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한편으로는 욕망과 탐닉,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혐오라는 이중의 길을 따르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로지 감각의 쾌락을 좇는 마음을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신다. 화와 두려움, 불만족은 수행자의 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길이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집착이라는 한쪽과 두려움과 혐오라는 다른 한쪽을 떠나 올바른 실천의 길인 중도를 걷는다.
수행의 길에 나선 사람은 이 중도를 따라야 한다.
“나는 쾌락이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 그것들을 다 내려놓겠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다. 소방울이나 시계추처럼 앞뒤로 걷어차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첫 법문을 하면서 이 양 극단에 대해 가르치셨다. 왜냐하면 집착이 있는 곳은 바로 이 양 극단이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한쪽에서 걷어찬다. 고통과 불만족은 반대편에서 걷어찬다. 이 둘은 언제나 양쪽에서 우리를 공격한다. 하지만 중도를 걷는 사람은 이 둘을 모두 내려놓는다.
아직 모르겠는가? 만일 그대가 이 양 극단을 따른다면, 화가 날 때 조금도 참지 못하고 분노의 말을 쏟아낼 것이며,유혹하는 대상을 만날 때 붙잡으려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처럼 덫에 걸려 있을 텐가? 잘 생각해 보라. 그대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것을 뒤따른다. 그러나 실상 그 마음은 그대를 고통으로 이끌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 마음은 정말로 교묘하다. 다음에는 그대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극단들을 계속하여 내려놓으라고 가르치신다. 이것이 바른 수행의 길이며, 태어남과 됨을 벗어나는 길이다. 이 길에는 쾌락이나 고통, 선과 악이 없다. 오호라.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쾌락을 추구하며, 늘 중간을 지나치며, 구도자가 따라야 할 길, 세존께서 가르치신 참된 길을 놓친다. 이 중도를 걷지 않으면서 탄생과 됨, 행복과 고통, 선과 악에 집착하는 사람은 지혜로워질 수 없으며 참된 자유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길은 곧바른 길이며, 들뜸과 괴로움이 모두 가라앉은, 평온과 순수한 앎의 길이다. 만일 그대의 가슴이 이와 같다면, 다른 사람에게 인도를 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대는 집착을 여윈 마음이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갖가지 생각과 느낌들에 마음이 흔들려 자연스러운 상태를 벗어나면, 생각의 틀을 짓는 과정이 시작되고, 그 안에서 망상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꿰뚫어 보는 법을 배워라.
마음이 흔들려 자연스러운 상태를 벗어나면 올바른 수행의 길을 떠나 탐닉과 혐오라는 한쪽 극단으로 이끌리게 되며 더 많은 망상과 생각들을 짓게 된다. 좋고 나쁨은 그대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난다. 그대가 쉬지 않고 마음을 지켜본다면, 설령 평생 이 하나의 주제만을 놓고 공부한다 해도, 장담하건대, 결코 싫증나지 않을 것이다. --37쪽
의심을 끝내는 법
대학을 마치고 학위를 받고 세상에서 성공한 뒤에도 여전히 삶에 무언가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생각의 수준이 높고 지식이 풍부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협하고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독수리가 높이 날기는 하지만 무엇을 먹고 사는가?
조건 지어지고 합성되고 한정된 세속의 학문으로는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세속의 지혜가 좋은 목적으로 쓰일 수는 있지만 무분별하게 발달하면 오히려 종교와 도덕의 가치를 해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술들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혜, 세속을 초월한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다.
우선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도덕, 삶의 무상함을 아는 것, 늙음과 죽음이라는 현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차를 운전하거나 자전거를 타려면 먼저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그 후에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을 여행할 수도 있다.
경전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전달하고 있지만, 경전이 곧 진리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서 ‘미움’이라는 단어를 보는 것과 분노를 직접 느끼는 것은 다르며,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듣는 것과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은 다르다. 스스로 경험한 뒤라야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믿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처, 가르침, 스승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이며 이로 인해 수행을 시작하거나 출가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확고하며 흔들림 없는 참된 믿음인데, 이것은 내면을 알아 가면서 생긴다. 아직은 극복해야 할 번뇌들이 남아 있겠지만,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또렷이 본다면 의심을 끝내고 수행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