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설악 오세암을 오르며

설악 오세암을 오르며 . . .

수려한 골짜기, 운무 자욱한 아침, 계곡의 상쾌한 기운을 받으며 원시림처럼 우거진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곳곳에 아름드리 전나무는 그 얼마만큼의 모진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수 백 년을 찰나처럼 까마득하게 높이도 잘 자랐다.

오세암에 당도하니 마침 점심공양 시간이다. 감사하게도 신자 여부를 불문하고 지나는 등산객들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고픈 자에게 무조건 무료 급식이다.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산사의 절밥이라 그 맛이 더욱 각별하다. 최근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산꼭대기에서 이렇게 쌀밥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한 끼의 무료급식 이면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보시와 노력이 덧붙여졌을 것이다. 돈을 가지고 산꼭대기에 올라가긴 쉬워도, 쌀을 짊어지고 산꼭대기에 올라가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한줌씩 한줌씩 시주한 쌀이 모이고 모여 다시 대중들에게 무료급식으로 보시되어진다는 사실에 모처럼 메마른 가슴속은 따뜻한 감사와 감동으로 벅차 오른다. 

된장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김치 한 조각 얹어 먹는 소박한 식사이건만, 앉을 만한 곳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차지하고 있어, 할 수 없이 염치불구하고 걍 동자전 오르는 돌계단 옆에 걸터앉았다. 절집 앞에 펼쳐진 장관인 만경대를 바라보며 모처럼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절밥이 원래 무쇠솥에 하는 밥이라 맛있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맛난 맛의 비결은 모름지기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숲 속 항아리에서 숙성된 된장의 장맛이 아닐까 싶으다.

설악 오세암은 오세동자와 관음보살의 전설로도 유명한 암자이고 만해 한용운 스님이 수행 정진 중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생육신 중 한 사람이자 삿갓 쓰고 팔도를 누볐던 방랑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등극한 세조에게 환멸을 느껴 머리깎고 출가하여 수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오세암 뒷편 관음봉과 앞 산 만경대는 언제 보아도 역시 장려한 내설악의 절경을 이룬다.

=============
저물무렵(晩意) / 매월당 김시습

만악천봉외 萬壑千峰外, 저물무렵 만 골짜기 천 봉우리 그 너머로
고운독조환 孤雲獨鳥還, 한 조각 구름 밑 홀로 새가 돌아오누나
차년거시사 此年居是寺,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내처향하처 來歲向何處,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 갈꺼나
풍식송창정 風息松窓靜, 바람 자니 솔 그림자 고요히 창에 어리고
향쇄선실한 香鎖禪室閑, 향 스러진 스님 방 하도 고요해
차생오기단 此生吾己斷, 진작에 이 세상 나 끊어버리니 
누적수운간 樓迹水雲間, 내 발자취 물과 구름사이 남아 있으리

- 글/사진 : 폐친 오사공님 포스팅 中에서

; 멋진 글과 사진을 올려주신 오사공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