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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사진 : 불일암에서 함석헌 선생(우)과 법정 스님(좌) (1975년)

 


(1)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식 내맡기고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2)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출가하고 수행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에 접하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의미있는 화두가 되었다.

수행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스승을 만나고 어떤 도반을 만나느냐가 수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수행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스승의 역할이고, 수행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도반의 도움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이 잘났고 자기가 잘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인연이 어떤 인연인지가 참 중요하다. 함석헌 선생의 위 시구는 그러한 가르침을 감성적으로 잘 느끼도록 해주는 탁월한 작품인 것 같다.

선생은 독자에게 ‘그 사람’을 가졌느냐고 계속해서 물어본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말이다. 내가 믿을 수 있고 이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그 사람'을 가져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진정한 도반과 스승이 있는가'를 묻는 메시지도 함축되어 있다.

위의 시를 (1)파트와 (2)파트로 구분하였는데, 첫 번째 파트에서는 감정적으로 가깝고 의지할 만한 벗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고,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인격과 깨달음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고 없어서는 안될 그러한 사람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 물음에는 간접적인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진정한 도반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고, 두 번째 파트는 진정한 스승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된다. 도반과 스승이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불교에서도 위의 내용과 유사한 가르침이 있다. 잡아함 27권 <선지식경>에 의하면,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수행자에게 좋은 도반이 있으면 그 사람은 수행의 반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렇지 않다. 좋은 도반이 있다는 것, 선지식(善知識;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를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출가하기 전에 나의 속 이야기를 털어 놓을 가까운 벗이 없었다. 그냥 이야기 하고 밥 먹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번민과 궁금증에 대한 공유하며 도담(법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과 가르침을 줄 멘토나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좋은 강연과 책으로 감동 받은 적은 많았지만, 훌륭한 강연가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의 스승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출가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도반을 만났고, 삶의 지침과 이정표를 세울 수 있도록 지도해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났던 것이다.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재능과 복은 다양하고 각자 다르다. 내가 가진 재능은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약간의 감각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받은 복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인연, 인복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만나게 되는 좋은 인연이 나를 깨우쳐주고 도움을 주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그 사람'을 가졌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고...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외친다.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도반과 스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간도 필요하며 가치 있는 일이다. 좋은 도반과 스승을 만나 수 있는 장으로 뛰어 들어라. 구하면 얻으리라!”

 

- 도연(道然) 스님의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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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은 역사가, 언론인, 민주화운동가, 시인, 교육자, 저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각 분야에서 대표적 위치에 오를 만큼 사유와 활동의 폭이 넓고 깊고 다양했다. 많은 업적도 남겼다. 철학과 사상면에서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세기난우(世紀難遇)’의 인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법정 스님과의 교유도 깊었는데,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함께 일했으며 홀연히 남도의 산 속으로 은거한 법정 스님을 못 잊은 함석헌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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