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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대승불교의 기원과 '만민 구제'와 '자기 구제'의 차이


"만민구제, 재가불교, 보살신앙"

세 가지 특징 중에 대승불교에서 초기불교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들라하면 만민구제이다.


自他一時成佛道  모두가 함께 부처가 되자.
衆生無邊誓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대승불교는 '다 함께 부처가 되자',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라는 원대한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는 신 불교운동이다.

이걸 가지고 대승은 초기불교를 자신만 해탈을 추구하는 자들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워 소승이라고 비난하였다.

 

대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등장한다. 탑신앙, 재가불교, 힌두교의 유입, 조로아터교와의 만남, "붓다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신행생활을 재가자 단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출가자들이 자신들만이 무리를 이루고, 교리를 연구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새로운 불교운동을 일으켰다.


우리 재가자들이 비록 가정을 이루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우리도 교리를 공부하고 깨달음을 추구하고 살아간다.

너희 출가자들은 자신 구제 즉 아라한만을 목표로 살아가지만, 우리 재가자들은 만민 구제 즉 부처가 되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살아간다. "너희 출가자들은 금생에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 재가자들은 좀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계속 윤회하면서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부처가 되는 길을 가겠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경전을 만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경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화엄경의 선재 동자, 유마경의 유마 거사, 승만경의 승만 부인 등이 모두 재가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대승불교에 용수, 무착, 세친 등과 같이 출가자도 있었지 않느냐고, 그래서 재가자가 먼저 시작했지만, 출가자가 동참해서 출재가자가 모두 참여한 불교운동이 대승불교라고 주장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용수, 무착, 세친 등과 같은 출가자들은 대승의 경전을 조작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교리적 견해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들의 이론에는 만민 구제, 붓다 숭배, 보살 신앙 등과 같은 것이 없다. 그들은 존재론, 실체론, 현상론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을 뿐이다. 그래서 출가자들이 대승불교에 동참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초기불교에 없는 수많은 보살이 대승불교에서 창조되었다. "그 모티브는 물론 힌두교이다. "혹자는 힌두교의 신들과 불교의 보살은 개념이 다르다고 주장하겠지만,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고,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그 기능과 역할에서는 동일하다. "힌두교에서 인간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신들을 창조하였듯이, 대승불교에서도 신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수많은 불보살을 창조한 것이다. "대승불교의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개념이 힌두교의 브라흐마, 비쉬누, 시바를 배낀 것이고, 시바신은 관세음보살과 비슷하다. "수많은 팔을 지닌 시바와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이 다를 게 없다. "조로아스터교의 광명 신앙이 대승불교의 아미타불과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대승불교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정신적인 문제, 심리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상, 어떤 생각들이 대승불교를 일어나게 했는가를 다루고 싶은 것이다. "대승은 '만민구제'이고, 소승은 '개인구제'라는 것이 가장 큰 구별이라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렇다. "대승의 모토는 만민구제이며,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때문에 초기불교를 소승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승불교가 우월성을 주장하는 만민구제에 대한 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 여기를 살펴보는가? "여기가 대승불교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3세기 인도를 거의 통일한 아소카 왕은 불교에 귀의하고, 전법사를 파견하여 인도 전역에 불교를 퍼트렸다. 그로 인해 불교가 인도 전역에 교세를 확장하고, 반대급부로 브라만교는 급격히 교세가 위축되었다. "아소카 왕이 죽고, 기원전 2세기가 되자 인도에 새로운 사상이 등장해서 인도 전역에 유행하였다. "그것은 바로 힌두교의 시작을 알리는 '박티 사상'이었다.


박티란 무엇인가? "믿음으로 얻어지는 은총이다.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믿기만 하면 신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준다. "현세의 어려운 문제, 괴로움도 해결해주고, 사후에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까지 보장해준다. "그리고 깨달음, 해탈까지 책임져준다. "이 보다 좋은 종교가 어디 있는가? "힘들게 공덕을 쌓고, 힘들게 고행을 해서, 해탈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믿기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 "대부분의 신을 믿는 종교들은 이런 놀라운, 그렇지만 전혀 신빙성이 없는 교리를 가진 종교들이다. "그래서 인도 전역에서 다시 힌두교의 박티 신앙으로 급속한 개종이 이루어졌다. "다시 불교의 교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가자들이 박티 신앙을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불교를 들고 나왔다. "믿음을 강조한 새로운 불교운동이다.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로 가버린 붓다들은 다시 귀환하여 신적인 능력을 지닌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보살들이 창조되어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행복을 담당하는 아미타불이 창조되었다. "아미타불을 믿기만 하면, 죽음 이후 영원한 행복을 얻고, 또한 깨달음을 얻어 해탈까지 보장된다. "현세의 괴로움부터 죽음 이후의 영원한 행복, 나아가서 해탈의 성취까지 이 모든 것이 믿기만 하면 다 보장받는다. "이것이 믿음으로 얻어지는 은총이다. "힘들게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심히 명상하고 수행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두 다함께 믿고 기도하면 된다. "이것이 '만민 구제' 신앙의 본질이다.

 

'회삼귀일' 즉, 아라한, 벽지불, 보살의 3단계는 낮은 단계이고, 최종 목적지는 오직 붓다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법화경을 예로 들어보자.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읽어보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해탈을 얻고, 바다에서 난파를 당하더라도 죽지 아니하고, 화재를 당하더라도 몸이 타지 않고, 강도를 만나더라도 칼이 산산이 부서지고, 도적을 만나더라도 해를 당하지 않고, 지혜와 복덕을 지닌 아들을 낳을 것이고, 딸을 낳으면 단정하고 예쁜 딸을 낳을 것이다...

경전의 처음에는 모두 붓다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자는 취지로 시작을 하지만 결국에는 믿으면 다 해결된다는 박티 사상의 교묘한 위장일 뿐이다. "이것이 대승의 본질이다. "기복 신앙인 것이다.

 

이 행복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서 불교가 교세를 회복했느냐? "오히려 불교는 신들을 믿는 모든 종교들과 차이가 없어지면서 불교의 특징이 사라져 민중들의 외면을 받아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하였다. "그럼 대승에서 소승이라고 비난하는 자기 구제는 어떤 것인가? 법구경에 나오는 붓다의 말씀이다.

 

길 중에서 팔정도(八正道)가 으뜸이요,

진리 중에서 사성제(四聖諦)가 으뜸이다.

법 중에서 탐욕 없음(닙바나)이 으뜸이요,

두 발 가진 중생들 중에서는 법안(法眼)이 열린 자가 으뜸이다. (273)

 

길은 오직 하나뿐

견해의 청정(見淸淨)으로 가는 데에는 

다른 길은 없나니

그대여!

마땅히 이 길을 가라.

그러면 마라를 당황하게 하리라. (274)

 

이 길을 간다면

괴로움의 끝에 이르리라.

번뇌의 가시를 뽑는 이 길을 깨닫고

나는 그대들에게 보여주었다. (275)

 

그대들은 힘써 노력하라.

나 여래는 단지 길을 보여줄 뿐.

누구든지 이 길을 가면

마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리라. (276)

 

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에도 같은 말씀이 나온다.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내가 안내자로 서있는데, 나의 제자들이 나에게서 이와 같은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어떤 이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고 어떤 이들은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다만 길을 보여줄 뿐입니다."

 

 

나는 길을 보여줄 뿐이다.

가고 안 가고는 그대들에게 달려있다.

나는 그대들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없다.

강제로 해탈시켜 줄 수 없다.

그대가 스스로 만든 족쇄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왜냐 그것은 그대 내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의 내면에 찌들어있는 오염원을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

왜냐 그것은 그대의 정신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더러움은 남이 씻겨줄 수 있지만, 

내면의 정신적인 더러움을 남이 대신 제거해 줄 수 없다.

그대의 번뇌는 그대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

남이 대신 그대의 번뇌를 짊어지거나 제거해줄 수 없다.

그것은 순전히 그대 자신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그대의 탐진치는 그대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남이 대신 내려놓게 할 수 없다.

 

이것이 대승이 소승들은 자신만의 해탈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는 자기 구제의 의미이다.

대승은 ‘나를 믿으면 내가 다 해결해줄게.’라고 한다.

이것이 만민 구제이다.

이제 만민 구제와 자기 구제의 차이를 알겠는가?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이 되는가?

어느 것이 현실적이고 어느 것이 판타지인가?

어느 것이 실현 가능하고 어느 것이 불가능한가?

지혜로운 자들은 아무리 달콤한 이야기라도 유혹당하지 않고 쉽게 진실을 가려낸다.


- 석무념 스님


⫸ '경전을 따르는 자, 경전을 새로 쓰는 자' - 게시물 보기



우리나라의 불교전래 佛敎傳來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고구려(高句麗) 제17대왕인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년)에 중국의 5호16국(五胡十六國)시대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인 전연(前燕)을 멸망시키고 세력이 커진 나라인 전진(前秦; 351~394)의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라는 승려로 하여금 불경(佛經)과 불상(佛像)을 보내옴으로써 불교의 전래가 이루어졌다.



▲ 불교가 고구려에 전래되던 무렵은 중국은 5胡16國 時代로 북방은 前秦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아도(阿道)라는 승려가 왔으며, 그 이듬해에는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라는 최초의 사찰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간의 공식적인 전래로서 그 이전에 민간 차원에서 이미 불교가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동진(東晉)의 지도림(支道林)이라는 고승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당시의 고구려 스님에게 글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도림(支道林)이라는 스님은 소수림왕(小獸林王)이 즉위하기 이전에 돌아가신 분이므로 연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것이다. 사실 소수림왕(小獸林王)시절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지 400년 가까운 시기이기 때문에 시간의 격차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와서 고구려에 전래되었으며,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고구려(高句麗) 제17대왕인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년)에 중국의 5호16국(五胡十六國)시대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인 전연(前燕)을 멸망시키고 세력이 커진 나라인 전진(前秦; 351~394)의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라는 승려로 하여금 불경(佛經)과 불상(佛像)을 보내옴으로써 불교의 전래가 이루어졌다.


불교가 백제(百濟)에 들어온 것은 제15대 침류왕(枕流王) 원년(384년) 9월에 동진(東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온 것이 그 처음이다. 그 때 왕은 교외까지 나가서 스님을 맞이하고 이듬해 2월에는 한산(漢山)이라는 곳에 절을 짓고 열 사람의 스님을 출가(出家)시켰다고 한다.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가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들여온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법성포 포구에 1999년부터 마라난타사(摩羅難陀寺)를 건설하였다. 이곳의 지명은 아미타불을 함축한 곳이라는 뜻으로 아무포(阿無浦)라고 부르다가, 성인(聖人)이 불법(佛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인 법성포(法聖浦)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新羅)에서 불교가 처음 공인된 것은 이차돈(異次頓)의 순교가 있은 직후인 제23대 법흥왕(法興王) 14년(527년)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해서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오늘날에는 중앙아시아나 남방으로부터 직접 도래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 기원전 6~7 세기경의 북인도의 형성


-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 : 기원전 624?~544?)의 석가란 말은 종족의 이름으로 "능하고 어질다"는 뜻이고, 모니는 "성자" 라는 뜻이다.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世尊)、석존(釋尊)、불(佛)、여래(如來)등 10여 가지의 존칭과 아 명(兒名)인 싯다르타 고타마(Siddhārtha Gautama)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고타마 붓다라고 칭한다.



▲ 기원전 5세기경의 마가다(Magadha)국의 대략의 세력범위




▲ 간다라에서 1세기에 만들어진 불상


석가모니는 샤카족의 중심지인 현재의 네팔지역인 카필라 왕국에서 국왕인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탄생하였다. 16세 때에 비(妃)를 맞아들여 ‘라훌라’라는 아들을 얻었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의 윤회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이것을 벗어나는 길을 추구하여 왕위와 가족을 버리고 29세 때 출가하였다. 두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서 그들이 체득한 수행법을 따라 행하였으나 그 수행법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림으로 들어가 6년간 고행에 힘썼다. 그러나 고행이 무의미하며 중도가 긴요한 것임을 알고, 부다가야의 보리수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붓다 = 깨우친 존재)가 되었다. 그 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면서 교화에 힘썼으며,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입멸하였다.



▲ 불교의 4대성지 - 룸비니(탄신), 부다가야(득도), 사르나트(설법), 쿠시나가르(입멸)


● B.C.E. or BCE = Before (the) Common[Christian] Era(비.크리스트교도에 의한 BC 기원전에 대한 기호). “서력기원전”(Before Common Era)이라고 쓰며, BC(=Before Christ)라고 쓰지 않는다.  


● C.E. or CE = Cómmon Éra "기원후"도 Cómmon Éra 라고 쓰고, AD(Anno Domini)=in the year of our Lord <라틴어; 주님의 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A.D.= in the Christian Era <히브리어; 예수님의 탄생년>  


● B.C.E./ C.E. '공동연대'(Common Era) 이전과 이후란 용어에 대하여 미국, 캐나다 및 호주의 학교나 정부에서는 '예수 탄생 이전'(Before Christ) B.C. 와 '주님의 해'(라틴어 Anno Domini)를 뜻하는 A.D.사용을 중단하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기독교적 색채를 줄인 B.C.E.와 C.E.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종교도 동등하면서 기독교위주 내지 기독교 우대의식을 없애는 용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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