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아비담마 길라잡이

아비담마 길라잡이 서문 4.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4.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그러면 아비담마는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를 간략히 살펴보자.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기 시작하시면서부터 후반 20여 년간은 법의 체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근본 가르침은 문답식으로 이미 정착화 되었다. 이런 노력의 흔적은 특히 『상응부(상유따 니까야, Sam*yutta Nikaaya)』에서 볼 수 있다. 『상응부』나 『중부(맛지마 니까야, Majjhima Nikaaya)』 경들의 절반 정도가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는 것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율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하나하나 제정하여 점점 체계화되어왔으며 부처님 재세시부터 이미 「빠띠목카 숫따(Paatimokkha Sutta)」로 정착이 되어서 학습계(sekhiya)를 제외한 150여 조목은 비구들이 우뽀사타(포살)일에 함께 합송하여왔음이 분명하다. 한편 『숫따니빠따』의 4장과 5장에 해당하는 앗타까왁가와 빠라야나왁가 특히 앗타까왁가는 부처님 재세시에도 아주 일찍부터 비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암송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일차 결집에서 법(Dhamma)과 율(Vinaya)이란 타이틀로 합송되어서 전승된 것이다. 

  특히 부처님께서 강조해서 사용하신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aayatana], 요소[界, dhaatu], 진리[諦, sacca] 등의 술어는 이미 『중부』의 여러 경들에서 체계화되어서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부처님 후반부와 불멸 직후에는 이런 중요한 용어와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특히 중요시되었으며 『장부(디가 니까야, Diigha Nikaaya)』의 33번 경과 34번 경인 「상기띠 숫따(San#giiti Sutta)」와 「다숫따라 숫따(Dasuttara Sutta)」에서는 많은 법수(法數)들이 체계화되어서 나타난다. 이런 전통은 자연스럽게 남방 칠론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형태를 간직한다고 여겨지는 『위방가(Vibhan#ga, 分別論)』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경장과 율장에서는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abhivinaya)로 부르고 있다. 먼저 『중부』에는 “두 비구가 법에 대하여(abhidhamme) 다른 교설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주해1>로 나타나며 이럴 경우에 뜻(attha)과 문장(byan$jana)으로 두 사람의 견해를 화합시켜야 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굴릿사니 경(Gulissaani Sutta, M6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숲 속 거주를 하는 비구는 abhidhamma와 abhivinaya에 몰입해야 한다고 대중들을 경책하고 있다. 그 외 율장과 『증지부(앙굿따라 니까야, An#guttara Nikaaya)』에서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단어는 등장하고 있다.<주해2> 이렇게 법과 율을 배우고 공부하고 지니는 것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불멸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라는 문헌군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비위나야 문헌은 발전이 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율장 자체에서 이미 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K.R. Norman, 97.) 

  특히 이런 경향은 論母로 옮기고 있는 마띠까(Maatikaa)로 자연스럽게 발전되었다고 본다. 마띠까는 문자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matrix(자궁, 모체)란 말과 같은 어원인데 어머니를 뜻하는 ‘maataa(Sk. maat/)’에서 파생된 말로 문자적인 뜻 그대로 ‘어머니에 속하는’의 의미이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계율의 조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마띠까는 사실 율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Hinuver, 65.) 

  초기에 율장에서는 빠띠목카(戒目)를 마띠까로 불렀다. 뒤에는 부처님 말씀도 법수(法數)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마띠까로 전승되어 오다가 여기에 설명을 붙이면서 아비담마 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3차 결집 때부터 이런 마띠까에 대한 정의와 상세한 주석과 분석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장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남방칠론이 정착된 것이다. 지금의 남방 아비담마 七論이 최초로 완성된 형태로 언급되는 곳은 남방 소전의 『밀린다빤하(밀린다왕문경)』의 서문 부분이다.(Ibid. 64.) 

  논장에 포함되어야 할 『빠띠삼비다막가(無碍解道)』가 경장의 『소부(小部, Khuddaka Nikaaya)』에 포함된 것은 『빠띠삼비다막가』가 결집되었을 때에는 이미 논장이 닫혀 칠론으로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열려 있는 『소부』의 바구니(pit*aka)에 넣은 것이다.(Ibid. 60.) 그리고 경장에 포함되어야 적당할 『뿍갈라빤냣띠(Puggalapan$n$atti, 人施設論)』가 결집되었을 때에는 경장에서는 4부 니까야가 완성되어 있었고 『소부(Khuddaka Nikaaya)』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장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대로 『빠띠삼비다막가』가 늦어도 2세기 경에는 결집된 것이라면(Ibid.) 지금 형태의 논장은 늦게 잡아도 2세기 전에는 완전히 고착이 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주해1> siyam*su dve bhikkhuu abhidhamme naanaavaadaa.(M103/ii.239)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