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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부처님은 한 때 제자들과 보드가야(Bodh Gaya)에 있는 가야산에 오르신 적이 있다. 산마루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설법하셨다. “너의 눈이 불타고 있고, 너의 눈이 닿는 것마다 불타고 있다. 불타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도 불에 타고 만다. 그렇게 너와 세상이 불타고 있다.”

부처님은 묻는다. “너에게 언제 불길이 일어나는가? 너의 기대, 너의 잣대, 너의 바람, 너의 욕망이 네 삶에서 어긋나기 시작할 때 불길이 솟구치지 않나. 그러니 따져보라. 누가 그 불길에 장작을 공급하고 있는가. ‘내 몸과 마음이, 내 삶이 불탄다’며 괴로워하면서도, 끝없이 장작개비를 밀어넣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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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 자신과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셨다는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園(사슴동산)은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8㎞쯤 떨어진 곳이다.

바라나시는 고대 인도에서 굉장히 큰 도시였다. 무역으로 큰 돈을 번 상인들도 많았다. 한 부잣집 아들이 밤새 흥청망청 놀다가 새벽 무렵에 사슴동산에 이르렀다. 그는 온갖 물질적 풍요와 감각적 쾌락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 끝은 늘 허망함이었다. 쾌락은 영원하지 않았고,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는 사슴동산을 거닐며 “삶이 너무 괴롭다”고 탄식했다. 그건 덧없는 삶, 덧없는 욕망의 종착지에 대한 절규이기도 했다.

부처님이 새벽에 경행을 하시다가 그 탄식을 들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야사였다. 그를 불렀다. 부처님은 ‘쾌락이 왜 허망한가’를 차근차근 이치로 설명했다. 쾌락의 감각, 그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 그 감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생각. 그 모두의 정체가 ‘한 줄기 바람’임을 일깨웠다. 일어났다, 작용하고, 소멸하는 바람 말이다. 그래서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허망함만 더 커지는 이치를 설(설명)했다. 마치 무지개를 움켜쥐려고 할 때처럼 말이다.

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게만 엉켜 있던 고통의 덩어리, 그 실타래가 하나씩 풀렸다. 한 올씩 풀릴 때마다 그의 마음에 창窓이 생겼다. 그 창을 통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삶의 상쾌함이었다. 이치의 명쾌함이었다. 야사는 결국 출가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야사의 친구들이 찾아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50여 명이 출가했다. 또 배화교의 불의 신을 섬기던 가섭 삼형제도 자신들을 따르던 천 여 명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제자는 처음 5명에서 이제 천 명 이상으로 늘었다.

나는 바라나시의 시장통을 찾았다. 거기서 낡은 냄비에 끓여 파는 짜이(인도식 홍차)와 사탕수수 주스를 마셨다. ‘부처님 당시 이런 시장통에도 소문이 돌았겠지. 짜이를 마시고 채소를 팔고사며 사람들은 부처님에 대해 말했겠지. 그렇게 바라나시 전역에 소문이 퍼졌겠지. 한 스승이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고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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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한 때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였던 가섭 삼형제를 포함한 천 여 명의 제자와 보드가야 인근에 있는 가야산에 오르신 적이 있다. 산마루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설법하셨다. “눈이 불타고 있고, 눈으로 느끼는 것이 불타고 있다. 눈에 닿는 것이 불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불타고 있다. 불타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도 불에 타고 만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욕망(탐욕)으로 불타고 있고, 분노(증오)로 불타고 있고, 탐욕과 증오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있다." 훗날 500년쯤 뒤에 이스라엘 갈릴리의 산마루에서 설한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연상지어서 부처님의 이 불의 설법을 '산상설법’이라고도 부른다.

부처님이 활동하셨던 2500년 전에도 그랬고,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2000년 전에도 그랬고, 1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상은 불타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타고 있고 나의 삶이 불타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불타는 조선’을 말한 바 있다. 자식의 성공, 가문의 성공을 위해 당시 양반들은 과거시험에 목을 맸다. 자식이 여서일곱 살만 돼도 과거공부를 시켰다. 교육은 욕망으로 변질되었다. ‘이치와 도를 터득해 세상을 지혜롭게 경작한다’는 성리학의 본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갈수록 과거제도는 본래 취지를 잃었고 그 와중에 백성의 고통만 가중되었다. 요즘도 그렇다. 굳이 ‘헬조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불타는 세상에서 불타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버스를 타고 쉬라바스티로 향했다. 쉬라바스티는 신라 때 ‘서라벌徐羅伐’로 음역됐고, 다시 지금의 ‘서울’이 되었다. 그 도시에 기원정사가 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2500년 전의 사원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처님이 거처하셨던 방 ‘여래향실’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당시 이곳에 1250명 가량의 비구가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아셨을까. 두 번의 천년, 거기에 또 오백년이 흐른 뒤에 세계 각국의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오리란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의 불’을 끄고자 저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리란 사실을 알았을까. 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꽃잎이 가득 뿌려진 자리.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설법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불타는 마음, 불타는 삶, 그리고 불타는 세상... 어떻게 하면 그 불을 끌 수 있을까? 어디서, 어떤 물을, 얼마나 길어와서 부으면 그 불이 꺼질까?

부처님은 묻는다. “네 마음의 불길이 언제 일어나는가? 너의 기대, 너의 잣대(기준), 너의 바람, 너의 욕망에서 네 삶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불길이 솟구치지 않나. 그러니 따져보라. 누가 그 불길에 장작을 공급하고 있는가?. ‘내 마음이 불탄다, 내 삶이 불탄다’며 괴로워하면서도, 끝없이 장작개비를 밀어넣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결국 나의 아집과 어리석음이 내 삶을 불태우고, 우리의 탐욕과 분노가 세상을 불태운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 6년간 고행과 수행을 하시고서 35세에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후 45년간 인도 북부의 각지를 돌아다니시며 진리(진실한 이치, 法)를 설하셨다. 그 와중에 숱한 일들이 있었다. 부처님이 출생한 카필라 왕국이 이웃나라에게 멸망했다. 양어머니인 이모를 비롯해 부인과 아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을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부처님의 설법은 더 많은 인도인의 가슴을 뚫어주었다. 부처님은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라고 설하셨다. 부처님의 육신도 그랬다. 80세가 됐을 때 부처님은 '여래如來(자연의 이치/법칙에 따라 그렇게如 온來 자; 부처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의 몸도 마치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하셨다.

당시 대장장이집 아들 춘다가 부처님과 비구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내놓은 버섯(혹은 돼지고기) 요리가 상한 것을 알았지만 부처님은 다른 사람들은 먹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그 음식을 그대로 드셨다. 식중독에 걸린 80세 노구의 부처님은 피와 함께 설사를 쏟고 위독한 상태에 빠지셨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부처님은 오히려 춘다를 걱정하셨다. 이대로 숨을 거두면 사람들이 “춘다 때문에 부처님이 돌아가셨다”며 그를 원망할 터였다. 춘다는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받을 게 뻔했다. 부처님은 제자 아난을 불러 춘다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다. “춘다여, 여래가 그대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들고서 무여의열반에 든 것은 그대의 공덕이며 행운이다.”

부처님에게는 아무런 원망이 없었다. 육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춘다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자 하셨다. 나는 거기서 부처님의 자비(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를 읽는다. 그 사랑에는 잣대(분별)가 없다. 음식을 먹고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에게나 ‘불타는 삶’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춘다에 대한 원망의 장작을 계속 집어넣으며 불길을 더 키우지 않았을까. 불길이 커질수록 우리의 고통도 덩달아 커질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부처님은 달랐다. 부처님의 마음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왜 그럴까. 탐(갈망, 욕망, 탐욕), 진(혐오, 미움, 분노), 치(갈망과 혐오..탐과 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의 장작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부처님이 숨을 거두신 곳이다. 쿠시나가르에는 열반당이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가운데 부처님의 열반상이 누워 있었다. 순례객들은 열반상의 두 발에 손을 대며 기도를 했다.

무여의열반(빠리닙바나) 직전에 부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

“너희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니, 부지런히 정진하거라.”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부처님은 진리(法)를 설하셨다. ‘지금 나의 육신이 무너지듯이, 머지않아 너희의 육신도 무너진다. 형성된 것은 모두 무너지는 법이다.’ 육신의 무너짐, 그게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붙든다. 집착한다.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나는 열반당 한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무슨 뜻일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원망의 장작, 미움의 장작, 탐욕의 장작, 어리석음의 장작, 아집의 장작을 없애서 불이 붙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불타는 삶, 불타는 세상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부처님은 말하신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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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백성호기자의 연재 기사, 붓다를 만나다(마지막회, 붓다의 마지막 유언; http://news.joins.com/article/22257341)
(일부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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