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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담마코리아_고엔카지

[스크랩] 고엔카 두 번째 법문 : 선과 악의 보편적인 정의-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 계(戒)와 선정(定)〕

위빠사나 수행 10일 법문 
두 번째 법문 : 선과 악의 보편적인 정의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 계(戒)와 선정(定)〕 

글· 윌리암 하트(William Hart) 요약· 일중(一中) 스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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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이 끝났습니다. 비록 첫째 날보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려움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마을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들소나 야생의 코끼리처럼, 마음은 너무나 산만하고 초조하고 거칩니다. 만약 현명한 사람이 야생 동물을 길들이고 훈련시킨다면, 파괴적인 목적으로 쓰였던 모든 힘들이 지금은 건설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봉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생 코끼리보다 훨씬 더 강하고 위험스런 마음은 길들여지고 수련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의 막대한 힘은 여러분을 돕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매우 참을성 있고 끈기 있게, 계속해서 정진해야만 합니다. 지속적인 수행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여러분이 그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큰 자비심으로 수행의 길(道)을 보여줄 것이나,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을 어깨에 올려놓고 최종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모든 걸음들을 걸어야만 하고, 여러분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하며, 여러분 자신의 구제를 위해서 여러분 스스로 힘써야만 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일단 수행하기 시작하면, 법의 모든 힘들을 지원 받을 수 있으나, 그래도 여전히 여러분 스스로가 노력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전체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걷기 시작했던 그 길(道)이 무엇인지 이해하십시오. 붓다는 아주 간단한 말로 그 길(道)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죄가 되며 선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삼가하고(諸惡莫作) 
오직 경건하고 선한 행위들을 실천하며(衆善奉行)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自淨其意), 
이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 


이것은 어떤 인종이나 문화배경을 가진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악과 선을 정의하는 데서 옵니다. 법의 핵심을 잃어버릴 때, 그것은 종파가 됩니다. 그 때 각 종파는 특정한 외양을 가지거나 특정한 의식들을 행함으로써, 혹은 특정한 신앙을 가짐으로써 선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부의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종파적인 정의들입니다. 


그러나 법(Dhamma)은 악과 선에 대해서 보편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고 그들의 평화와 화합을 방해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악이 되고 선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반면 다른 이들을 돕고 그들의 평화와 화합에 기여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순수하며 선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어떤 교리에 따른 정의가 아니고, 자연의 법칙에 따른 정의입니다. 자연의 법칙에 의하면, 먼저 마음 속에 성냄이나 두려움, 증오 등의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서, 우리는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번뇌를 일으킬 때마다, 우리는 괴롭게 되고 자기 안에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사랑과 자비, 선의를 일으키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순수한 정신적 성품을 계발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자기 안에서 천상의 평화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도울 때, 여러분은 동시에 여러분 자신도 돕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할 때, 여러분은 동시에 여러분 자신도 해롭게 합니다. 이것이 법이며 진리이며 법칙인,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법의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라도 고귀한 마음의 성스런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다는 의미에서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이라고 부릅니다. 이 길(道)은 크게 계(戒, sila), 정(定, samadhi), 혜(慧, panna) 세 부분(三學)으로 나뉘어집니다. 계는 몸과 말의 불건전한 행위를 절제하는 도덕입니다. 선정은 자기 마음의 통제력을 계발시키는 선한 행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수행하는 것은 도움이 되나, 마음 속에 축적시켜온 모든 번뇌들을 소멸시키는데 계와 선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완전히 청정하게 하는 지혜와 통찰력의 계발인 도(道)의 세 번째 부분, 즉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을 해야만 합니다. 


계(戒,sila) 

먼저, 계의 부분에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중에서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쌈마 봐짜(Samma-vaca)는 바른 말로 언어적 행위의 청정을 말합니다. 말의 청정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정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을 속이는 거짓말, 다른 이를 상처 입히는 난폭한 말, 이간질이나 중상모략, 수다, 쓸모 없는 잡담 등은 모두 청정하지 못한 언어입니다. 이러한 말들을 삼가할 때, 남는 것이 바로 바른 말입니다. 


2) 쌈마 깜만따(Samma-Kamm-anta)는 바른 행동으로 신체적 행위의 청정을 말합니다. 법의 길에서 행동이 신체적이건 언어적이건 정신적이건 간에 청정한 행동과 부정한 행동을 가름하기 위한 유일한 잣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행동이 다른 이를 돕는가, 혹은 해롭게 하는가입니다. 살생, 도둑질, 음행, 술 등에 취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이 모든 행동들은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고 또한 자기 자신도 해롭게 합니다. 청정하지 않은 신체적 행동을 삼가할 때, 남는 것이 바른 행동입니다. 3) 쌈마 아지와(Samma-ajiva)는 바른 생계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어떤 직업이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생업의 수단이 남들을 해롭게 한다면, 그것은 바른 생업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생업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그는 바른 생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술의 판매나 도박장의 운영, 무기 거래, 살아있는 동물의 매매 혹은 동물의 고기를 판매하는 것은 모두가 바른 생업이 아닙니다. 가장 고급스런 직업일지라도 자신의 동기가 오직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것이라면, 그는 바른 생업을 수행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자신의 동기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실행하고 대중의 복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기술과 노력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아서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간다면, 그때 그러한 사람은 바른 생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장이나 재가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에고를 팽창시키는 수단이 될 때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축적하려고 하고, 적게 버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고 또한 자신에게도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에고가 강화될수록 해탈로부터는 더욱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생업의 필수적인 한 측면은 보시를 하는 것이며, 자기가 번 수입의 일부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돈을 버는 것입니다. 


선정(定,Samadhi) 

만약 법이 단지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절제하기 위한 가르침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거기엔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성적으로 사람은 불건전한 행위의 위험과 건전한 행위의 이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은 계를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계의 중요성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잘못된 행위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두 번째 부분인 자기 마음의 통제력을 계발하는 선정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선정(Samadhi) 부분에도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중에서 세 가지가 있습니다. 
4) 쌈마 봐야마(samma-vaya-ma)는 바른 노력, 바른 실천을 말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여러분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고 견고하지 못한가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그것을 강화시키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네 가지 노력이 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나쁜 자질들은 제거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나쁜 자질들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또한 마음 속에 현존하는 좋은 자질들은 보존하고 증가시켜야 하며, 현재 있지 않은 좋은 자질들은 계발시켜야 합니다. 호흡에 대해 마음 챙기는 수행을 통해서, 여러분은 간접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5) 쌈마 사띠(Samma-sati)는 바른 알아차림, 혹은 바른 마음챙김으로서 현재 순간의 실재에 대한 마음챙김을 말합니다. 과거의 실재는 단지 기억들이 될 수 있고, 미래의 실재는 오직 기대나 두려움, 상상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순간에 콧구멍 주변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실재에 대해 마음을 챙기는 훈련을 함으로써, ‘바른 마음챙김, 바른 알아차림’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가장 거친 차원에서 가장 미세한 차원까지, 모든 실재에 대해 알아차리는 능력을 계발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은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호흡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 다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호흡에, 그리고 호흡의 접촉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연적이며 신체적인 감각들인, 더욱 더 미세해진 관찰 대상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숨이 들어올 때 약간 차갑고, 숨이 몸에서 나갈 때 약간 따뜻한 호흡의 온도를 느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열, 차가움, 가려움, 맥박, 진동, 압박감, 긴장, 통증 등 호흡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감각들도 무수히 느낄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떤 감각을 느끼고 느끼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감각들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관찰하기만 하십시오. 단지 알아차림에 머무십시오. 감각의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각들에 반응하지 않고, 감각의 실재에 대해 마음을 챙기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여러분이 보았던 것처럼 마음의 습관적인 경향은, 욕망이나 혐오를 일으키면서 미래로, 혹은 과거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챙김으로써, 여러분은 이 습관을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코스가 끝난 후에 여러분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몽땅 잊어버릴 것이라든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그 동안 여러분은 과거나 미래로 불필요하게 전전함으로써 여러분의 에너지를 낭비해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하고 계획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조차도,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바른 마음챙김을 계발함으로써, 여러분은 현재 실재에 좀더 확고하게 여러분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필요할 때 쉽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되고, 미래를 적절히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6) 쌈마 사마디(Samma-Sama-dhi)는 바른 마음집중, 혹은 바른 선정을 말합니다. 단지 마음집중, 선정이 수행법의 목표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계발하는 마음집중은 청정함을 기반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욕망이나 혐오, 혹은 환상에 기반을 둔다면, 우리가 마음을 집중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것은 바른 마음집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이나 혐오감 없이, 자신 안의 현재 실재에 마음을 챙겨야만 합니다. 매 순간마다 계속적으로 마음챙김, 혹은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른 마음집중, 바른 선정입니다. 


양심적으로 5계를 따름으로써, 여러분은 계를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욕망이나 혐오감 없이 현재 순간의 실제적인 대상, 그 한 지점에 여러분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수련을 함으로써, 여러분은 선정을 계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마음을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계속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지혜(panna)를 닦는 위빠사나를 수행할 때, 여러분은 무의식의 심층을 통찰하고, 거기에 숨겨져 있는 모든 번뇌들을 제거하며 진정한 행복과 해탈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진정한 행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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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엔카(S. N. Goenka: 1924~): 고엔카는 인도인이지만 미얀마에서 태어났고 보수적인 힌두 가정에서 자라나 사업가로 활동했다. 심한 편두통을 고치지 못하던 중, 위빠사나 지도자 우바킨의 지도 아래 처음으로 위빠사나 10일 코스를 수행했다. 그 후부터 14년 간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했고, 10여 년 간 인도인 수행자들을 위해 스승의 미얀마 말을 힌디어로 통역했다. 수행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뒤, 어머니를 비롯한 13명에게 처음으로 위빠사나 코스를 지도, 그 때부터 인도 각처를 옮겨다니며 가르쳤다. 현재 고엔카 위빠사나 센터는 전 세계적으로 약 90여 개가 있고, 100여 개국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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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一中) 스님: ’88년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96년 스리랑카 켈라니아대학교 불교철학과 졸업했다. ’97년 미얀마 파옥센터와 마하시 센터에서 우안거를 지냈고, 인도 델리대학교 불교대학원 석사과정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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