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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충분하다


<아침의 시>


충분하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도 충분하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 호흡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호흡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에 이렇게 열려 있기를
우리는 거부해 왔다.
다시 또다시.
바로 이 순간까지.

이 순간까지.

- 데이비드 화이트 <충분하다> (류시화 옮김)


햇살 가득한 봄날, 숲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새들은 날개 속에 고개를 묻고,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람도 어린 잎사귀들 위에서 쉬고 있었다. 구름조차 하늘을 떠다니는 걸 잠시 멈추기로 한 듯했다. 그렇게 완벽한 고요가 이어지고 있을 때, 작은 울새 한 마리가 문득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뜻밖의 심오한 질문에 놀라 다들 울새를 쳐다보았다. 여기저기서 기척을 내긴 했으나 아무도 답을 말하지 못했다.

그때, 봉오리에서 수줍은 꽃잎을 한 장씩 펼친 장미가 햇빛에 첫 자태를 드러내며 말했다.

"삶은 무엇인가로 되어감이야."

가벼운 몸짓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비는 덜 철학적이었다. 꿀을 맛보며 꽃에서 꽃으로 날다가 향기로운 꽃에 내려앉으며 나비가 말했다.

"삶은 순수한 쾌락이야."

신은 결코 고통을 없애 주지 않는다는 듯, 땅바닥에서 자신의 몸보다 열 배나 큰 잎사귀를 옮기던 개미가 말했다.

"삶은 노력과 땀과 일이 전부야."

각자 삶의 의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숲의 빈터로 보슬비가 내리며 말했다.

"삶은 눈물의 연속이야."

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높이 날아오른 독수리가 멋진 곡선을 그으며 말했다.

"삶은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거야."

그때 한 시인이 숲에 도착했다. 그는 큰 나무 밑, 바위에 앉았다. 어린 울새가 나뭇잎 하나를 떨구며 시인에게 물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죠?"

시인이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끝없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고, 땀 흘려 일해야 하고, 눈물을 흘리고 성취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이 호흡만으로도 충분하지. 이 호흡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가끔은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자신의 본래 존재와 만나기 위해서는. 왜냐하면 가끔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도 삶의 의미이니까."

art credit_Olivier Föll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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