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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몸은 잠시 머무는 집

누구나 하는 염색도 하지 않았다. 백발에 가까운 은빛 머리칼은 바람에 자연스럽게 흩날린다. 얼굴엔 화장기 하나 없다. 헐렁한 바지에 소박한 신발. 언뜻 보면 아주 평범한 여인이다. 다만 짙은 눈썹과 윤곽이 뚜렷한 이목구비는 과거에 그가 은막 스타였음을 증명해준다. 

“호탕하게 살아야 해요.” 그는 ‘호탕’이라는 단어를 썼다. 40년간 요가와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가꿔온 문숙(61·사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스런 삶인가”라는 물음에 주저 없이 ‘호탕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인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용 가운데 인간의 생각과 의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죠? 피는 알아서 돌아가고, 소화도 스스로 알아서 해요. 신비롭게도 우리 몸은 알아서 숨을 쉬며 삶을 영위해 나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물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오면 물을 넣어주고,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오면 음식을 넣어주는 정도죠. 그것도 ‘그쪽’에서 신호를 보내주면 우리는 그 신호에 따를 뿐인 거죠.” 그가 말하는 ‘그쪽’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에게 몸은 잠시 머무는 집이다.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처럼 우리는 수억만개의 미세물질로 만들어진 ‘몸’이라는 존재에 잠시 세 들어 살고 있는 셈이죠. 언젠가는 낡은 옷을 벗듯이 가지런히 벗어서 지구에 내주어야 해요. 아무리 돌려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도 소용없어요. 때가 되면 누구나 곧바로 몸을 돌려주고 나가야 해요. 그것이 인간이 몸에 살고 있는 조건이고 자연의 법칙인 셈이죠.”

그래서 그는 세 들어 사는 몸을 잘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려 산속에서 오랫동안 명상과 요가 수련을 하며 힘든 시간을 넘어온 그의 ‘육체’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그는 스스로 노력을 해서 그런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40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한국에 돌아와 건강을 이야기하는 강사로 변신한 그는 우선 몸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몸이 있기에 가능해요. 몸이 있기에 행복과 고통이 있고, 삶이란 것에 대한 체험도 가능해요. 그 몸은 정해진 유통기한이 있는 유기 생명체이죠. 몸은 살아가기 위해 자동으로 숨쉬며 기운을 받아들이고, 자동 신체지능에 의해 알아서 변화하고 치유되고 유지돼요. 그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어떡해야 하죠?”

그는 최근 먹는 것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공부하고 깨달은 먹거리에 대해 책을 썼다. 최근 펴낸 <문숙의 자연식>에서 그는 먹는다는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것을 당부한다. 맛과 욕심이 아닌 편함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안달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맛있거나 몸에 좋다는 음식이 있으면 ‘저걸 먹어봐야 하는데…’라며 안달해요.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해가 돼요. 식탁 위에 놓인 시금치, 배추 한 조각도 우리에겐 하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는 생명체로서 종족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그의 어마어마한 생을 내놓고 있는 거죠. 그런 생각 없이 오감의 욕구에만 반응하면 쳇바퀴처럼 이어지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야 해요. 그러는 동안 몸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존재가 됩니다.”

그는 내 몸으로 들어오는 생명에 대해 고마워하고, 그 소중함을 깨달아, 다른 생명이 나의 한 부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먹거리에 대한 기본 자세라고 한다. 그런 시각을 갖게 되면 먹는 방법과 종류가 달라지고, 자기 욕망과의 투쟁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지구의 기운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교 재학 중 연기자로 데뷔해, 스무살에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대종상 신인상을 받은 그는 23살 연상인 고 이만희 감독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결혼 1년 만에 병으로 숨졌고, 문씨는 미국으로 갔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나, 이 감독과의 짧은 행복의 대가는 가혹했고, 깊었다. 걷잡을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고, 뿌옇게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으로 묵언명상 수련을 떠났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산속에서 매일 열네 시간씩 요가와 명상 수련을 했다.

수행을 하며 건강을 되찾은 그는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연치유식 요리연구원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음식을 조리할 때는 애를 쓰면 안 돼요. 음식은 자체의 성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까지 먹기 때문이죠.” 그는 만드는 이가 즐거워야 먹는 이에게 이롭다고 한다.

그는 건강을 위해 채식을 권한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 동물의 몸을 먹는 대신 채식을 하면 건강은 물론 맑은 의식을 갖게 되고,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부가 끌어올린 생선이 펄떡거립니다. 숨을 쉴 수 없어 죽을힘을 다해 허덕이는 겁니다. 그런 생명체의 고통 앞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자연스런 일이 아니죠.”

그는 자연 그대로 모양과 향이 보존돼 있는 통식품(현미와 콩, 채소, 과일)과 인공감미료나 유전자 조작이 안 된 자연식품,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신선한 식품 등을 먹을 것을 권한다.

“우리 몸은 신선하고 향기로운 음식을 보는 순간, 아! 하고 소화흡수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해요. 그러니 가장 쉬운 방법으로 소화흡수돼 우리 몸으로 변하는 것을 먹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자연식입니다.” 그는 자연식에는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건강식’과 질병을 치유하는 ‘치유식’, 마음을 맑게 하고 수행에 도움을 주는 ‘젠 푸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호탕함’이 이해된다. 긍적적인 사고를 하며 편안함을 따르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일 게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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