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수행의 첫 단계; 지식차원의 지혜 학습 단계]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소수의 지배계층(브라만계급)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갠지스강(항하恒河) 유역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마가다(Māgadha)국의 대중들이 사용하던 고대인도 민중어인 마가다어를 사용해서 설법을 하셨다. 그러나 마가다어는 사장되었고 마다다어와 가장 (거의) 유사한 고대인도어가 빠알리(Pāli)어인데, 이 빠알리어가 후대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 모음인 니까야(Nikāya)를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다. 빠알리어는 부처님 말씀을 경전으로 기록하던 시대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던 고대인도 민중어였기도 하다.
(참고로 2001년 기준으로 인도에는 총 3,372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중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 중인 언어는 216개, 헌법이 인정한 지정 언어는 22개이다.)
부처님께서 입멸(빠리-닙바나, 무여열반)하신 직후 얼마 동안은 제자 아라한들이 부처님 말씀(가르침, 법法)을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했다. 합창을 하면 한 사람이 틀린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대한 변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아라한의 수가 줄어들고 전쟁 등의 장애요소가 생기고 부처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파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문자로 기록하여 전달할 필요가 생겼다.
니까야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언행록(言行錄;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적어 모은 기록)이다. 이 언행록에 실려있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부처님의 생활(行)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설법(법法을 설명)하시는 부처님의 언어(言) 또한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다.
니까야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인 초전법륜경에서부터 마지막 설법인 대반열반경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하여 모아 놓은 빠알리어 경장(經藏; 경전 모음)으로 5부로 분류되어 있다. 니까야는 '디가니까야(長部), 맛지마니까야(中部), 상윳따니까야(相應部), 앙굿따라니까야(增支部), 쿳다까니까야(小部)'로 구성되어 있다.
빠알리어로 기록된 니까야를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서 편찬한 경전 모음을, 이른바 대승경전(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정토경 등)이 중국어(한문)로 번역되던 AD 5세기 경 이후에, 중국에서 번역 편찬한 경전 모음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한역된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의 뜻은 전승(傳承), 즉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아함경(阿含經, 아가마 수트라)은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하는 경전 모음'이라는 뜻이다. 아함경은 장(長)아함, 중(中)아함, 잡(雜)아함, 증일(增一)아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니까야와 아함경은 생각보다 꽤 차이가 있다. 그 원인은 첫째, 옛날에는 요즘처럼 정보의 전달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고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보다 번역 시 오류가 상대적으로 많다. 둘째, 산스크리트어로 편찬된 불교 경전을 중국에서 번역하던 시대의 중국인들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과 같은 주요 대승경전에 비해서 아함경을 그리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함경의 번역에 상대적으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고 번역이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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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으로 가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을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바른 이해와 바른 실천을 위해, 빠알리어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와 한문 번역 경전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인 '머리로 하는 지식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단계'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분명하고 상세하게) 서술하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로 하는 지식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단계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는,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
그리고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서 완전한 행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가르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정견(正法을 바르게 읽음 또는 들음), 정사유(正法을 바르게 사유)하여 생기는 지혜,
즉 듣거나 읽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머리로 바르게 이해하는 '지식차원의 지혜(빤냐/반야; 반야는 빤냐의 한문 음사)인 문혜(聞慧, 들은 지혜; 수타빤냐)와 사혜(思慧, 사유지혜; 찐따빤냐)'를 스스로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지식차원의 수행 단계다
달리 표현하면 아상(에고심)과 아집, 아만심, 탐(갈망, 욕심, 탐욕), 진(혐오, 성냄, 증오), 치(탐·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 같은 해로운 마음들이 자신의 무명(실상과 진리를 철저히 통찰하여 알지 못함; 인식의 착각/識착각/識전도와 그로 인한 전도된 생각/思착각/思전도)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설법(법을 설명함)을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단계이며,
또한 경험차원의 수혜(修慧, 수행지혜; 바와나빤냐)를 계발하는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의 바르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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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인 머리로 하는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를 통해서 계발되는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는 지식차원의 지혜다
통찰경험의 지혜가 아닌 지식차원의 지혜라 해도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바른 설법)을
바르게 배우고(읽고, 듣고), 바르게 사유해서 계발(열리고 발전 향상)되는 바른 지혜와 자비(바른 사랑)는 일상생활에서 개인적, 집단(사회)적인 진정한 이익(진정한 행복, 괴로움의 근원적 소멸, 탐진치의 소멸, 마음의 부정성의 소멸, 바른 사랑의 계발 증대)에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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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에는 얕은 습관이 있고 깊은 습관이 있다
세뇌에는 얕은 세뇌가 있고 깊은 세뇌가 있다
착각에는 얕은(단순한) 착각이 있고 깊은 착각이 있다
무지에는 얕은 무지가 있고 깊은 무지가 있다
지혜에는 얕은 지혜(문혜, 사혜; 지식차원의 지혜)가 있고 깊은 지혜(수혜, 수행지혜, 통찰경험의 지혜; 경험차원의 지혜)가 있다
관찰에는 얕은(피상적인) 관찰이 있고 '깊은 관찰'(통찰)이 있다
앎(이해)에는 얕은 앎(이해)이 있고 깊은 앎(이해)이 있다
팔정도의 '정견(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정정(바른 삼매)'에는 얕은 '정견··정정'이 있고 깊은 '정견··정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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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정견'과 '깊은 정견'
정견(正見; 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 바와나는 피상적인 봄(관찰), 지식차원에서 이해한 피상적인 앎(이해, 견해), 얕은 정견에서 시작하여
궁극에는 무명(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극복하고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바르게 보는 것(통찰, 꿰뚫어 봄; 깊은 정견)으로 발전 향상하는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바른 앎(이해, 견해)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앎(이해, 견해)이 서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른 앎(이해, 견해)은 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처음에는 머리로 공부하여 사성제를 피상적이나마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자들이여, 괴로움(고苦, 둑카; 생명의 근원적 괴로움)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생성(집集, 근원; 근본원인)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멸滅; 정각, 해탈, 열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정각,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도道; 팔정도)에 대하여 바르게 알면(이해하면),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라고 한다”
- <분별경, 잡아함; Vibhanga Sutta, 상윳따니까야, S4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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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는 얕은 생각이 있고 깊은 생각이 있다. 생각에는 쓸데없는 생각(망상;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해로운 생각)이 있고 바른 생각이 있다
정사유 바와나는 피상적인 얕은 이해(얕은 정견)에서 생기는 피상적인 얕은 생각(얕은 정사유)에서 시작하여 궁극에는 무명(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극복하고 망상을 모두 버리고 아상(에고심) 없이 완전히 바르게 생각하는 것으로 발전 향상하는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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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不立文字)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을 문자도 필요 없고, 부처님 설법도 법문도 필요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큰일이다. 약이 필요 없다는 것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병자에게는 약이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약을 곁에 두고 먹어야 한다. - 성철스님
학문은 정보(지식, 앎)를 날로 더해야 발전이 있고, 수행은 날마다 정보(지식, 앎)를 덜어내야 발전이 있다지만 그것은 어느 단계 이상으로 수행이 깊어진 후에 이야기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은 바른 정보(正法;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를 스스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해야 한다. 알 만큼 알고 익숙해져야 앎(지식)을 버릴 수 있다.
처음 팔정도 바와나를 접하는 사람은 팔정도 바와나에 대한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잘 가려서 자꾸 읽고 듣고 사유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여 숙지하고(문혜와 사혜를 스스로 점점 더 계발하고), 전문 수행처에 가서 수행을 체험하고 질문을 하며 일단은 친숙해져야 한다
"알고..버리고..깨달으리. 팔정도 바와나를 바르게 닦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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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의 첫 단계인 '머리로 하는 지식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 단계'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분명하고 자세하게) 서술하여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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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는 단계; 몸으로 하는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계발 수행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