, 감정 그리고 후회에서 스스로 벗어납니다.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조차도 놓아버립니다. 무엇이 일어났든 과거의 것은 모두 놓아 버립니다. 과거를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죽은 시간과 기억들로 가득 찬 관을 더 이상 메고 다니지 마십시오.

미래도 놓아버리십시오. 미래의 일에 대한 근심, 걱정, 불안, 초조, 긴장, 답답함, 의심, 예상, 추측, 기대, 두려움, 공포... 등을 모두 놓아버리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언제나 그와는 다르게 일어날 것이다." 현자들의 말하듯이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는 특히 수행에서는 엄청난 시간 낭비입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를 정도로 현재순간에 주의력을 기울이십시오. ‘아침인가? 점심인가?’ 몰라요... 오직 아는 것은 몸과 마음이 머무는 지금 여기의 현재순간 뿐입니다. 이 현재순간 속에서 그저 수행할 뿐입니다. 수행할 때, ‘이제 몇 분 남았지? 이걸 얼마나 더 참아야 하지?’ 라고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그저 미래에서 헤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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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방향의 수행이라면) 나쁜 수행이란 없다

수행이 잘되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을 날도 있습니다. 나쁜 수행을 했다고 여겨지는 날일지라도 수행은 봉급을 받기 위해 하는 저축과 같습니다. 모든 수행의 날이 봉급날처럼 성취를 보상 받는 날일 순 없겠지만, 어려웠던 수행의 시간 동안 여러분은 성공의 원인을 저축합니다. 마음에 충분한 정신적 저축이 있어야 좋은 수행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을 때도, 서둘러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합니다. 비누가 무슨 냄새였는지도 모른 채..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데도 바쁘게 운전을 하고, 바쁘게 걷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딴 생각을 합니다. 입안에 무슨 음식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식사를 합니다. 집 앞 화단에 꽃이 피었는지, 낙엽이 졌는지, 무슨 꽃과 나무가 있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마음이 어디 가있는지 모른 채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공부할 때나 일할 때는 물론, 심지어 놀고 있는 중에도 온전히 자신이 하고 것에 몰두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 혹은 지금(현재) 이곳(여기)에 있는 대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다른 대상들에게로 우리의 마음이 옮겨 다닙니다.

과거와 미래를 버리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세상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현재순간 속에 사는 것, 시간을 초월한 세상 속에 사는 것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과거와 미래에 끌려 다니며 얽매여 사는 세상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영겁의 시간 동안 모든 지혜로운 존재(현자)들이 이 순간을 경험해오고 있듯이, 시간을 초월한 세계 속에서 여러분도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합니다.

현재의 실상(실제 모습)은 실로 장엄하고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모든 과거와 미래를 놓아버릴 때, 삶의 많은 시간을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끌려 다니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그것은 마치 삶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놓아버리면 여러분은 지금 여기의 현재순간 속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은 그때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매 순간 여러분은 삶의 유일한 현장인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서 현재순간을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서 이 현재순간을 알아차리는 '새로운 습관'을 반복해서 새로 익히고 있습니다.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현재의 실상(실제 모습)을 감사한 마음으로 충분히 즐기면서..

이것이 과거와 미래를 버리고 알아차림이 현재에만 유지되는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의 1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이미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을 가로막는 과거와 미래라는 첫 번째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첫 번째 단계를 강하고 확고하게 확립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여기의 현재를 강조하신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 미래를 미리 염려하지 마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 다만 ‘현재의 것을 그것이 있는 곳’(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잘 사띠하여라. 흔들림 없이, 동요하는 일 없이 바르게 잘 살피고 수행하여라.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여라, 내일 죽음이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 『대가전연(Maha-kaccayana) 일야현자一夜賢者(bhaddekaratta)경, 중아함(맛지마니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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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수행 초보자는 눈을 감고(또는 약간 뜨고) 현재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오감각과 생각, 감정)을 나타나는 대로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때와 조건(인연)에 따라 일어날 현상은 저절로 일어날 것이고, 사라질 현상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판단하거나 기대하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다만 그때그때 나타나는 현상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포착되는 현상만을 그저 알아차려 나가면 됩니다.

몸은 매 순간 항상 현재순간에 있습니다. 호흡처럼 몸의 현상(몸의 동작, 자세, 감각)들도 항상 현재에 있습니다. 단순히 숨쉬기와 같은 몸동작이나 몸의 자세와 몸의 감각(오감각; 느낌)을 알아차림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헤매던 마음도 지금 이 순간의 현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몸의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헤매는 마음(또는 마음의 감각-생각)도 현재순간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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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

여러분은 수행 1단계(현재순간 알아차리기)에서 수행을 가로막는 과거와 미래라는 첫 번째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더욱 아름답고 진실한 마음의 침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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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음'은 '해설 없음'을 의미한다

2단계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를 경험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비유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각 없이 지켜보는 것은 TV에서 해설자 없이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볼 때, 화면으로 보는 경기와 해설자의 중계를 듣는 경기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해설자의 해설은 편향적입니다. 미국과 영국이 경기를 하고 있다면 미국해설자와 영국해설자는 전혀 다른 해설을 합니다. 이 비유에서 해설 없이 TV스크린을 보는 것은 수행 중의 ‘생각 없는 알아차림’을 의미합니다. 해설을 듣는 것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설 없이 지켜볼 때, 즉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만을 경험할 때 편향적(주관적)이지 않게 진실에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내면의 주관적인 해설(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생각(내면의 해설)은 종종 미혹을 조장해서 고통을 일으킵니다. 주관적인 생각(내면의 해설)은 우리로 하여금 적에게 미움과 분개를 만들고, 사랑하는 이에게 위험한 집착을 만듭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은 주관적인 내면의 해설이 일으킵니다. 이것은 근심, 걱정, 불안, 초초, 긴장, 두려움, 혼란, 짜증, 미움, 화, 분개, 분노, 증오, 의심, 시기, 질투, 경멸, 적대감, 절망, 좌절, 외로움, 공포, 공황, 죄책감, 답답함, 권태, 침울 등등의 모든 고통스러운 마음 상태를 만듭니다.

실상을 보려면 ‘생각 없는 알아차림’에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생각 없이 알아차림'의 주된 장애가 됩니다. ‘생각 없는 알아차림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내면 속 고요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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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내면의 해설(생각)을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순간 알아차리기'(수행 1단계)를 잘 계발하는 것입니다.

'저건 좋았어.' '이건 엉망이군.' 이런 생각은 모두 현재순간을 알아차리는 경험(현재순간의 경험)이 아니라 이전 경험을 기반으로 한 해설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해설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몸의 감각을, 거친 감각 뿐 만 아니라 미세한 감각까지도, 빈틈없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의 미세한 감각; 미세한 몸동작, 호흡 동작(배∙가슴의 오르락내리락 등),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 손끝의 미세한 감각, 미세한 소리와 냄새까지도 매 순간 빈틈없이 알아차리면 자연히 내면의 말(잡담, 해설; 생각)을 할 시간(생각의 공간)이 없어집니다.

매 순간(모든 현재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오감각과 함께 온전히 이 순간 속에 있을 때, 자연히 내면의 해설을 할 시간이 없어집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매 순간 도착하는 오감각을 알아차리는데 몰두합니다. 그러면 스스로에게 잡담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를 정제精製해서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가 모든 순간에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고요를 계발하는 또다른 기술은, 생각들 사이 혹은 내면 속 잡담 사이의 고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요를 발견하면 그것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고요가 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요는 매우 수줍음이 많습니다. 만일 고요가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고요는 곧바로 사라집니다.

내면의 고요(침묵)를 계발하면 생각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나온 생生 동안 줄 곳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마음을 냈고(발심發心), 짐을 벗을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잠시나마 짐을 벗어 내려놓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지극한 편안함, 매우 가벼움,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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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음‘은 즐겁다

만약 모든 내면의 말(주관적인 해설)을 내려놓고 오랫동안 생각 없이 현재순간에 머물 수 있다면 현재순간의 즐거움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경험일 것입니다. ‘침묵’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지혜와 명확함을 일으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마음은 침묵 쪽으로 기울고 계속해서 침묵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정말로 필요할 때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 생각의 과정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이 정말 무의미하며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평상시에 단 반시간 동안만 생각에 알아차림을 기울여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를 기록해 보면 확연히 알게 됩니다)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내면의 침묵(고요) 속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행이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 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가 매 순간 유지되는 수준에 도달하면 우리는 커다란 행복, 기쁨,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기는 지혜를 경험합니다.

이정도의 수준(2단계 수행의 성취)에 도달하면 수행에서 정말 먼 길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두 단계의 수행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라는 현재순간의 ‘생각 없는 알아차림’ 속에서 고요한 평화와 행복을 경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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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노자老子의 산책

노자께서는 수행과 가르침의 일환으로 제자와 함께 산책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노자께서는 산책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자(BC 570~479)께서 제자와 함께하신 ‘무언의 산책’은 붓다(BC 624~544)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무언의 탁발’과 같은 무언의 가르침이자 수행입니다.

어느 날 노자께서 한 제자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하셨습니다. 노자께서 제자와 함께 조용히 언덕에 올라섰을 때 마침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가 그 석양을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석양인가!“

산책에서 돌아온 후 노자께서는 제자에게 말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따라오지 말거라.“

제자가 ‘아! 얼마나 아름다운 석양인가!’라고 말했을 때, 제자는 더 이상 석양(실제 대상)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는 자신의 말, 생각(내면의 말, 내면의 해설)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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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내면의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말로, 미국 사람은 미국말로, 중국 사람은 중국말로, 인도 사람은 인도말로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말(언어)이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인간의 물질(육체)적, 정신적 경험을 기호화(개념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언어는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근사치일 뿐입니다.

생각(내면의 말, 해설)을 보는 것은 실제 대상을 진정으로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아닌 개념 또는 실제의 근사치'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념正念(삼마 사띠; 바른 알아차림)을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할 때 생각을 놓아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지금(今) + 마음(心)'의 합성어인 념念은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 사띠sati를 3~4세기경에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한 것인데, 우리말로는 '지금 현재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dhamma, 法)을 마음챙겨 알아차림' 정도로 번역하면 그 의미가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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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부처님은 바른 알아차림(삼마 사띠)을 마음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 비유하셨습니다. 주의력을 기울여 스스로에게 명확하게 지시하여 알게 하면, 알아차림은 마음에 자국을 새겨 남기고(remembering), 불청객이 나타났을 때 문지기처럼 불청객을 내쫓아 버립니다. 부처님 설법에서 고대인도어 ‘사띠’는 ‘알아차림’과 ‘마음챙김(또는 기억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지기에게 명확한 지시를 함(마음챙김 또는 기억함)으로써 여러분은 수행이 성공할 가능성을 만듭니다.

핵심은 아무 말이 없는 조용한 목격자(관찰자)처럼 행위자를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내면의 말(해설) 없이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생각(내면의 말, 내면의 해설자)을 다 놓아버리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몸의 오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이라는 손님을 수동적(knower)으로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감각이라는 손님을 받아만 들입니다. 손님을 판단, 분별, 평가하려는 능동적(doer)인 내면의 해설(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몸은 매 순간 항상 지금 여기, 현재순간에 있습니다. 삶의 유일한 현장은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은 ‘현재순간(매 순간)’이고 ‘여기’는 ‘지금(현재순간; 매 순간) 몸이 머무는 곳’입니다. 몸은 지금 여기, 현재순간을 떠나 다른 곳, 다른 때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몸의 동작, 몸의 감각처럼 호흡도 항상 현재순간에 있습니다. 단순히 숨쉬기와 같은 몸동작, 그리고 몸의 자세와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손끝에 작은 감각까지도 어떤 감각이든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에 머무릅니다.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 비판하려는 마음은 그저 왔다가게 내버려둡니다. 매 순간 몸과 함께 머물며 현재순간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을 때 생각할 공간(해설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내면에서 고요와 평온 그리고 고요한 행복이 자라납니다.

매 순간 몸과 함께 머물며 현재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을 때, 마음은 더욱 아름답고 진실한 침묵(내면의 고요와 평온, 고요한 행복) 속으로 나아갑니다.

수행 중에 생각이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내려놓습니다. 생각(내면의 해설)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모든 생각을 쉬어 내려놓고, 말없이 조용하게 그냥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 없는 알아차림을 계발하여 확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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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수행에서 허용되는 손님은 몸의 오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감각입니다. 알아차림(사띠)의 대상(손님)은 다음과 같습니다.

몸의 자세, 거칠고 미세한 동작, 그에 동반되는 신체감각(물질감각) :

- 몸의 자세 : 행주좌와
- 거친 동작
- 미세한 동작 : 손가락 발가락 움직임, 눈동자 움직임, 눈뜨고 감기 등
- 호흡 동작 : 배∙가슴의 오르락내리락 등
- 호흡 감각: 호흡 시 코 부위 감각
- 거친 신체감각 : 통증 등
- 미세한 신체감각: 손(발)가락∙손(발)끝의 미세한 감각, 미세한 통증, 미세한 가려움 등
- 거칠고 미세한 빛(色形), 소리, 냄새, 맛

2단계 수행에서 불청객은 정신감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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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너무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거나 집착하지 말고, 단지 미세한 몸동작과 미세한 신체감각까지도 알아차리기 위해 주의를 집중합니다. '나쁜 수행이란 없습니다', 어려웠던 수행의 시간 동안 성공의 원인을 저축합니다. 좋고 나쁜 수행을 통해 힘을 축적합니다.

평상시 단 반시간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려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무의미하고 무익한, 심지어는 해로운 생각'(망상)들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현재순간 알아차리기’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수행을 하게 되면 망상(쓸데없는 생각)이 많이 일어납니다. 평소에는 자신이 이렇게 많은 망상을 하면서 살고 있는 줄 몰랐다가 이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확인이야말로 ‘생각 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 수행의 첫걸음입니다.

초심자들이 흔히 시달리게 되는 망상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망상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점차 저절로 사라집니다. 바른 수행의 꾸준한 실천을 통해 바른 알아차림의 집중력이 좋아지면 저절로 사라져 갑니다.

그 외에도 통증 등의 현상이 동반되기도 하는데(통증은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 나타납니다) 이 역시 수행자가 거쳐야 할 관문 같은 것으로 그것들을 애정(자비심)을 갖고 알아차리고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그 변화를 지켜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통증도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져 갑니다.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바른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다보면 (특히 오감각五感覺을 인식하는 전오식前五識이 사라지는 초선정 이후 단계에 가면) 물질적(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고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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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 생각없이 현재순간의 호흡 알아차리기(사띠하기)

여러분은 1, 2단계 수행에서 마음의 고요한 평화와 행복을 가로막는 큰 짐인 과거와 미래, 그리고 내면의 말(생각 또는 망상)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더욱 고요한 평화와 지복至福(지극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성을 놓아버리고 통일성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의 주의력을 하나에 고정시키는 것은 다양성(여섯 감각)을 놓아버리고 하나의 대상(호흡 감각)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주의력이 하나의 대상에만 유지되고 마음이 통일되기 시작하면 고요한 내면의 평화와 지복至福 그리고 알아차림의 힘에 대한 경험이 점점 강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여섯 감각(오감각이라는 물질감각과 생각 등의 정신감각)에 대한 욕망이 또 다른 무거운 짐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섯 대의 전화기(여섯 감각)가 끊임없이 아무 때나 울려대는 것과 같습니다. 다양성(여섯 감각)을 놓아버리고 한 대의 전화(호흡 감각)만 허용하면 많은 고통이 사라지고 평온과 지복이 일어납니다. 여섯 감각에 대한 욕망이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호흡(호흡 감각)에 알아차림의 초점을 맞추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주의 깊은 인내가 가장 빠른 길

여러분이 1, 2단계 수행을 통해 ‘생각 없이 현재순간 (오감각) 알아차리기’를 주의 깊게 잘 계발했다면, 그 알아차림을 호흡 감각으로 돌려 매 순간 중단 없이 알아차리기가 상당히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의 두 가지 주요한 장애가 이미 극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장애는 과거와 미래로 움직이는 마음의 경향성(습성)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애는 내면의 말(생각 또는 망상)입니다.

수행자들 중에서 적절한 준비 과정 없이 '생각없이 현재순간의 호흡을 알아차리는(사띠하는) 수행, 달리 표현하면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시작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없이 현재순간의 호흡을 사띠하는 수행'(아나빠나사띠 수행)이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아나빠나사띠 수행은 물론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통해서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을 포기합니다. 그들은 호흡을 사띠의 초점으로 취하기 전에 적절한 준비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1, 2단계 수행을 완수해서 바른 알아차림(사띠)이 어느 정도 잘 준비되었다면, 호흡으로 알아차림의 주의력을 돌릴 때 쉽게 호흡에 주의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처음 두 단계에서 너무 서둘렀다는 표시입니다. 1, 2단계로 되돌아가서 준비 과정을 탄탄히 해야 합니다. 주의 깊은 인내가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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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에 초점을 맞출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호흡 경험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숨을 들이쉬고 있는지, 내쉬고 있는지, 아니면 그 사이에 있는지를 경험합니다. 호흡 경험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걱정은 놓아버리십시오. 단지 '코(끝) 알아차림'이나 '복부 알아차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오직 호흡 경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단계에서는 몸에 드나드는 공기의 느낌, 콧구멍 주변(안, 밖, 인중)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부딪힘과 접촉 감각(느낌)을, '뜨겁다, 차갑다 등으로 판단 분별하지 말고', 그냥 호흡 감각(부딪힘 또는 접촉 감각) 경험 자체만을 알아차립니다. 만약 '뜨겁다, 차갑다'를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머리나 몸에 열이 확 오르거나 두통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대개 호흡을 통제하려는 경향성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호흡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호흡을 통제하려고 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저 지켜만 봅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감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약 100번 정도(15~30분 정도) 연이어 사띠할 수 있다면 3단계 수행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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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부처님이 설하신 『마하Maha 사띠Sati 빳타나Patthāna 숫따Sutta(사띠念의 확립 정착處에 대한 큰大 경經; 대념처경大念處經), D22』 중에서 아나빠나사띠(호흡 사띠)에 대한 경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자는 한적한 숲 속의 고요한 나무 아래나, 혹은 한적하고 고요한 곳(동굴, 빈 방 등)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상체를 곧바로 세우고 ‘빠리무카pari-mukha’(고대인도어 pari-mukha는 한역 또는 영역 경전에서 ‘전면前面, 인중人中 또는 콧구멍 주변, all round of entrance’ 등으로 번역됨; pari-環繞, round, around; mukha-入口, entrance)에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을 단단히 건립建立(upaṭṭhapetvā)하여 앉는다."

<각주 :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 당시에) 이 수행에 적합한 한적한 숲은 대개 마을로부터 약 1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좌법에는 완전 가부좌(연화좌), 반가부좌, 평좌(버마식 좌법)가 있다. 평좌는 한 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얹지 않고 둘 다 바닥에 놓는다. 의자에 앉는 것도 한 방법이나 너무 안락한 자세는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행자는
오직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오직 사띠하면서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pajānāti).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각주 : 호흡이 들어가고 나가는 호흡현상 자체를 면밀히 알아차린다. 짧고 긴 호흡 뿐 아니라 거칠고 미세한 호흡 등 모든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들숨과 날숨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린다. 이때 관찰을 용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흡을 해서는 안 된다.>

<각주 : 한문(중국어) 번역경전에서 념念(생각 념念; 마음에 둠, 기억함)이라고 한역하는 고대인도어 사띠sati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마음챙김,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전념하여 또는 마음챙겨 알아차림, 빠자나pajāna(알아차림, 앎), 깨어있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사띠sati는 대개 빠자나pajāna(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마음챙김[사띠sati]과 알아차림[빠자나pajāna]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한문 번역경전에서 정념正念이라고 한역하는 삼마사띠samma-sati도 대개 삼빠자나sam-pajāna(바른 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바른 마음챙김[삼마사띠samma-sati]과 바른 알아차림[삼빠자나sam-pajāna]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로 삼빠자나sam-pajāna에서 ‘삼sam’을 빼면 ‘빠자나pajāna’인데, ‘빠자나’의 동사형이 ‘빠자나띠pajanati’다. 빤냐paññā(혜慧, 지혜; 반야般若는 빤냐paññā의 한문 음사)의 동사형도 ‘빠자나띠pajanati’이다. ‘삼sam’은 흔히 삼붓다, 삼보리, 팔정도의 삼마사띠(바른 사띠; 정념正念) 등에서처럼 단어 앞에 붙는 접두어로 ‘바른’이라는 뜻이다.>

"수행자는
‘호흡의 전 과정을 경험하면서(느끼면서, 겪으면서; paṭisaṃvedī) 숨을 들이쉬자'라고 수련하며, ‘호흡의 전 과정을 경험하면서 숨을 내쉬자'라고 수련한다(sikkhati).

‘신체 작용(身行)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자'라고 수련하며, ‘신체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내쉬자'라고 수련한다."

<각주 : 여기서 '수련한다'는 '식카띠sikkhati'(자기 자신을 훈련시킨다, 스스로를 연습練習시킨다; train oneself)를 번역한 것이다. 몸과 마음의 작용(行)이 고요해지면 호흡 또한 고요하고 미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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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부처님은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의 집중 대상은 반드시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당신께서 가르치신 여러 가지 집중 대상 중에서 호흡(아나빠나)이 가장 수승(훌륭)하다고 추천하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아나빠나(들숨날숨, 호흡) 사띠'를 통해서 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방법을 가장 추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호흡은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작용(신체 작용) 중에서 '무의식적인 작용이면서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또한 '자연적인(자동적인) 작용이면서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용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 몸에 항상 있는 작용이며, 호흡과 호흡이 일으키는 감각(호흡 감각)은 탐(욕망)과 진(혐오)과 치(탐, 진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에서 호흡은 사띠(알아차림)를 거친(또는 얕은) 수준(거친 감각, 또는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 미세한(또는 깊은) 수준(미세한 감각, 또는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수준)으로 건너가게 하는 아치형태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경고하셨듯이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을 위한 집중 대상은 반드시 ‘욕망과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바르게 검증된 대상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이 비록 고귀한 대상, 어떤 신이나 (신격화된) 부처의 형상이라 할지라도, 자칫하면 그릇된 ‘욕망과 집착의 삼매’가 되어버려서 자신도 모르게 삶을 망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무속 종교(샤머니즘)의 장군신과 같이 사이비 종교에서 만들어낸 어떤 신의 형상을 대상으로 한 유사 삼매 상태(소위 접신 상태 등)의 경험에 현혹되어서 거기에 빠지면 삶을 망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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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들숨과 날숨의 전체 과정을 지켜봅니다. 4단계는 주의력이 호흡의 모든 순간까지 확장 될 때에 일어납니다. 즉 호흡을 들이쉴 때 첫 감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압니다. 들숨의 첫 순간에서 시작하여 들숨이 끝날 때까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호흡이 일으키는 감각을 알아차리며 지켜봅니다. 그리고 호흡 사이 멈춤을 봅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는 첫 순간과 날숨이 전개되면서 일으키는 감각을 날숨이 끝나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리며 지켜봅니다.

길 비키기

여러분은 수백 번의 호흡을 하는 동안 연속적으로 각각의 들숨과 날숨의 모든 부분을 연달아 경험합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재순간의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정도의 ‘고요함’은, 매 순간(현재순간)의 호흡을 제외하고는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이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한 것입니다. 마음(마음작용)이 스스로 이 일을 합니다. 호흡과 단둘이 있는 이 단계를 마음은 매우 평화롭고 즐겁게 인식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에고(ego; 我, 我相)의 주요한 부분인 ‘행하는 것(doer; 판단, 분별, 평가, 생각, 통제 등으로 작용하는 의도적이고 능동적 측면의 마음)’이 여기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만 길을 비키고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행은 애쓰지 않아도 나아갑니다. 내버려두기만 하면 마음은 모든 순간에 오직 호흡과 함께하는 매우 단순하고 평화롭고 감미로운 고요한 집중으로 자동적으로 기울 것입니다. 이것이 심일경성心一境性(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마음이 하나로 모임, 마음의 통일, 매 현재순간에서의 통일, 고요한 멈춤에서의 통일; 마음이 완전히 한 곳으로 고요히 모여 있는 상태, 순수 고요집중. 고요한 멈춤, 시간의 멈춤, 시공時空 초월, 비이원성非二元性, 무분별 상태; 삼매 상태, 몰아沒我 고요집중 상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아름다운 호흡’의 시작

4단계를 저는 수행의 ‘도약판’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지복至福의 상태로 뛰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입하지 않으면서 이런 의식의 통일성을 그냥 유지만 하면, 호흡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음이 호흡경험의 중심에 고요히 초점을 맞추면서 호흡은 점차 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 마음은 이런 평화로운 호흡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태를 저는 '아름다움 호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합니다.

다음 단계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호흡이 사라질 때 오직 남는 것은 '아름다움' 뿐입니다. '아름다움'이 마음의 유일한 대상이 됩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마음이 마음을 스스로의 대상으로 취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름다운 호흡’만을 애씀 없이 매우 긴 시간 동안 인식하면서, 마음속에서 지복이 처음으로 꽃피는 것을 막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지복이 발전하고 성장해 매우 견고하고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자는 선정 삼매라 부르는 상태에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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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마타 수행의 처음 네 단계를 설명했습니다. 각각의 단계는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충분히 계발되어야 합니다. 이 네 단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이 네 단계들을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만드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은 4단계인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을 쉽게 유지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대략 200~300번 호흡을 하는 동안(대략 1시간 정도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고 호흡의 모든 순간을 연속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여러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호흡을 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행에서는 주의깊은 인내가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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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 호흡의 웨다나(순수 감각)만을 생각(망상, 상상) 없이 30분~1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사띠할 수 있으면, 사띠의 수준이 어느 정도 잘 계발된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수행이 깊어지면 수행 도중에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대략적으로 추정하기도 어렵다. (1~3 시간 정도의) 수행을 마친 직후에 수행을 반조하고 그 시간을 대략적으로 추정해 본다.

여기서 호흡의 웨다나(순수 감각)만을 사띠한다는 것은 호흡(들숨-날숨; 몸에 드나드는 공기)의 느낌, 즉 콧구멍 주변(안, 밖, 인중)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부딪힘과 접촉 감각을, '뜨겁다, 차갑다' 등으로 판단 분별하지 말고, 그냥 호흡의 순수 감각(부딪힘 또는 접촉 감각) 자체만을 마음챙겨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만약 '뜨겁다, 차갑다'를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머리나 몸에 열이 확 오르거나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수행을 하다보면, 거친 수준에서부터 점점 더 미세한(또는 깊은) 수준까지 여러 수준의 사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사마타 수행(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에서 호흡은 사띠를 거친 수준(거친 감각,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 미세한(또는 깊은) 수준(미세한 감각,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수준)으로 건너가게 하는 아치형태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 수행이 이 정도 수준(호흡의 웨다나만을 망상 없이 1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사띠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 되면 호흡의 웨다나를 잘 알아차리려는 의도적인 노력(자기 의지의 표현인 의도적인 노력, 즉 의도적으로 집중하려는 노력)보다도, 고요함이 주는 심신의 행복감에 온몸을 맡기고 고요함을 잘 유지함으로써 '고요함과 자연적인 집중'이 저절로 깊어지게 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진다.

사마타 수행(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 '정정진·정념·정정'을 계발하는 수행)의 단계가 깊어지면 '나(我)'의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놓아버리는 것이 바른 노력(정정진)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나(我)'의 의지의 표현인 의도적인 노력조차도 미세한 집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을 팔정도의 한 부분으로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정정진·정념·정정’을 계발하는 수행)에 포함시켜 가르치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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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마음의 습관적 작용(상카라; 行)을 바꾸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를 했더라도 습관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데는 반복적이고 꾸준한 바른 실천(수련, 훈련, 연습, training)이 필요하다.

수행은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훈련과 유사한 면이 있다. 수행은 일종의 정신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 수행은 시간이 지날수록(정신근육이 키워질수록) 쉽고 즐겁고 행복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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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사마타 수행(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의 5단계는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입니다. 4단계에 대한 설명에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알아차림의 균일한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없어지면 완전한 주의력은 호흡의 경험에만 연속적으로 유지된 상태에서 편안하게 쉬게 됩니다. 그러면 호흡은 저절로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거칠고 평범한 호흡이 아주 부드럽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호흡’으로 바뀝니다. 마음은 이러한 ’아름다운 호흡‘을 인식하고 거기서 기쁨을 느끼며 깊어지는 만족감을 경험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호흡‘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 단계에서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뭔가 하려고 하면 전체 과정을 망칠 것입니다. ’아름다운 호흡‘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 단계부터는 (능동적인 정신작용인) '행하는 것(doer)' 이 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수동적인 정신작용인) '아는 것(knower)' 만이 남습니다. 즉 이 단계에서부터는 의지(의도, 노력), 생각, 판단, 분별, 평가 등과 같은 능동적인 정신작용 없이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다.

오직 '아름다움' 만이 남습니다

’아름다운 호흡‘을 그저 고요히 지켜보기만 하면 호흡은 저절로 더욱 고요하게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호흡은 ‘아름다움’이라는 ‘표상’만 남기고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고요함이 있을 때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호흡의 감각과 함께 몸의 감각이 점차 사라지고 오직 '아름다움'만이 남습니다. '아름다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아름다움의 표상'은 다음 단계의 수행에서 등장합니다. 수행자는 고요해진 마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표상'을 명확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표상’을 부처님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빠알리어)로 ‘니밋따nimitta’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단계를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라고 부릅니다. 니밋따는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고요함이 있을 때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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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이 단계는 생각, 그리고 호흡에 대한 감각을 포함한 모든 신체감각(오감각)을 정말 완벽하게 놓아버려서, 오직 아름다운 정신적 표상, 즉 니밋따만이 남았을 때 성취됩니다.

이 니밋따가 처음 나타날 때는 정말 이상합니다. 수행자는 이런 과정을 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이라 부르는 정신작용은 그 인생 경험의 기억창고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비슷한 표상을 찾아냅니다. 육체를 벗어난(오감각을 초월한) 이 아름다움, 즉 정신적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수행자에게 아름다운 빛으로 감지됩니다. 어떤 사람은 눈부신 흰빛 구름을, 어떤 사람은 금빛 별이나 태양이나 달을, 어떤 사람은 찬란한 푸른빛의 보석 등을 봅니다.

육체를 벗어난 이 정신적 아름다움을 수행자들은 아름다운 빛으로 감지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닙니다. 눈은 감겨 있고 안식眼識은 이미 꺼져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처음으로) 오감각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의식(제6식)의 표상입니다. 이것은 보름달(아름답게 빛나는 청정해진 마음에 대한 비유)이 구름(오감각의 세계 또는 감각적 욕망의 세계에 대한 비유) 뒤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청정해진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빛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수행자에게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경험한 수행자들이 (빛은 아니지만) 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행자들의 경우에는 이 경험을 강력한 평온 혹은 강렬한 희열의 측면에서 묘사(표현)하기도 합니다.

니밋따의 특징

- 니밋따는 수행자가 긴 시간 동안 '아름다운 호흡'(5단계)에서 머물고 난 후에 등장합니다.
- 호흡이 사라져야 나타납니다.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각이 완전하게 사라져야 나타납니다.
- 생각(내면의 말, 해설)이 완전히 사라진 고요해진 마음에서만 나타납니다.
- 이상하지만 강렬하고 매력적입니다.
- 매우 아름답고 순수하고 단순한 대상입니다.

니밋따의 특징을 언급한 이유는 여러분이 진짜 니밋따와 상상의 니밋따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처음 니밋따가 나타날 때 흐릿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즉시 이전 단계인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론 니밋따가 밝지만 불안정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주의력을 '아름다운 호흡'에 편안하게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아름다운 호흡'에서 충분히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니밋따로 옮겨갈 때 그것은 빛나고 안정적이며 유지하기 쉬울 것입니다.

놓아버리기

니밋따가 흐릿하게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만족의 깊이가 너무 얕고 뭔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은 대개 빛나는 니밋따나 선정으로 빨리 가기를 원합니다. 선정은 놓아버림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선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만족의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호흡'에서 뭔가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만족감을 충분히 계발하십시오. 그러면(조건이 갖춰지면) 니밋따와 선정은 저절로(자연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니밋따가 불안정한 이유는 여러분이 여전히 '행하는 것'의 간섭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심신心身(육체작용과 정신작용)이 고요해지는(정지하는, 멈춰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행하는 것'의 간섭을 멈추고 완전히 길을 비켜야 합니다. 깊은 수행은 진정으로 놓아버릴 때에만 일어납니다.

니밋따가 나타났을 때 '이게 뭐지?' '이게 선정인가?' 등의 질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의문은 수행의 과정을 방해합니다. 여행이 끝난(선정 상태에서 나온) 후에야 여러분은 여행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수행 중에는 니밋따의 빛깔도 모양도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불필요한 의문들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기울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곳은 대개 니밋따의 중심입니다. 주의력이 바로 그 중심으로 빨려들 때, 또는 빛이 확장되어 여러분을 덮어버릴 때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여행을 즐기십시오. 마음이 저절로 지복至福으로 몰입되도록 그냥 놔두십시오. 마음이 저절로 선정 삼매 상태로 빠져들도록 그냥 놔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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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 선정 삼매

니밋따가 확장되고 지속되면 선정 삼매가 일어납니다. (선정 삼매는 대개 니밋따를 인지한 후에 일어나지만, 아라한 사리뿟따가 말했듯이 니밋따 없이 선정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정 삼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그것은 흥분(들뜸)과 두려움입니다. 들뜸이 일면 선정 삼매에 들지 못합니다. 들뜸의 반응을 가라앉히고 모든 '와~'는 선정 삼매에서 나온 후로 미루십시오.

더 흔한 장애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자기 정체성의 본질적인 부분(자아의식 또는 아상我相)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선정 삼매 상태에서는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적 분별식; 에고식 또는 자아의식)이 한시적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초심자에게 큰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와 바로 앞에 있는 매혹적인 지복에 대한 끌림을 통해 극복될 수 있습니다. 법法(dhamma; 진리, 부처님 가르침)을 신뢰하고, 애씀 없는 에고 없는 지극히 행복한 경험, 선정 삼매의 경험 속에 여러분을 내맡기십시오. 모든 통제를 잠시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하십시오.

선정 삼매의 특징

선정 삼매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몇 분 동안 지속된 것은 선정 삼매가 아닙니다. 깊은 선정 삼매는 일반적으로 여러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선정 삼매에 들어가면 선택의 여지없이 그간 축척한 연료를 모두 소진했을 때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타 수행에 익숙해져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이루면 선정 삼매에 들어있는 시간도 자유자재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선정 삼매의 특징은 선정 중에는 외부의 소릴 듣거나 하는 등의 신체감각(오감각)을 경험하거나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사띠(알아차림)의 명확한 단일성, 변치않고 지속되는 비이원적 지복의 경험만이 매우 긴 시간 동안 존재합니다. 이것은 혼수상태나 깊은 수면상태가 아니라 매우 고양된 알아차림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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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

부처님이 설하신 『마하Maha 사띠Sati 빳타나Patthāna 숫따Sutta(사띠念의 확립 정착處에 대한 큰大 경經; 대념처경大念處經), D22』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큰 분류 아래 호흡에 대한 사따의 확립 정착 수행을 시작으로 하여 16가지 소분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주 :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에 관한 부처님의 설법을 기록한 긴 경)』는 팔정도를 닦는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마타-위빠사나)에 있어서 매우 (혹은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요컨대,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을 사띠하는 수행과 호흡에 대한 사띠를 확립 정착하여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와 사마타 후에 선정 삼매에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평점심을 사용해서 신수심법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관찰하면서) 머무는 수행(위빠사나)을 모두 포함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사마타-위빠사나 상호의존) 방식으로 '신수심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念)를 빳타나(확립하고 정착; 處)하는 수행'(이른바 사념처四念處 수행) 방법을 설(설명)하신 부처님의 설법(법을 설명함)을 기록한 경전이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대념처경)』이다.>

부처님이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대념처경)』에서 사마타의 '초선정 삼매 ~ 제4선정 삼매'를 설(설명)하신 부분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정정正定(삼마 사마디; 바른 삼매)인가?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불선한 것(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탐색적 작용[위딱까vitakka]와 회귀반성적 작용[위짜라vicāra]이 있는(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감각적 욕망과 불선법, 또는 신체감각 또는 세속을) 멀리 벗어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삐띠pīti]과 행복[수카sukha]이 있는, 그리고 (그 삐띠와 수카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마음의 전일성]을 갖춘 첫 번째 선정(초선初禪, 초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부처님께서는 삼매를 색계 삼매(물질적 요소를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와 무색계 삼매(비물질적 요소를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특히 색계 삼매를 자나jhāna(선禪; 선禪은 자나..선나..선으로 변천된 자나의 한문 음사)라고 칭하셨다.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에서는 자나jhāna(색계 삼매)를 대개 선禪 또는 선정禪定이라고 번역하는데, 정定(고요할 정定)은 사마디samādhi(삼매三昧는 사마디samādhi의 한문 음사)를 한문으로 뜻 번역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선정禪定은 '자나사마디jhānasamādhi'(선삼매禪三昧)다. 이하 자나jhāna(색계 삼매; 호흡과 같은 물질적 현상 또는 물질적 작용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를 '선정 또는 선정 삼매'로 표기함.>

<각주 :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한 수행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마음의 다섯 가지 요소(현상 또는 작용)가 있다. (맛지마니까야中部 43 『유명대경有明大經』 MN I, 294)

• 위딱까vitakka(심尋)
• 위짜라vicara(사伺)
• 삐띠piiti(희喜; 희열)
• 수카sukha(락樂; 행복)
• 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심일경성心一境性)>

자신이 든 삼매가 부처님이 설(설명)하신 초선정 삼매인지 아닌지는 마음 상태에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현상 또는 작용)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진정 무엇인가(어떤 것인가)는 초선정 삼매에서 나온 직후에 초선정 상태를 반조返照(되돌아 비추어 봄)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알아내야 한다.

• 위딱까vitakka, 심尋(찾을 심尋), 심구尋求(찾을 심尋 + 구할 구求) : 니밋따(초선정 삼매에 진입하기 직전의 마음 상태에 대한 물질적 표상; 초선정 삼매에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지만, 아라한 사리뿟따가 말했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니밋따 없이 초선정에 드는 경우도 있음)가 아니라, 지복至福[삐띠와 수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움켜쥐는(심구尋求하는) 마음의 탐색적 작용. 위딱까는 일종의 집착 작용이기도 하다.

• 위짜라vicara, 사伺(엿볼 사伺), 사찰伺察(엿볼 사伺 + 살필 찰察) : 위딱까(일종의 집착 작용)에 의해 멀어지는 초선정의 지복을, 다시 무의식적으로 집착을 반성하고(사찰伺察하고) 위딱까를 놓아버림으로써 지복으로 반복하여 되돌아가는 회귀반성적 작용. 위딱까-위짜라 반복 과정은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 아직 남아있는 마음의 미세한 흔들림(진동, 동요)이다.

• 삐띠piti, 희喜, 희열喜悦 : 고요한 희열, 기쁨. (수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다소 거친 기쁨)

• 수카sukha, 락樂, 안락安樂, 행복幸福 : 깊고 고요한 행복, 평온하고 아늑한 행복감.

• 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심일경성心一境性 : 마음이 완전히 한 곳으로 고요히 모여 있는 상태, 순수 고요집중. 자아自我(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고요한 멈춤, 시간의 멈춤, 시공時空 초월, 영원함, 궁극성, 비이원성非二元性(또는 무분별) 등으로 느껴지기도(경험되기도) 한다.

초선정에서는 '지복至福(지극한 행복), 즉 삐띠(고요한 희열; 다소 거친 기쁨)와 수카(고요한 행복)'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정념正念과 정지知正; 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을 이루며 삐띠와 수카는 구분되지 않는다. 세 번째 선정(三禪, 제3선정 삼매)에 도달해서야 이 둘(삐띠와 수카)이 분리되고 수행자는 3선정 삼매에서 나온 후에 반조를 통해서 삐띠와 수카를 구분하게 된다.

‘삐띠와 수카’는 물질세계(오감각의 세계, 감각적 욕망의 세계-욕계欲界, 또는 속세)의 어떤 것도 능가(초월)하는 ‘지복至福(지극한 행복, 더 없는 행복)’으로 경험된다. 마음 상태에 위의 다섯 요소가 존재하고, 물질적인 오감각(신체감각)의 인식(전오식前五識)을 포함하여 그 외의 어떤 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초선정 삼매 상태다.

초선정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지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고요한 멈춤, 자아自我(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비이원성(무분별),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느낌)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이러한 초선정 또는 유사 근접 삼매의 체험에 압도되어 미혹한(현혹된) 사람은 이 체험을 자신이 믿는 어떤 '신(절대자,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하느님,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의 거룩한 불의 신 .. 등)과의 합일 또는 접신, 신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나 축복' 따위로 오해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바른 삼매'[정정正定, 삼마 사마디; 바른 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수련, 훈련)을 '사마디(삼매) 바와나(계발 수행),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 사마타'라 칭하셨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bhāvanā(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측면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여 가르치셨는데,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지칭하는 사마타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바와나를 통칭한 것이다.

삼매 상태의 경험은 절대자, 신,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하느님, 브라만신,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라 불렸음)의 거룩한 불의 신 .. 등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 아니라,

언제하든, 어디서하든, 누가하든 상관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과학적 경험처럼, 언제하든(2500년 전에 하든 지금하든), 어디서하든(인도에서하든 한국에서하든 미국에서하든), 누가하든 상관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에게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음의 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대한 경험이므로 일종의 과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신체 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자아의식, 아상我相)이 바른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또는 자아의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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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는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흔들림, 진동, 동요)가 가라앉음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고요한) 평온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 의해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수카]의 정결浄潔[sampasadana]함이 있는, 그리고 (그 삐띠와 수카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마음의 전일성]을 갖춘 두 번째 선정(二禪, 제2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초선정 삼매를 이루는 마음 상태의 다섯 요소(현상 또는 작용)인 ‘위딱까, 위짜라, 삐띠, 수카,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 중에서 ‘마음 작용의 미세한 요동(흔들림, 동요)인 위딱까와 위짜라’를 가라앉히고, 더 깊고 고요한 ‘삐띠, 수카, 심일경성’, 이 세 요소만 남게 되면 그때가 제2선정 삼매다.>

"수행자는 (상대적으로 거친) 희열[삐띠]이 가라앉음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더 고요한) 평정[우뻭카upekkha]한 상태에 머문다. 성인聖人(예류자~아라한)들이 말하는 '평정[捨; 우뻭카]에서 사띠[念]를 갖추어 행복[樂; 수카]에 머문다[捨念樂住]'고 하는, (더욱 더 고요한) 평정심[우뻭카]에서 오는 행복감[수카]에 대한 (더욱 더)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세 번째 선정(三禪, 제3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2선정 삼매 상태에서의 상대적으로 거친 삐띠(희열)를 가라앉히고, 더 고요하고 깊은 집중이 이루진 가운데 더욱 더 고요하고 깊은 수카(행복감)와 그 수카에 대한 심일경성(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그때가 제3선정 삼매다.>

"수행자는 이미 기쁨, 슬픔, 만족, 불만족의 느낌이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괴로움[둑카]도 즐거움[행복; 수카]도 떠나서(벗어나서, 뛰어넘어서) (둑카와 수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우뻭카와 사띠의 청정함[upekkha-sati-parisuddhi; 捨念淸淨]이 있는 (또는 온전히 청정한 평정심에 의한 사띠의 청정함이 있는), 그리고 (온전히 청정해진) 평정심[우뻭카]에 대한 (온전히)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네 번째 선정(四禪, 제4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른 삼매[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 정정正定]'라고 한다."

<각주 : 제3선정 삼매 상태에서의 ‘수카’마저 가라앉히고, 더욱 더 고요한 상태에서 온전히 청정해진 평정심[우빽카]과 그 평정심에 대한 극도로 고요히 집중된 심일경성(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그때가 제4선정 삼매다.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즉 신수심법身受心法(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정견(바른 관찰/통찰)-정사유(바른 사유)를 통해서 깊은 통찰지혜(깊은 빤냐)를 계발하는 수행인 위빠사나에 필요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 평정한 마음 상태), 즉 탐(갈망, 탐욕)·진(혐오, 성냄)·치(갈망과 혐오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평정한 마음 상태가 제4선정 삼매에서 극대로 계발된다.

그러나 4선정 삼매에서 극대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도 삼매에서 나온 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잦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탐진치와 번뇌가 되살아난다. 선정 삼매에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는, 수행자가 들었던 선정 삼매의 깊이와 수행자가 처한 주변환경(경계)에 따라 다르지만, 제4선정 삼매에 들었다 나온 경우 길게는 수 일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삼매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삼매 체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빽카(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서 신수심법(身受心法;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법法)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통찰지(통찰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을 해야만 한다.>

<각주 : 선정의 자유자재

사마타(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에 숙달된 수행자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머무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한 번 튕길 사이에도 입정入定(선정 삼매에 듦)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신心身이 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깊은 잠에 드는 사람과 유사한 능력(?)인 셈이다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들은 모두 손가락 한 번 튕길 사이에 입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자재한 선정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경전에 기록된 선정의 자유자재는 아래와 같다

• 전향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의 조건들로 자유자재하게 전향함
• 입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 입정함
• 머묾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에 들어 자유자재하게 머물 수 있음
• 출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서 나올 수 있음
• 반조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조건들과 선정상태를 반조함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선정 삼매는 바와나-빤냐[신수심법에 대한 미시-일상-거시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수행 지혜 또는 통찰 지혜]를 계발하는데 쓸모가 없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를 완성하고 정각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해야 한다.

사마타를 숙달시켜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하면 할수록 위빠사나(사마타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깊은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 수행)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또는 통찰 지혜)를 더 발전 향상시킬 수 있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전체가 더 발전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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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913880552257844&id=100009077529459

부처님께서 설하신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는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194956910816872&id=10000907752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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