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바로보는 불교_무념 스님

상락아정常樂我淨

< 상락아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

붓다는 ‘무아(無我)’라고 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 교리를 고수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교단에서 ‘무아’의 교리에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아’이기는 하지만 어떤 개체적 성질을 지닌 개아는 존재할 거 아니냐? -인상(人相)-

뭔소리냐? 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내가 소멸해버리는데 그럼 뭐하러 수행하느냐?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럼 나는 해탈을 추구하지 않고 중생으로 남겠다. - 중생상(衆生相)-

깨달음이란 업을 완전히 정화해서 순수 영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순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 - 수자상(壽者相)-

이렇게 ‘무아’에 대한 반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가장 지독하게 공격한 곳이 브라만교(지금의 힌두교) 입니다.
신에게 헌공물을 올리며 제사를 지내고 그 복을 받는 은총 신앙이니까 복을 빌어야 할 대상인 신이 존재해야 하고, 복을 받는 주체인 ‘내’가 있어야 합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고, 무아를 깨달아 해탈해야 하는 것이라면 기복신앙은 존립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그렇게 수많은 종교단체의 무자비한 공격을 초기대승까지는 열심히 방어를 합니다.
초기대승의 꽃이라고 불리는 <금강경>이 ‘무아’의 이론을 방어하기 위해 이때 만들어집니다.
금강경에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라는 문장이 수없이 반복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승의 이론이 발전하면서 은총신앙이 불교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보살이라는 신들이 만들어지고 붓다도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열반에서 되돌아와 법당에 앉아 공양을 올리면 받아먹고 복덕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이제 ‘무아’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해탈해야 한다는 교리는 현실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복을 주는 붓다도 영원히 존재해야 하고 복을 받는 나도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열반이라는 개념에 수정이 가해집니다.

초기불교에서 열반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대승의 은총신앙에서는 열반을 성취했어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해야 할 일은 다시 몸을 받아 세속에 내려와서 중생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열반이라는 것이 무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수 영혼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며 뭇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노력 봉사해야 하는 상태로 바뀝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 붓다는 수 억겁 전에 붓다가 되었지만, 순전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 석가모니 몸으로 태어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다시 열반에 듭니다.
즉 열반이라는 것이 ‘무아’를 깨달았지만 ‘순수한 아’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언제든지 몸을 만들어 인간계에 태어날 수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후기 대승불교인 <대승열반경>에서 열반의 개념이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바뀌게 됩니다.

상(常); 열반은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상태다.
락(樂); 그 열반의 상태는 지복의 상태다.
아(我); 그 상태는 ‘무아’가 아니고 ‘아’이다.
정(靜): ‘아’라는 상태는 중생들이 경험하는 ‘아’가 아니다. 즉 이기적인 ‘아’가 소멸하고 탐진치가 완전히 제거된 고요하고 깨끗하고 순수하다.

남방에서는 붓다는 이미 가고 없는 사람입니다.
남방에서 열반은 존재의 소멸은 아니더라도 하여튼 몸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영원한 해탈입니다.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완전한 소멸인지 붓다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아’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열반이 도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 붓다는 “네가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면 스스로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 또는 ‘설명해봐야 희론에 불과하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붓다 당시에 아라한이 된 사람은 법구경이야기에 따르면 수십만 명은 되어 보이지만 ‘무아’라는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승에 들어와서 그렇게 과거 선배들이 지키려고 했던 붓다의 말씀이 어떤 의도에 의해 왜곡되면서 불교는 바야흐로 샤머니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산제, 수륙제, 예수제 등등등....
어~으~아~오~!(이것은 감탄사가 아닙니다. 범패라는 것입니다.)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