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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삶의 나침반

사람 냄새 가득한 동백숲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헨리데이비드소로우의 삶을 읽으면서 나는 '독립'에 대한 꿈을 꿨다. 방 하나 얻어 나가 사는 것, 이 아니라 진짜 자유. 그러기 위해 '바람이 통할 거리'와 각자의 춤을 추게 하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SNS를 통해 공유된 EBS 하나뿐인 지구에 소개된 하얼과 페달, 그리고 비파의 삶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과 욕망이 올라온다. 화려한 테헤란로보다 익숙한 우리 동네 골목이 좋은 것 처럼 방3화2의 신축건물보다, 칡넝쿨과 손수지은 욕조에 눈길이 간다. 이런 살림을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과 각오가 필요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곧,이라는 열망이 생긴다. 적게 먹고, 적게 벌고, 적게 일하고, 많이 '있고'싶다. 더 함께 있고 싶다. 더 사색하고 싶다. 더 산과 벗하며 살고 싶다.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향유할 자유를 바란다. (펌글 출처: http://linap.tistory.com/215 )

[귀농통문]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
사람 냄새 가득한 동백숲

꽁꽁 닫아 걸은 건 대문이 아니라 사실 우리 마음이었지 

처음 전남 장흥으로 터전을 옮길 때는 맑은 물이 흐르고 빽빽한 나무들이 울창한 동백숲에서 하얼과 알콩달콩 둘이서만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지요. 거친 도시살이와 수많은 인파에 지친 마음을 인적 없는 숲에서 위로받고 오로지 자연에 꽁꽁 둘러싸인 채 살아가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어쩌다 동백숲으로 가려던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어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 서둘러 내쫓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혹여 우리 삶에 간섭할까 봐 몸이 아프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마실도, 동네 모임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동네 분들 역시 우리를 그들의 구성원으로 여기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갈 뜨내기로 생각하셨을 겁니다. 동네 아짐들이 나눠주는 음식도 받아먹지 않으려 하고 행여나 누가 올까 봐 집에 아프신 할아버지가 계셔서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괘씸한 알리바이도 늘 만들어두었습니다. 숲 입구에는 대나무로 출입을 제한하는 대문도 만들어 달아놓았습니다.

그러고선 동네에서 뚝 떨어져 있는 산속 집에서 마음껏 께벗고(발가벗고) 냇가 샤워도 하고 허연 알몸을 드러낸 채 마당을 걸어 다녀도 누구 하나 눈치 볼 필요 없는 그 자유로움에 한껏 고무되기도 했습니다. 아무 연고 없이 시작된 장흥살이는 길에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도 신경 쓸 일 없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언젠가 사람이나 혹은 그 사람들이 속한 사회가 그리워질 때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도 우린 그저 가볍게 넘기곤 했습니다.

손바닥의 생채기를 걱정하는 그 마음 

그러던 중 이웃 마을에서 모내기를 돕게 되었습니다. 귀농한 가구들이 모여 품앗이로 모를 심고 점심을 나눠 먹었습니다. 아직 손 모내기가 이뤄지고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서툰 일솜씨지만 즐겁게 동참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갖는 짬에 듣게 된 대화에 순간 제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그 대화라는 건 사실 별거 없었는데, 손바닥에 상처가 났다고 보여주고 "아이고, 쯧쯧" 하며 내일 모내기 일정을 나누는 아주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대화였어요. 그러나 새삼 자신의 상처를 쓱 보여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부러워졌었지요.  

이렇게 이웃끼리 도란도란 앉아서 참도 나눠 먹고 모내기도 하니까 참 좋아 보인다는 말에 누군가가 저희에게 "페달네는 그게 싫어서 숲에서 사는 거 아니었어?" 하시며 웃으셨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을 나누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후로 우린 우리에게도 마음을 나눌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꽁꽁 닫아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살며시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을회관에 내려가 할매들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할매들이 주시는 과자를 받아먹어 보기도 하고 마을 아짐들이 건네주시는 무며 배추도 스스럼없이 받았습니다. 마을 남자 어르신들이 불쑥 집으로 찾아오셔도 이제는 웃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물론 여전히 한 끄트머리에는 경계 센서가 깜빡이고 있지만 말이죠.  

▲ 동백숲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페달


오하이오, 요코, 가야…"자급보다는 자족이 먼저예요" 

젊은 부부가 연고도 없는 작은 숲에서 전기도, 수도도, 가스 불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꼭 우리처럼은 아니어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많은 사람이 이 숲을 찾아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 인연은 일본 이토시마시(후쿠오카 현 서부에 위치)에 살고 있는 오하이오(김현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2013년 12월 완주에서 열린 '나는 난로다' 행사에 참여해서 '아궁이의 친구들'이라는 부스를 열고 당글게('고무래'의 방언. 곡식이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모으거나 펴서 너는 데 쓰는 'T' 자 모양의 농기구), 억새 빗자루, 비자나무 숟가락 등을 전시하고 있던 우리(하얼과 페달)와 처음 만난 오하이오는 '함께 살고 싶다'라며 대뜸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그 강렬하고도 선한 눈빛에 압도당한 우리는 그들 가족을 숲으로 초대했고, 그 이듬해 여름을 함께 숲에서 지냈습니다. 오하이오는 아내 요코와 18개월 된 아들 가야를 데리고 이 숲으로 들어왔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본 것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그 낯설고도 흥분된 나날에 매일 들떠 지냈습니다. 

그들을 만날 당시 우리는 사실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숲속살이는 새롭고 활기찼지만, 때때로 원인 모를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줄까?', '왜 세상은 이렇게 점점 어두워져 갈까?' 등의 물음이 우리를 떠나지 않았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오하이오 가족은 그런 우리에게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본은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로 귀농·귀촌이라는 카테고리 외에 '피난'이라는 개념이 더 추가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죽고 떠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현재'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하이오의 초청으로 방문하게 된 일본의 이토시마에서 우린 더욱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방사능', '원전 사고'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로 각인되었던 일본의 그들은 오히려 그 누구보다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이토시마 멤버들은 집에서 아이를 평화롭게 출산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 공동 육아를 꾸리며 자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누구보다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와 할머니가 함께 훌라 춤을 추며 낯선 이방인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구호나 외침이 아닌 삶으로 꽉 찬 그들의 태도에서 우린 자급보다 중요한 자족,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난 2015년 봄, 그들에게 배운 대로 우린 비파를 집에서 낳고 이웃과 함께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 비파 친구 율아 ⓒ페달


정기와 희숙…"저희 사표 냈어요" 

현재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정기와 희숙 부부는 2014년 여름, 곡성군과 변현단 님의 주최로 '청년 떼 토크'라는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는 이야기꾼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초기라 함께 갈 수 없어, 당시 잠시 같이 살던 오하이오 부부와 하얼만 참여하게 되었어요. 귀농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 모여서 사례 발표도 듣고 고민도 나누는 자리라며 우리가 이 숲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한다고 하시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곡성으로 향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저희 말고도 많은 분이 나와서 다양한 귀농 사례를 발표하셨고 저희는 동백숲에서 사는 이야기와 우리가 마시는 샘물이며 냇가, 나무들, 텃밭, 화장실 사진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나무 숟가락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넝쿨로 바구니를 짜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 젊은 부부가 눈빛을 반짝이며 저희에게 다가왔지요. 하얼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도시(?)스러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젊고 통통 튀는 도시내기 커플이 과연 귀농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살짝 들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나 귀농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누구보다 깊었습니다. 남편인 정기 님은 두산중공업에서 2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제3세계 금융권에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는 홍보를 하고 투자를 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자연에서 생태적으로 살고 싶고 원자력 발전도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런 일을 하는 것에 있어 늘 회의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자급, 자족, 나아가 자립을 꿈꾸는 그 커플은 그 이후 머릿속에 다른 아무 생각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그 다음 날 회사에 바로 사표를 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연은 그리 쉽게 맺어지지 않는 법, 한창 입덧에 시달리던 저는 당시 누구도 곁에 두고 싶지 않다는 강한 거부감으로 그 부부를 맞이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장흥이 아닌 구례 산속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가을 무렵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짓게 되었으니, 혹시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그 부부가 흔쾌히 도와주러 온 것입니다. 가을이 끝날 무렵 한차례 집짓기가 마무리되었고 일손을 도와주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삶 터로 돌아갔습니다. 정기, 희숙 부부도 구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죠. 그들의 구례 삶이 궁금했던 우리는 함께 그 집으로 놀러 갔는데, 그 충격이란!

전에 살던 집주인이 석면 슬레이트로 구들을 만들어 얼렁뚱땅 팔아넘긴 집에 불을 때고 잠을 자니 몸이 너무 아파서 마당 한구석에 인디언 티피(원뿔형 텐트)를 제작해 온수매트를 깔고 생활하고 있었던 거지요.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젊디젊은 부부를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버티게 해 주었던 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날 바로 우리는 우리가 살던 동백숲의 큰 방을 그 부부에게 내어주며 함께 겨울을 나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우리의 기묘한 동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밤마다 랜턴 불에 의지해 아궁이에 불을 지펴가며 요리를 만들어 먹고, 촛불 아래서 고스톱도 배우고, 때론 산에서 칡넝쿨을 채취해 바구니를 만들어 장흥의 '마실장'과 서울의 '마르쉐@'에 함께 팔기도 했습니다. 비파가 태어날 때 희숙 님은 사흘 내내 미역국을 끓여줬고, 정기 님은 방에 군불도 지피고 두 차례의 병원행에 운전사를 자처하며 비파를 함께 맞이했습니다. 때마침 마을에 빈집이 생겨 그 부부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1년 동안 빈집과 땅을 알아보던 차에 마을 할매가 내놓으신 땅을 구매해 이제 그들만의 새로운 가원(家園)을 짓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하룻밤의 만남으로 안방까지 내어주고 30여 년간 몰랐던 고스톱의 세계를 열어준, 앞으로 함께 더'붙어' 살아갈 우리의 이웃, 정기와 희숙 부부가 만들어갈 삶에 우리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풀잎이네와 합동공연 ⓒ페달


풀잎이네, 율아네…엄마도 동지가 필요해 

비파가 태어나고 육아라는 산을 만나 매일 울고 웃으며 지냅니다. 전엔 혼자서 양동이에 쉽게 떠오던 샘터의 물도 이젠 하얼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때맞춰 씨를 뿌리고 때맞춰 수확하는 일은 포기한 지 오래이지만 비파로 인해 웃을 일도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걱정도 생깁니다. 숲 속에서 혼자 커갈 비파가 혹시나 외롭진 않을까, 또래를 그리워하진 않을까. 이른 고민에 휩싸입니다. 또 육아라는 거대한 관문 앞에서 늘 엎어지고 넘어지는 초보 엄마, 아빠인 우리는 서로서로 처지를 이해하지 못해 많이 다투기도 합니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앞날을 고민하며 생계를 걱정하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양육에 더 많이 동참하지 않는다고 불만입니다. 지금 비파에게도, 엄마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친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던가요. 해남에서 사는 풀잎이네, 그리고 서울에서 사는 율아네는 모두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가족입니다. 이 가족의 아빠들은 밖에서 돈을 버는 대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자, 아내의 짐을 나눠서 지고자 동백숲 행을 택했습니다. 엄마들은 고단한 육아를 나누고 위안받을 생각에 벌써 들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 친구가 생기고 엄마들은 육아스트레스를 풀 동지가 생기고 아빠들은 그런 엄마들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느라 생긴 흰머리를 뽑아줄 친구가 될 테니 일석삼조(一石三鳥)일 것입니다. 

풀잎이네는 내년 봄부터 동백숲 언저리에 집을 짓게 될 것이고 율아네 역시 동백숲 근처에 정착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딱딱한 아스팔트보다 다정한 흙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부모들의 선택에 우린 두 손 들고 환영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지요. 아이들 성장에 맞춰 숲 속 놀이터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또 우리 모두를 위한 교육의 장도 만들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아직 꿈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 작은 꿈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 대신 꾸어줄 꿈은 없듯이 우리 역시 스스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성인이…싱글벙글 같이 살자  

가족 구성원들만 우글대는 동백숲 마을에 싱글(미혼)남이 등장했습니다. 작년 집짓기 때 거친 대패질이며 대못 박기, 그라인딩 등 못하는 작업 없이 척척 일을 해주던 성인은 완주로 떠났다가 올가을 다시 함께 살기 위해 장흥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랫집 정기, 희숙 부부네 집 한쪽에 깃들어 살며 근방의 살 터를 찾고 있습니다. 흔히 부부나 커플이 귀농을 결심하더라도 양쪽의 이견을 좁히기 어려워 터전을 옮기기 힘들어한다지만, 가끔 '짝이 없어 혼자 못 내려간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 싱글벙글 성인이 ⓒ페달

성인이는 바퀴벌레 커플들이 우글대는 동백숲에서 홀로 당당히 싱글로 벙글거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함께 앞날을 꾸려나갈 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요.)

아랫집(정기와 희숙네) 윗집(비파네)을 오가며 나무도 함께 도와주고 비가 며칠씩 내려 빨래가 힘들 때는 하얼과 목욕탕에 가서 비파 기저귀도 빨아옵니다. 저는 가끔 성인에게 아기를 맡기고 낮잠도 자고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비파는 성인이 삼촌 품에 안겨 있습니다. 둘이 살 땐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이렇듯 모든 구성원이 함께 어울려 사는 마을이 진짜 행복한 마을 아닐까요? 우린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요하던 동백숲에 가지각색 사람 냄새가 가득합니다. 다양한 삶이 펼쳐지고 있는 동백숲의 친구들을 사랑 가득 담아 지켜봐 주세요.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6년 3월 현재 76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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