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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얀테의 법칙


한 스승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새 옷을 차려입고 몸에 향수까지 뿌린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제자들이 놀라서 쳐다보는 가운데 스승은 반갑게 그 신사를 껴안았다. 남자가 떠난 뒤 제자들이 말했다.
"어떻게 저토록 속물스럽고 세속적인 사람을 다정하게 껴안을 수 있죠? 전혀 영적인 사람이 아닌데."

스승이 말했다.
"그대들이 어리석어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의 의식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대들은 한참 멀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금욕을 행한다 해도 그의 영적 수준에는 못 미칠 것이다. 그에게는 다림질한 옷을 입거나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무엇을 입고 무엇을 행하는가에 관계없이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적 높이에 도달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그는 훌륭한 구도자이며, 고귀한 영혼이다."

스승의 말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 남자는 훗날 위대한 요가 스승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해마다 인도와 네팔 등지를 여행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거리와 상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짜이왈라와 릭샤왈라, 거스름돈 속이는 망고 장수와 기름때 묻은 잘레비(둥근 고리 형태의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 설탕 시럽에 재운 스낵) 장수에 비해 은연중에 내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여겼다. 하층민뿐 아니라 부자든 성직자든 세력가든 영적 자각에 있어서는 내가 더 우위에 있다고 자부했다. 내 삶의 궤적이 더 깊고 치열하며, 그들의 진부하고 세속적인 삶으로부터는 배울 점이 없다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가 밤 기차를 타고 인도를 여행할 때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 오는 들판과 마을들이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것이다. 습지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잠 깬 새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날아간다. 입자 굵은 흑백사진 속에서 달은 이미 빛을 잃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고서 딱딱한 이등석 침대칸에 엎드려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으면 너무 고요하고 신비해서 반 시간이고 한 시간이고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 일이다. 라즈다니 특급열차 안에서 새벽을 맞아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앞좌석 침대칸에 누워 가던 열 살쯤 된 소년도 나처럼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깜빡이지도 않는 눈동자가 얼마나 순수하게 빛나던지, 이제 처음으로 세상의 새벽을 구경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도 저런 눈을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침대칸에 비스듬히 누운 남자도 그렇게 동터 오는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 칸에서 숄을 덮고 웅크리고 자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지구별에 온 같은 여행자임을 느꼈다. 거기 평범함과 특별함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인간 존재들도 보고 느끼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매번 놀랍고 안심이 되는 일이다. 옷차림과 하는 일과 걷는 길에 차이가 있을 뿐, 어딘가에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각에 다른 곳에선 붉은 아침 해를 바라보는 것이 다를 뿐, 세상의 신비와 미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고독한 전사라는 사실을.

동생 테오가 어떤 화가를 '평범하다'고 말하자 고흐는 이렇게 편지에 썼다.
"그것은 전적으로 네가 평범함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린 문제야. 가장 단순한 의미의 평범을 나는 결코 멸시하지 않아. 누군가가 평범함을 경멸한다고 해서, 그가 그 수준 위에 있는 것은 아니야. 내 생각에 우리는 평범함에 대해 적어도 어떤 존경심을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하고, 또 평범함이란 이미 상당한 수준을 의미하며 엄청난 곤경을 뚫고 도달한 상태라는 점을 알아야만 해."

나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초조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 열등감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나와 그들의 차이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언어로 종이 위에 생각을 표현하는 약간의 전문성을 가졌을 뿐, 밀가루 반죽으로 둥근 고리를 만들어 바삭하게 튀긴 후 알맞게 설탕 시럽에 적시는 기술과 아무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에고가 끝나는 곳에서 영혼이 태어난다는 잠언은 진리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깰 때 우리는 비로소 진실해진다.

뭄바이에서 태어난 <정글 북>의 저자 루디야드 키플링은 이런 일화를 전한다. 어느 날 북인도에서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그는 누추한 차림의 여인을 목격하게 된다. 우기라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여인은 비를 피하기 위해 표도 없이 기차에 탄 게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올라탄 칸에는 온통 영국인 사업가들과 귀족들뿐이었고, 모두가 거드름을 피우며 일제히 영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때 문득 키플링은 깨닫는다. 젖은 머리카락을 젖은 사리로 가리고서 약간 몸을 떨며 창밖에 퍼붓는 비를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숫자와 정치 논평으로 가득한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신사들보다 오히려 특별한 영혼이라는 것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중 몇 가지는 이것이다.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다른 이들보다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다른 좋은 사람들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 각자는 고유한 사람일 뿐 남보다 특별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art credit_Steve McCu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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