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같은 인상의 용수 비구가 <용수 스님의 곰>이라는 책을 냈다. ‘나를 일깨우는 친절한 명상’이란 부제만 봐도 우리가 아는 그 ‘곰’은 아니다. ‘곰’은 티베트말로 ‘수행 또는 명상’이란 뜻이다. 원래 티베트어 ‘곰’은 '익숙해지고 지견을 터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선한 마음과 깨어있음을 기른다는 것이다. 티베트말로 '곰파'는 사찰을 뜻한다.
그런데 이 책 표지엔 곰 한마리가 두 발로 서 있다. 마치 사람처럼 서 있는 이 그림을 보노라면, 단군신화에 나온 곰 이야기도 동굴에서 이처럼 인간다움에 익숙해지고 지혜로워진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용수 비구가 매일 아침 SNS에 띄워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글귀들을 모든 것이다. 마치 새벽에 옹달샘에서 길어온, 전혀 오염되지 않는 약수 한사발 같은 글들이다.
스스로를 '스님되는 중'이라고 소개하는 용수 비구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익숙한 재미교포 출신의 티베트불교 비구다. 그는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주립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1년 우연히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강연을 들은 뒤 티베트불교에 귀의해 페마 왕겔 린포체를 만나 출가했다. 그후 남프랑스 티베트불교 선방에서 4년간 무문관 수행을 했고, 한국에 들어와 화계사, 무상사 등에서 수행하며 유나방송에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티베트 닝마파 한국지부인 세첸코리아를 설립해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행자인 미티유 리카르 스님, 샤카파 법왕 사캬 티진 스님을 초청해 법회를 열며 티베트불교를 한국에 전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용수 비구의 글은 우선 친절하다. 많은 이들이 불교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그의 글은 이런 생각을 단숨에 날린다.
<스스로에게 친절하세요>
다 포기하고 싶고
환멸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삶의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휴식하세요.
하루 정도는 무기력과
멍 때리기를 허용하세요.
스스로에게 친절하세요.
하루가 지나면 다시
열심히 해볼 용기와 힘이 생길 것입니다.
현대인은 많은 스트레스, 노이로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상처로 인한 혐오와 증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한 사회적 범죄도 문제지만 개인의 내면을 물들인 이런 미움으로 인해 우선 가장 고통 받는 이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자신이다. 따라서 용수 스님은 우선 자신을 구제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오래된 미움을 없애는 법>
미운 생각을 계속 굴리면 자신만 힘듭니다. 미움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미움에 힘만 부여합니다. 미움에 마음을 쉬듯이 저절로 일어나고 가라앉게 지켜봅니다. 험담을 하면 미움을 더 확고하게 만듭니다. 감정이 실린 말을 자제합니다. 미운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도 현재 상황이 너무 힘들면 지혜롭게 친절하게 피하는 것도 방편입니다.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미음은 조금씩 해체할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을 때나 할 수 있을 때 짧게 사무량심 자비수행을 합니다.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이 행복을 원하고 행복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 행복하기를….
티베트불교의 최고 장점은 생각을 바꾸어 불행감을 행복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불안한 심리를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용수 스님이 글 몇마디로 전해주는 마음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그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진언을 외우지 않더라도, 오직 ‘감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진언보다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진언>
돈이 없으면 몸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몸이 아프면 아직 큰 병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큰 병이 있으면 아직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곧 죽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서 감사합니다.
모욕을 당하면 인욕수행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상황이 좋든, 안 좋든>
일이 잘 풀릴 때는 수행자이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범부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명상가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범부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잘 알아차릴 때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안 좋은 상황이 오히려 혜택을 주는,
수행을 깊어지게 하는 좋은 상황입니다.
사실은 좋은 상황도 안 좋은 상황도 허상입니다.
지나가는 허깨비입니다.
상황이 좋든, 안 좋든 큰 일로 만드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상처로 고통 받거나 심리적인 불안이 있으면 어서 그로부터 벗어나기만을 갈구한다. 그런 갈망이 고통과 불안을 더 크게 하기도 한다. 용수 스님은 명상이 진통제와는 다른 것임을 말해준다.
<명상이란>
명상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고통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삶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픔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지만 참된 행복은 찾기 어렵습니다.
명상은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명상은 고통을 닦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삶이 썩 좋지 않습니다. 이 좋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입니다. 썩 좋지 않은 것에
불만을 내려놓고 괜찮아 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환영하고 직면하면 고통이 딱딱하지 않고
어디서 찾을 수도 없고 연기처럼 흩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슬픔, 불안, 분노, 불행 자체가 나쁘지 않습니다.
수행을 돕는 벗입니다.
용수 스님은 미국에서 자라고 서양과 동양의 사상을 접맥하여 쉽게 풀어내는 신세대 수행자이지만, 성취를 쉽게 얻으려고 하는 것을 경계한다. 책 제목 ‘곰’처럼 익숙해지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려움, 괴로움, 실패, 고난, 실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라고 권한다.
<겨울 눈 속에 씨앗이 있다>
천 번의 어려움 뒤에 성취가 옵니다.
천 번의 실패 뒤에 성공이 옵니다.
천 번의 실수 뒤에 잘 하게 됩니다.
밤이 다하면 새벽이 옵니다.
일어서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마음공부 줄을 놓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