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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아비담마 길라잡이

아비담마 길라잡이 - 서문 1. 들어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방과 북방으로 전승되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온다. 그것을 우리는 남방불교(Southern Buddhism)와 북방불교(Northern Buddhism)라 부른다. 남방불교는 현존하는 불교문헌 가운데서 부처님 원음과 가장 가깝다고 인정되는 빠알리(Paali) 삼장(三藏, 띠삐따까, Tipit*aka)을 근본 성전으로 하여 이를 주석하고 이 주석을 다시 주석하면서 어떤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그 일관된 체계는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그 이전에 전승되어오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싱할리 주석서(Mahaat*t*hakathaa)들을 토대로 빠알리어 주석서(앗타까타, At*t*hakathaa)들을 완성함으로써 A.D. 4/5세기쯤에는 거의 완전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붓다고사 스님이 정착시킨 많은 주석서들 가운데서도 『청정도론(淸淨道論, 위숫디막가 Visuddhimagga)』이 남방불교 부동의 준거가 되는 책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떤 학자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청정도론』은 그 성격상 경장의 4부 니까야(Nikaaya)에 대한 주석서이기는 하지만<주해1> 삼장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불법의 핵심을 계/정/혜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빠알리 삼장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다.

  그러면 『청정도론』을 위시한 주석서들이나 후대의 복주서(띠까, t*iikaa)들을 떠받치고 있는 일관된 체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아비담마(abhidhamma)<주해2>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를 이해하지 못하면 『청정도론』을 이해할 수 없고<주해3> 『청정도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남방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남방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빠알리 삼장도 결코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한다.<주해4>

  그러나 『청정도론』은 원문만으로도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고 그 내용 또한 빠알리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영어실력이 뛰어나다해도 영역본을 읽고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청정도론』이 비록 아비담마의 방법론을 통해 계/정/혜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 쓰여진 책이 아니기 때문에 설혹 그 내용을 파악한다해도 이를 통해서 남방 아비담마의 밑그림을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남방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 아주 절실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방 아비담마를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서술해놓은 책이 없을까 하고 남방불교를 공부한 분들, 특히 남방의 스님들에게 문의하면 반드시 듣게 되는 대답이 바로 『아비담맛타 상가하(Abhidhammattha San#gaha)』이다. 원문만으로는 겨우 50쪽 남짓한 분량의 책 안에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가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아비담마의 주제(attha)만을 골라서 극히 간결한 문체로 쓰여졌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상세한 주석서들과 함께 전승되어 왔다. 

  ‘아비담마(abhidhamma) 주제(attha)의 길잡이(san#gaha)’로 직역할 수 있는 이 『아비담맛타 상가하』는 대략 10/11세기쯤에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이 쓴 것으로 추정될 뿐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그가 인도 출신인지 스리랑카 출신인지조차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워낙 체계적으로 잘 편집되었기 때문에 일단 이 책이 나타나자 남방의 모든 아비담마 체계는 이 책의 주제(attha)를 쫓아서 다시 편성되어 가르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모든 남방 불교국가에서 이 책은 아바담마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본 텍스트로 자리잡아 왔으며 일찍부터 영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빠알리 성전협회(PTS, Paali Text Society)에서는 이미 1910년에 미얀마 학자 쉐 잔 아웅(Shwe Zan Aung)이 자세한 주를 달아서 번역한 것을 리즈 데이빗 여사(C.A.F. Rhys Davids)가 서문을 달고 교정을 하여 출판하였다. 이 책의 편집자 서에서 당시 남편 리즈 데이빗 교수의 뒤를 이어 PTS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리즈 데이빗(Rhys Davids) 여사는 몇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1882년 PTS가 설립되었을 때 스리링카에서 가장 존경받는 네 분 큰스님 가운데 한 분이셨던 삿다난다 스님(Saddhananda Mahaathera)이 아비담마를 배우는 최상의 길은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배우는 것이라고 빠알리로 된 축시를 직접 써서 보내주셨다고 한다.(Swe Zan Aung, xi.) 그래서 설립자인 리즈데이빗 교수도 이를 항상 유념하고 있었으며 설립한 후 삼 년이 채 안되어서 발간한 PTS 저널(Journal)에 이미 『아비담맛타 상가하』 교정본을 실었다.      (J.PTS., 1884.)

   리즈데이빗 교수는 “Buddhism in Translation”의 저자인 헨리 와런(Henry Warren)에게 『아비담맛타 상가하』의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와런이 요절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 번역본을 내어놓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Swe Zan Aung, xi-xii.)

한편 스리랑카의 불자출판회(BPS, Buddhist Publication Society)에서도 협회가 설립되자마자 1956년에 당시 유명한 학승이었던 나라다 스님(Narada Mahaathera)의 『아비담맛타 상가하』 영문 번역인 ‘A Manual of Abhidhamma’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그 후 몇 십 년을 아비담마의 입문서로 자리잡았다. 1993년에는 다시 BPS에서 현재 아비담마 학계 최고의 달인으로 알려진 미얀마의 실라난다 스님(U Siilananda Sayadaw)과 레와따 담마 스님(U Revatadhamma)의 도움을 받아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새롭게 번역 출판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를 내놓았고 이는 현재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초기불교와 남방불교에 관심이 증대하면서 위빳사나 수행은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으나 정작 위빳사나 수행의 완벽한 이론서인 아비담마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최초기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을 한글로 옮겨야 한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막상 빠알리 삼장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체계이며 역사적으로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아비담마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역자들이 역량은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번역과 해설을 시도하였다.

 


주해1)  majjhe visuddhimaggo, esa catunnam pi aagamaanan$ hi,
        t*hatvaa pakaasayissati, tattha yathaa bhaasitam* attham*.(DA.i.3)

주해2) 본서에서는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용어와 아비다르마(abhidharma)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아비담마는 남방에서 전승되어온 교학체계를 뜻하고 아비다르마는 유부나 경량부 등 북방에서 심화된 교학을 말한다. 남방은 빠알리어로 전승되어 왔으므로 아비담마라 옮기고 북방은 산스끄리뜨로 정착이 되었으므로 아비다르마라 옮긴다.

주해3) 예를 들면 『청정도론』의 1장 계품(실라칸다, Siilakkhandha)에서조차 붓다고사 스님은 아비담마의 인식과정(viithicitta, 본서 4장 참조)을 빌어서 감각기능의 단속에 관한 계(indriyasam*vaara-siila)를 설명하고 있다.(Vis.I. 57) 아비담마를 모르면 문자만 따라갈 뿐이지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주해4) 예를 들면 초기에 서양 학자들은 애써 주석서를 무시하고 언어학적인 관점에 치중하여 삼장을 이해하고 옮기려 했다. 그러나 학문적인 성과가 많이 온축된 요즈음은 언어학적인 관점보다는 주석서의 설명을 더 존중하는 편이다. 노만(K.R. Norman)의 『숫따니빠따(Suttanipaata, 經集)』 『테라가타(Theragaathaa, 長老偈)』 『테리가타(Theriigaathaa, 長老尼偈)』의 영역이 좋은 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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