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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깜놀! 아내의 삭발

▲ 보름 만에 만난 아내는 '욕심을 버리고 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불쑥
삭발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1

아주 오랜만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사진 장비를 싣고 이곳저곳을 다녀야하는 강의때문에 아내의 차량을 제가 사용한 탓도 있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에 어른을 모셔야하는 팍팍한 일과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심학산 자락의 한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자 아내가 탄 버스가 심학산돌곶이꽃마을정류장을 지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저녁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버스에서 내리도록하고 아내를 태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깜놀'! 아내가 삭발을 한 것입니다. 아내의 머리는 마침 한강으로 가라앉고 있는 석양처럼 둥근 모습이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살려고..."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욕심을 버릴 양이면 마음속 탐욕을 버릴 일이지 길었던 머리카락을 왜 버려?"  

아내의 서먹한 시선을 피해 머리를 살피니 비구니처럼 '파르라니'한 머리가 아니라 오히려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바싹 깎은 머리에 뿌리까지 흰 머리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까지 한 모든 헤어스타일 중 최고'라고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이 자꾸 나를 보고 합장을 하네요."  

한때 출가를 선언해서 저를 식겁하게 했던 아내입니다.   


▲  지금까지도 아내는 긴 머리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아내가 미장원을 간일은 평생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미만이었지요. 늘 집에서 홀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2

제가 특히 긴 머리를 좋아해서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항상 긴 머리였습니다. 처녀시절에는 긴 머리를 뒤로 몰아 질끈 고무줄로 묶어 머리끝을 늘어뜨리는 망아지 꼬리머리, 즉 포니테일(ponytail)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젊었을 때는 포니테일이었지만 나이가 들고부터는 주로 쪽진머리였습니다. 일할 때도 머리가 풀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동여매었기 때문에 머리가 너무 팽팽해서 당기는 불편과 긴 머리를 감아야하는 점이 곱으로 성가신 것을 평생 잘 참았습니다. 

긴 머리의 장점은 평생 미용실 갈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머리가 허리까지 길면 무겁다며 머리단을 한 움큼 잡아서 앞으로 당긴 다음 손 아랫부위를 가위로 자르는 것이 머리 미용의 전부였습니다.   

아내가 긴 머리가 아니었던 단 한번은 결혼식 때였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올린 머리를 해야 한다는 당시 미용사의 권유에 따라 긴 머리를 자르고 생애 단 한번 파마머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파마머리는 보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바로 펴서 다시 기르기 시작했지요.

생애 단 한번 파마머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혼인 때였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살려고..."라고 말한 아내의 삭발이유는 사실 불교 출가 수행자가 준수해야할 최소 한도의 승모(僧貌)를 규정한 율문(律文)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기르는 행위도 장식의 일종으로 세속적 번뇌에 매이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삭발은 이런 세속적 얽매임과의 단절 선언이라는 점에서 출가정신의 상징입니다. 스님들의 삭발은 보름날과 그믐날, 한 달에 두 번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도 아내는 긴 머리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아내가 미장원을 간일은 평생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미만이었지요. 늘 집에서 홀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아내가 이제 무명초를 자르고 욕심과의 작별을 각오했으니 이제는 제 차례다, 싶습니다. 


▲  더 이상 보이지 않아야할 아내의 흰머리가 역시 삭발후에도 여전히 도드라져 보입니다. 
흰머리를 감추겠다는 생각도 버려야할 욕심 같습니다. 



- 출처 & 작성자 : 모티프원 (http://www.travelo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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