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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용수스님_티벳불교이야기

용수 스님이 운 뜻은


서울 종로구 경운동 종로경찰서 옆 영어불교도서관에서 

티베트불교 명상을 가르치는 용수스님



용수스님이 세살 때 헤어진 어머니 만나, 낳아준 은혜에 감사한 뜻은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 따라 아홉살 때 미국 건너가 독실한 모르몬교도로 성장. 유타대에서 달라이라마 강연 듣고 티베트불교에 관심. 달라이라마에 출가하려다 네팔에서 만난 다른 스승에게 출가해 남프랑스에서 수행하고 귀국. 매년 티베트불교 영적 스승들 초청하며, 삶에서 불만족 이기고 평화 얻는 명상법 전해.

  


티베트불교는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탁월한 영적 스승들, 관념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가르침, 권위를 내려놓은 친절함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서양에 널리 알려진 이런 티베트불교의 영적 스승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와이스먼 뇌신경연구소의 뇌 영상 촬영 결과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별명을 얻은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프랑스 과학자 출신으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아버지와 대담한 <승려와 철학자>의 저자인 마티외 리카르 스님, 미국 의사 출신으로 달라이라마의 주치의인 배리 커즌 스님 등 10여명의 영적 스승이 최근 5년 동안 한국을 찾았다.


 이들을 초청한 이가 세첸코리아 대표 용수(46) 스님이다. 티베트불교 승려인 그는 2007년 한국에 들어와 티베트불교 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이번엔 달라이라마 못지않은 큰 스승의 초청을 앞두고 상기돼 있다. 사캬파의 법왕인 사캬 티진(70) 존자다. 티베트불교엔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황모)파, 카규파, 용수 스님이 속한 닝마파, 사캬파 등 4대 종파가 있다. 사캬 티진 존자는 사캬파의 수장으로, 달라이라마가 ‘밀교 수행자의 왕’으로 일컬을 만큼 티베트불교에서는 달라이라마에 이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사캬 티진의 방한엔 용수 스님의 은사인 페마 왕겔(70) 린포체도 동행한다. 페마 왕겔 린포체는 닝마파의 5대 법맥 중 하나인 세첸의 지도자로 유럽과 미국, 인도, 네팔 등에서 티베트불교를 전하고 있다. 


 사캬 티진 존자의 방한을 앞둔 용수 스님을 만났다. 그는 모르몬교(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의 본고장인 미국 유타주에서 자란 독실한 모르몬교인 출신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티베트불교를 만나 출가까지 하게 됐을까.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약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홉살 때 미국에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세살 때 헤어졌다. 그는 그때부터 친모의 손을 떠나 아버지를 따라 살았다. 미네소타주에서 2년간 살다가 유타주 주도 솔트레이크시티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따라 모르몬교도가 됐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2년 동안 모르몬교 선교사로 활동할 만큼 독실한 모르몬교도였다. 이어 유타주립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고, 작은 방송국에서도 일했던 그는 어느 날 유타대에서 달라이라마의 강연을 듣게 된다. 


 “그때는 달라이라마가 누군지도 몰랐다. 다만 머리에 뭐 좀 든 지식인들이라면 거기에 다 간다고 하길래, 거기 가면 뭔가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간 것이었다.”

 당시엔 그것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강연에서 달라이라마는 두가지를 얘기했다. 먼저 ‘자비심이 자신한테 좋다’고 했다. ‘자비심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한테 이익’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려면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는 ‘우리 모두는 다 같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가 변했다. 자비심이 커졌고, 타인을 경계하는 대신 마음이 열려 친밀해졌다. 그는 그때부터 티베트불교에 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말라야에 있다는 티베트불교의 수행자들처럼 산에 홀로 머물고 싶고, 수행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북캘리포니아의 티베트명상센터에 들어가 요가도 하고 단식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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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용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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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5~11일 방한하는 티베트불교의 사캬파의 법왕 사캬 티진 존자에게 존경의 합장을 하는 용수스님

사캬 티진 존자의 `자비로운 여정'이란 이름의 대중법문은 8일(금) 오후 6시 서울 동국대 대강강에서 있고,

사캬 티진 존자의 `관세음보살 밀교 수행 전수와 관정'이 9(토)~10일(일) 오전 9시~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자곡동 탄허기념박물관에서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승려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명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밤 한순간에 ‘승려가 되어야지’라며 온 존재에 가득 차는 확신이 밀려왔다. 그 뒤로 지금까지 그 마음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날 밤 밖에 나가 달을 보면서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달라이라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자신의 스승은 달라이라마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가 급했다.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그의 소재를 수소문하니, 인도 보드가야(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인도로 가는 비행기 표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하기로 했다. 카트만두공항에서 호객꾼이 소개한 호텔에 갔다가 너무도 더러워 기겁을 했다. 다음날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그 호객꾼을 따라 최대 불탑이 있는 보다나트에 갔다가 세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르게 됐다. 정원까지 갖춰진 그곳은 처음 간 호텔에 비하면 낙원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식사를 할 때도 그는 미국에서부터 가져와 한시도 떼놓지 않던 애독서 몇권을 상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한 외국인 스님과 함께 식사 중인데 한 티베트불교 스님이 들어왔다. 첫눈에 마음이 끌리는 분이었다. 그분을 만나고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그 저서들을 출간한 불교출판사 대표였다. 그가 읽었던 수많은 티베트불교 서적 가운데 바로 그분이 낸 저서만을 골라 그가 들고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이 바로 그의 은사가 된 페마 왕겔 린포체였다.


 그는 달라이라마가 있는 보드가야행을 포기하고, 페마 왕겔 린포체 곁에서 출가했다. 이어 스승이 남프랑스 도르도뉴에서 운영중인 무문관에서 2003년 5월부터 2007년 5월까지 꼬박 4년간 머물렀다. 첫 1년간 예비수행을 마치고 본수행에 들어가 족첸·마하무드라 등 티베트불교의 주요 수행을 거쳤다. 


 그가 처음 승려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잃는 것 같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용수 스님이 평화를 찾으면서 아버지도 변화됐다. 아들이 머문 한국을 찾은 아버지는 아들 스님과 함께 사찰들을 다니며 아들의 행복한 모습에 “좋은 스님이 되라”고 응원해주었다. 용수 스님은 비록 출가했지만 모르몬교도로서 살아온 젊은 날을 소중하게 여긴다.

 “술, 담배는 물론 커피와 콜라까지 금지시킨 모르몬교 덕분에 청결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티베트불교에 출가까지 한 것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상 사람 99%가 무상과 윤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믿는 확신 말이다.”


 그가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 친어머니를 찾아갔다. 세살 때 헤어진 뒤 한번도 보지 못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40여년 만의 해후였다. 그는 밤새 어머니와 울었고, 함께 간 세첸코리아 회원들도 눈물을 흘렸다.


 “불교 경전엔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의 고통을 상세히 알려준다. ‘아이가 배고파 할 때는 뜨거운 지옥에 들어간 것 같고, 아이를 낳을 때는 지옥에 반쯤 간 것 같은 고통을 받기에 낳아준 은혜만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양 어깨에 얹고 지구를 여섯바퀴나 돌아도 그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마 불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에 대한 상처 때문에 다시는 못 만났을지 모른다.”


 이제 그는 온유한 미소로 자신과 같은 화해와 평화를 나누어 준다. 그는 “우리는 처음엔 만족한 집도 조금 지나면 다른 집을 부러워하며 불만족스러워 할 만큼 ‘불만족’이라는 습관에 물들어 살아간다”며 “그것은 이사를 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깨어 살펴서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행복은 거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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