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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정견(正見), Rightly View(바르게 봄)

정견(正見), Rightly View(바르게 봄)

정견(正見)은 붓다가 사용한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딧띠(diṭṭhi)'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정(正)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삼마(sammā)는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바르게, 여실히(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我, ego)가 개입된 주관적인 판단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 에고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완전히 바르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rightly(바르게), thoroughly(철저하게, 완벽하게), properly; in the right way, as it ought to be, best, perfectly(완전하게)' 등으로 번역한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견(見)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딧티(diṭṭhi)는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봄, 관찰, 통찰(깊은 관찰), 조사, 앎, 이해, 견해 또는 믿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view(보다, 봄), observe, insight, investigate, speculative opinion, speculation(추론, 견해), dogma, theory, belief' 등으로 번역한다.

요컨대,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삼마(sammā; 正) 딧티(diṭṭhi; 見), 정견(正見)'은 '바르게, 여실히(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我, ego)가 개입된 주관적인 판단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상(에고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완전히 바르게' '봄, 관찰함, 통찰함, 조사함, 앎, 이해함, 견해를 가짐'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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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들이 우주(Universe)라 부르는 전체(Unity)의 일부분인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한 부분이다. 그는 일종의 '광학적(optical)*인 인식의 착각(delusion of consciousness)'에 의해서, 그 자신과 그의 생각과 느낌을 전체의 다른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독립적인) 어떤 것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광학적인 인식의) 착각은 우리들에게는 일종의 감옥이다. 그 착각은 우리들을 개인적 욕망에 구속시키고 우리들을 가장 친한 극소수의 사람에 대한 애착(집착)에 구속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임무는 우리들의 연민(compassion; 자비, '나我, ego'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바른 사랑)의 범위를 모든 살아있는 생명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자연 전체로 확장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기만적 감각(일상적인 오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착각을 매우 잘 이해한 물리학자 중 한명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오감각 중에서 광학적(optical) 감각기관인 눈을 가장 신뢰한다. 그러나 (정신세계는 차치하고 물질세계만이라도)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의 감각(광학적 감각 optical sense)은 실상(실제 상태/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지(正見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이 인식의 착각(delusion of consciousness) 앞에 광학적(optic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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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자신과 세상'(달리 표현하면 자신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에 대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고 나서, 

자신의 수행경험을 '경험적+합리적'( = 과학적)으로 정리하여 자신과 같은 '정각에 도달하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 줄임말로 '팔정도'라고 이름 붙이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수행, 줄임말로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붓다가 사용한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로는 'meditation(명상 수행), mental development(정신 계발), developing by means of meditation, cultivation by mind, culture(경작하다, 배양하다), increase(향상하다, 상승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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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방식의 수행이기 때문에 여덟 부분 각각의 순서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어쨌든,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처음 시작은 지식차원의 '정견(正見)을 계발하는 수행'(정견 바와나; 삼마 딧티 바와나)이다.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인 '지식차원의 정견 바와나'는,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 그리고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서(해탈해서)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설(설명)한 붓다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정견(바르게 보고 읽음 또는 들음)하여 생기는 지혜,

즉 붓다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바르게 보고 읽고 들어서 생기는 지식차원의 지혜(문혜聞慧, 들은 지혜; 수타 빤냐)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단계다.

달리 표현하면, 아상(에고심)과 아집, 아만심, 탐(갈망, 욕심, 탐욕), 진(혐오, 성냄, 증오), 치(탐·진, 갈망과 혐오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 같은 해로운 마음들이 자신의 무명(실상과 진리를 철저히 통찰하여 알지 못함; 인식의 착각, 의식과 무의식의 착각, 그리고 그로 인한 전도된 생각)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점점 더 명확하고 철저하게 이해하는 단계이며,

또한 경험차원의 지혜(수혜修慧, 수행 지혜; 바와나 빤냐)를 계발하는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의 바르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점점 더 명확하고 바르게 이해하고 숙지하는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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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인 '지식차원의 정견 바와나'를 통해서 계발되는 문혜(聞慧)는 지식차원의 지혜다

경험차원의 지혜(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아닌 지식차원의 지혜라 해도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바르게 배워서(보고 읽고 들어서) 계발(열리고 발전 향상)되는 바른 지혜와 자비(바른 사랑)는 일상생활에서 개인적, 집단(사회)적인 진정한 이익(진정한 행복, 괴로움의 근원적 소멸, 탐진치의 소멸, 마음의 부정성의 소멸, 바른 사랑-자비의 계발 증대)에 큰 도움을 준다

바른 앎(이해, 견해)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앎(이해, 견해)이 서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른 앎(이해, 견해)은 붓다가 강조했듯이, 처음에는 머리로 공부하여 사성제를 피상적이나마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자들이여, 괴로움(고苦, 둑카; 생명의 근원적 괴로움)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생성(집集, 근원; 근본원인)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멸滅; 정각, 해탈, 열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정각,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도道; 팔정도)에 대하여 바르게 알면(이해하면),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라고 한다”

- <분별경, 잡아함; Vibhanga Sutta, 상윳따니까야, S4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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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정견(正見)'과 '깊은 정견(正見)'

습관에는 얕은 습관이 있고 깊은 습관이 있다
착각에는 얕은 착각이 있고 깊은 착각이 있다
세뇌에는 얕은 세뇌가 있고 깊은 세뇌가 있다
무지에는 얕은 무지가 있고 깊은 무지가 있다

지혜에는 얕은 지혜(지식차원의 지혜; 문혜聞慧-들은 지혜, 사혜思慧-사유 지혜)가 있고 깊은 지혜(경험차원의 지혜; 수혜修慧-수행 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있다

관찰에는 얕은(피상적인) 관찰이 있고 '깊은 관찰'(통찰)이 있다
앎(이해)에는 얕은 앎(지식차원의 이해)이 있고 깊은 앎(경험차원의 이해)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정도, 즉 '정견(正見; 바른 봄/관찰/통찰, 조사, 앎/이해/견해), 정사유 ·· 정념(바른 사띠), 정정(바른 삼매)'에는 얕은 '정견··정정'이 있고 깊은 '정견··정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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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팔정도(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중 하나인 '정견(正見; 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을 계발하는 수행'(정견 바와나)은 지식차원에서 이해한 피상적인 얕은 앎(이해, 견해), 피상적인 얕은 봄(관찰), 얕은 정견에서 시작하여

나머지 팔정도의 각 부분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한 수행, 즉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의 바른 실천을 통해서

궁극에는 무명(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완전히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바르게 보는 것(통찰, 꿰뚫어 봄; 깊은 정견)으로 발전 향상하는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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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TIME Magazine Cover, The Science of Meditation(명상 수행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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