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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이 무엇인지와 알아차림의 단계' 동영상 녹취>
안녕하십니까?
알아차림이 무엇인지, 또한 알아차림의 단계를 짧게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알아차림이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적 알아차림, 명상적 알아차림 그리고 순수 알아차림, (즉) 개념을 벗어난 순수 알아차림.
첫 번째는 인제 개나 소나 누구나 명상을 안 배워도 있는.. 그냥 차를 마실 때나 길을 건너갈 때나 뭐 (이럴때) 이렇게 필요한 자각, 그러한 알아차림을 의미하고.
두 번째 알아차림, 명상적 알아차림. 인제 명상을 배우면 이것을 배우는데, 마음이 (깨어서 또는 깨어있는 채로) 현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현존(현재에 존재)하지 못합니다, 산란합니다. 알아차림의 반대는 (멍함과) 산란함인데, 산란함은 생각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늘 생각에 빠져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환경에 깨어나는 것이에요.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환경에 깨어난다는 것은 보이는 것들 이런 거, 몸의 촉감 이런 거에 깨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에 빠져있으면 환경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을 자각하고 있는 한 마음이 깨어있습니다. 이것이 (명상적) 알아차림의 의미입니다. 앞에 있는 것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몸에 촉감이 느껴지고, 호흡이 (느껴지고)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명상적) 알아차림의 의미거든요. 보통 이런 자각을 못하고 있어요. 다르게 말하자면 이 명상적 알아차림은 앎,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해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 뭐가 보인다는 것을 아는 거, 이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다음에 마지막 순순 알아차림은 우리의 본성(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티벳불교에서는 르빠(뤼빠?)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제 경계가 없고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이러한 주체 객체 행위가 없는 이러한 마음자리, 우리의 본성, 순수 알아차림.. 지혜와 자비가 있는 우리의 본성(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수 알아차림은 인제 명상이 깊어지면 조금 자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부터는 알아차리기가 어렵고요. 처음에는 오감의 대상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인제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인제 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리게 (순수 알아차림을 하게) 됩니다.
불교 명상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사마타와 위빠사나.
사마타는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을 의미하고. 쉽게 말하자면 알아차림을 기르는 것을 의미하는 거애요. 더 많이 알아차릴수록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고 생각이 좀 느려지고 이렇게 마음이 조금 비어(비워)지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비어진) 고요한 마음상태에서 두 번째 위빠사나 명상을 할 수 있어요.
위빠사나는 통찰을 의미하는 겁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미세해지고, 또한 윤회라는 것이 거친 대상에 빠져있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들리는 것에 집착하고, 생각과 감정에 집착하고, 이런 것이 고통의 의미이며 윤회의 의미에요. 근데 이렇게 명상을 하면 할수록 이런 현상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거든요. (여기서) 현상이라고 하면 안이비설신 생각 감정 이런 일곱 가지를 의미하는 건데, 집착이 놓아질수록 마음이 미세해 지면서 이 더 깊은 마음의 측면들을 접하게 되요.
마음의 측면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거친 마음의 측면 표층의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이분법적인 마음, 탐진치가 돌아가는 생각하는 마음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심층의식 이것은 무의식이라고도 하고 더 깊은 그러한 우리의 마음의 측면인데, 명상을 하면 할수록 두 번째 측면을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되요. (무의식적인) 습관이 보이기 시작해요. 통찰이 와요. 여기서 이게 위빠사나를 의미합니다. 위빠사나는 (통찰) 지혜(를 계발하는 것)를 의미하고. 인제 자신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습관을 알아차리게 되면 이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거든요. 저절로.
명상이라는 것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의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잃게 되는, 자신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는 것이거든요. 습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또한 이 실상에 대한 통찰을 갖게(하게) 되요. 고苦, 무아, 무상, 공성, 불성에 대한 그런 통찰이 인제 오기 시작하면서, 이게 위빠사나 이게 (통찰) 지혜(를 계발하는 것)를 의미하고. 이 현상에 대한 현상의 본질, 보이는 것의 본질,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러니까 보이는 것이 공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이게 위빠사나 (통찰) 지혜(를 계발하는 것)를 의미하는 건데요. 아니면 생각과 감정에 대한, 생각에 공한 본질, 생각에 일시적인 지나가고 어디에도 존대하지 않고 뭐 이런.
우리는 일반적으로 착각이 있어요. 모든 것이 견고하고 바깥에 독립적으로 변함없이 뭐 이렇게 존재한다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이게 무지를 의미하는 거고. 이제 명상이 깊어질수록 이 현상에 그 본성, 본질이 인제 보이기 시작한다고요. 이게 통찰, 위빠사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명상이 점점 깊어질수록 인제 그 가장 심오한 마음의 경지, 르빠, 그러니까 순수 자각, 이것을 인제 더 많이 체험하고 그리고 인제 터득하고 그리고 인제 유지하게 되고 그다음에 인제 깨닫게 되는 과정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몇 분이 물어보셔서 알아차림과 알아차림의 단계를 짧게 소개해드렸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