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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본격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두 번째 단계]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본격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두 번째 단계]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으로 가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을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바른 이해와 바른 실천을 위해, 빠알리어(갠지스 강 유역의 고대인도의 민중어 중 하나로 부처님 말씀을 경전으로 기록하던 당 시대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고대인도 민중어)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와 한문 번역 경전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사마타(삼매 계발 수행)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 위빠사나' 단계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 서술하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

[4] '사마타 후에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경험차원의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 위빠사나' 단계

팔정도 바와나의 네 번째 단계 또는 좌선자세로 하는 본격적인 팔정도 계발 수행의 두 번째 단계는 '사마타 후에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경험차원의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 위빠사나'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단계다

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사마타의 삼매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 삼매 체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삼매 상태에서 나온 '직후'에 사마타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와 우빽카(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서 자신과 세상(달리 표현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바른 지혜(빤냐/반야;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위빠사나)을 해야만 한다.

자신과 세상(달리 표현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실상과 진리를 여러 가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는 위빠사나를 하다가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약해지거나 더 강력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필요해지면 수행자는 하시라도 사마타(삼매 계발 수행)를 하고 더 깊은 삼매를 계발한다

사마타는 위빠사나를 계발(열고 발전향상) 시키고 위빠사나는 사마타를 발전향상 시킨다.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 바와나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의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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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처경, Sati Patthana Sutta(사띠 확립 경), M10>과 <대념처경, Maha Sati Patthana Sutta(사띠 확립 큰 경), D22>에서 부처님께서는 감성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몸(身)과 몸에 나타나는 현상(몸의 감각)부터 사띠하여 관찰하는 것이 근기(소질, 적성, 성향, 성격, 능력..)에 맞고, 이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마음(心)과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정신감각)부터 사띠하여 관찰하는 것이 근기에 맞는다고 설(설명)하신다.

감각으로부터 발생하는 느낌(feelings)은 최초에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좋거나 싫은 느낌을 스스로 점점 더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것들이 의식(표면의식) 층에 도달하게 될 때는 대부분 너무 강하게 증폭되어서 마음을 쉽게 압도해버린다. 그러면 감각과 느낌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감각 자체는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감각과 느낌을 알아차리면 감각과 느낌으로부터 일어나는 번뇌라는 괴로움의 오염원을 물리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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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전들을 읽다보면 '바른 삼매(정정正定)'의 계발을 누누이 강조하시는 부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칸다(무더기) 쌍윳따(상응)의 <삼매경(사마디 숫따), S.III.I.i.5; 쌍윳따니까야 제3권 칸다 쌍윳따, 제1편, 제1품, 제5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수행자)들이여, '바른 삼매(정정正定)'를 계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으면, 현상(Dhamma, 法; 연기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볼 수 있다.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면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색色)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 감각(느낌; 수受)·지각(상想)·상카라(행行)·식(識;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요히 잘 집중된 비구는 오온(색·수·상·행·식 무더기)과 그 원인(연기; '인因-직접원인'과 '연緣-간접원인'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것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잘 안다. 그 원인이 일어날 때 오온이 일어나고, 그 원인이 완전히 소멸될 때 오온도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비구(수행자)는 분명히 보고 안다“

삿짜(진리 또는 사상제) 쌍윳따(상응)의 <삼매경, S.V.XII.i.1>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수행자)들이여,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하라. 바른 삼매를 얻으면 비구는 담마(法)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비구가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가?

그는 ‘이것이 괴로움(고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도道)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칸다 쌍윳따(무더기 상응)의 <삼매경, S.III.I.i.5>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상은 오온과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인(연기)을 말한다. 오온(다섯 무더기)은 색(色; 물질작용)·수(受; 감각/느낌 받음 작용)·상(想; image 작용, 지각)·행(行; 상카라, 마음의 습관적 reaction 작용, 조건지어진 심리현상)·식(識; 앎 작용, 알음알이, 의식+무의식) 무더기를 말한다

수·상·행·식 무더기를 통칭하여 정신(Nama)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오온을 다른 말로 하면 정신(Nama; 名)-물질(Rupa; 色)이라고 한다. 즉,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상(Dhamma; 法)은 오온(정신-물질)과 오온(정신-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인('인因연緣-직간접원인'의 상호작용, 즉 연기)을 말한다. 따라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정신-물질과 정신-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인(연기)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사마타로 깊은 삼매를 계발하면 정신-물질 그리고 그 원인(연기)의 무상·고·무아의 성질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명확성이 사마타로부터 오는 가장 큰 이익이다. 

또한 사마타는 휴식을 제공한다.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에서는 관찰하고 식별(분석 사유)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피곤함이 일어난다. 위빠사나를 하다가 피곤해지거나 고요집중의 사띠능력이 약해지면 수행자는 하시라도 사마타를 하여 삼매에 머물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음을 쉬게 하고 다시 생기가 넘치게 하고 고요집중의 사띠능력을 다시 강하게 한다. 그러면 다시 위빠사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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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사선정을 성취한 사람은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소위 지혜의 빛 또는 삼매의 빛)로 깊은 통찰이 이루어진다. 그 고요집중의 사띠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 더는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깔라빠(요즘시대의 표현으로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식별하고, 그 깔라파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물질요소(또는 물질작용)인 지(地; 무거움 작용), 수(水; 수축인력 작용), 화(火; 변화 작용), 풍(風; 팽창척력 작용)을 볼 수 있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용어로 깔라빠)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地 작용, 무거움 작용, 중력(重力), 질량‘이 있다. 그 ’질량(무거움), 地‘ 작용은 다른 작용, ’水 작용, 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 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風 작용, 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물체의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火 작용, 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다

궁극적 물질작용인 지·수·화·풍 작용을 통칭하여 물질의 사대(四大; 네四 가지 근본大 작용, 사대작용 또는 사대요소)라고 부른다. 이 궁극적 물질요소(사대요소)는 찰라 간에 생멸(생기 소멸; 일어남과 사라짐)을 거듭한다. 물질(깔라빠, 원자)의 찰라 생멸을 봐야 내 몸과 외부 세계 간의 경계(boundary)가 허물어지고 이 몸이 무상·고·무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진정으로 해탈(모든 苦,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원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정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정신작용은 물질작용보다 훨씬 더 생멸이 빠르다(물질이 한 번 생멸할 때 심찰라의 정신은 십 여 번 생멸한다고 한다). 깊은 삼매를 계발하지 않은 사람은 빠르게 생멸하는 심찰라의 정신을 볼 수 없다. 이 하나하나의 심찰라에 여러 가지 마음부수(心所, Cetasikā; 생각, 기억, 감정 등의 마음의 내용요소)가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이것을 식별하려면 깊고 강한 사띠 능력이 필요하다.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으로 이것을 관찰하여 식별해야만 정신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연기)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삼매의 빛(삼매 상태에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으로 바왕가(존재 지속심; 마음의 기저에 흐르는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정신작용)를 추적해 올라가면 -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퇴행기법과 유사함, 그러나 퇴행기법처럼 타인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발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바왕가를 추적해 올라가면 -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사몰심, 업의 표상)을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인가 식별하고, 그 원인으로 금생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사몰심(업의 표상, 재생의 표상 또는 재생연결식이라 부르기도함)과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다음 생 - 태어나는 곳(장소 또는 세상)과 물질토대(몸) 등의 결과 - 인 금생이 계속된다

이런 식으로 물질과 정신 그리고 물질-정신이 일어난 원인(연기)과 인과 연기적인 순환(삼사라; 윤회)을 관찰한다. 이렇게 깊은 통찰이 이루어질 때 존재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되고 고(苦)를 일으키는 오염원인 탐(갈망, 탐욕, 욕심)·진(혐오, 성냄, 두려움)·치(탐, 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 또는 무명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정한 지혜(빤냐/반야; 존재의 실상과 진리, 즉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통찰지혜)와 진정한 자비심 - 나(我) 또는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에서 벗어나 모든 중생(衆生; 생명의 무리)을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 이 자라기 시작한다

관찰할 때마다 인과 연기적으로 찰나 생멸하는 궁극적 물질(찰라 생멸하는 깔라빠의 사대작용; 찰나의 물질현상)과 궁극적 정신(심찰라의 정신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유신견,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사물이 실체(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견해'가 완전히 사라진 '예류(수다원)의 경지, 도(道; 정각)의 흐름에 든 경지'에 도달하게 되고 더 이상 수행의 퇴보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유신견이 완전히 사라지는 예류의 경지(상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방일하면 수행의 퇴보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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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의 '바른 삼매'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안으로', 즉 자신의 내면(몸과 마음)을 '거친 수준'에서부터 점점 더 '미세한(또는 깊은) 수준'(몸은 물질의 최소단위인 깔라빠와 깔라빠의 사대작용 수준, 오늘날 용어로는 원자와 아원자/쿼크 상호작용 수준; 마음은 기저에 흐르는 정신작용인 바왕가 수준, 오늘날 용어로는 심층의식/잠재의식/무의식 수준)까지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는 것이 위빠사나(통찰지혜 계발 수행)의 첫 단계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를 위한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4념처[네 가지 사띠 확립]의) 단계별 길들임 경, Dantabhūmi Sutta, 맛지마니까야 M12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수행자는 사마타로 계발된 고요집중의 사띠를 사용해서,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성주괴공)적으로 매 순간 생멸 순환(삼사라)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 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를

'안으로 밖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 '현재에서부터 과거(12연기 역관)', '현재에서부터 미래(12연기 순관)',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여실히)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함으로써 바른 수행지혜(바와나빤냐,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하여 '삼명(三明, 세 가지 밝은 지혜); 숙명명, 천안명, 누진(멸진)명'을 성취해야 한다"

여기서 '념처(念處)'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사띠(Sati; 마음챙겨서 알아차림) 빳타나(Paṭṭhāna; 확립)'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념처(念處; Sati-Paṭṭhāna)는 '사띠[Sati; 마음챙겨서 알아차림]의 확립[Paṭṭhāna]'이라는 뜻이다. 

4념처(四念處)는 '네 가지에 대한 사띠의 확립'이라는 뜻인데,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신념처(身念處) : 몸[Kāya, 身; 신체, 물질작용('지수화풍' 작용)]에 대한 사띠의 확립
- 수념처(受念處) : 감각[Vedanā, 受 : 몸과 마음의 감각 또는 느낌]에 대한 사띠의 확립
- 심념처(心念處) : 마음[Citta, 心]에 대한 사띠의 확립
- 법념처(法念處) : 법[Dhamma, 法]에 대한 사띠의 확립; '다섯 덮개[오개五蓋], 다섯 무더기[오온五蘊],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육내외처六內外處], 일곱 가지 삼보장가[sambojjhanga; 覺支],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사띠의 확립

네 가지 사띠의 확립에 대한 부처님의 구체적인 설법의 내용은 <대념처경[大念處經; Mahā Satipaṭṭhāna Sutta], D22>을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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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삼매 수행(선禪 수행)만 하다 말거나, 사마타(지止 수행; 선정/삼매 계발 수행)를 제대로 했더라도 위빠사나(관觀 수행; 통찰지혜 계발 수행;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즉 사마타-위빠사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바른 지혜(빤냐/반야;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 수행지혜;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통찰지혜)는 물론이고 자비('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도 제대로 생기지 않는다(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수행(수련, 훈련)을 그만두면 결국 실패하게 된 행동에 다시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익숙해 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경고하셨듯이 예류(정각으로 가는 흐름에 든 상태; 관찰할 때마다 물질과 정신의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를 볼 수 있는 단계, 그렇기 때문에 '유신견,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 그리고 사물이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라는 견해'가 완전히 사라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방일하면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퇴보가 발생한다는 점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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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반야/지혜/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 위빠사나'와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하여 옮긴 것입니다.

- 다음 글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팔정도 바와나의 완성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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