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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오개’ 제거하는 일이 수행의 시작


'오개' 제거하는 일이 수행의 시작

선정을 이루기 위해 제거해야 할 오개(五蓋) 즉 다섯 가지 덮개는 

초기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제5권에서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가라바'라는 이름을 가진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여쭈었습니다.

"존자시여, 오랜 세월 우리는 경전을 암송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토록 오래 외워왔던 경전 구절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깜박깜박 건망증을 고백하면서 치료할 방법을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부처님의 대답이 바로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덮개입니다.


"탐욕에 묶이고 정복당한 채 지내면, 

마찬가지로 분노에, 

해태와 혼침(睡眠)에, 

흥분과 회한(掉悔)에, 

의심에 묶이고 정복당한 채 지내면, 

오랫동안 외워왔던 경전구절이 생각나지 않게 됩니다. 

그런 다섯 가지 원인이 있으면 아주 오래 동안 외웠던 경전구절도 생각나지 않는데 

하물며 외우지 못한 경전구절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곧 이어서 부처님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하시려는지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첫째, 탐욕에 묶이고 정복당한 것은 마치 새빨간 색이나 샛노란 색 혹은 새파란 색의 염료를 

잔뜩 풀어 넣은 물그릇에 얼굴을 비추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얼굴이 비친다 해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둘째, 분노에 묶이고 정복당한 것은 팔팔 끓고 있는 물그릇에 얼굴을 비추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얼굴은 보이지 않을뿐더러 혹시나 얼굴이 비친다 해도 거품 때문에 심하게 일그러져 있을 것입니다.

셋째, 해태와 혼침에 묶이고 정복당한 것은 이끼와 수초 가득 덮인 물그릇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흥분과 회한에 묶이고 정복당한 것은 바람에 심하게 일렁이고 있는 그릇안의 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째, 의심에 묶이고 정복당한 것은 혼탁하기 짝이 없는 흙탕물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과 같습니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건망증을 불러오는 다섯 가지 원인 즉, 탐욕, 분노,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의심을 각각 

온갖 색깔의 염료가 진하게 풀어진 물에, 팔팔 거품까지 내면서 끓고 있는 물에, 이끼와 수초가 덮인 물에, 

바람에 일렁이는 물에, 혼탁한 흙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방해하는 다섯 가지 번뇌, 오개를 제거하는 일이 수행의 시작이라는 것도 

니까야에서는 여러 차례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대지도론>제17권으로 돌아와 보면,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면 

"빚진 사람이 빚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고, 중환자가 병을 털고 일어나는 것과 같고, 

기근이 심한 땅을 벗어나 풍요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옥에서 풀려나는 것과 같고, 

사납고 잔인한 흉악범들 틈에서 벗어나 근심 없고 편안해지는 것과 같다.”

빚과 병과 구속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지요. 

거기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자유를 맞이한다는 상상만 해도 개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지도론>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수행자도 이와 같아서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면 그 마음이 편안하고 청정해지고 즐거워질 것이다. 

마치 햇무리, 연기, 구름, 티끌, 안개에 덮여 있던 해와 달이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으니, 

사람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가지 덮개에 덮이면 

자신도 이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지 못한다."


[불교신문2972호/2013년12월21일자]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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