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진리의 두 얼굴
삶엔 두 가지 길이 있다. ‘속세의 쾌락에 빠지느냐, 그것을 초월하느냐’, 지식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속세의 지식과 진정한 지혜라고 할 수 있는 초월적 지식’
속세의 지식은 무지와 같다.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며 끝도 없다. 칭찬과 쾌락을 따르는 속세의 목표를 중심으로 맴돌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러나 복잡한 속세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붓다께선 감각의 대상을 마라(악의 신)의 덫이라고 하셨다. 감각의 덫이야말로 마라의 덫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고도 마찬가지다. 감각에 탐닉하는 사람은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 신세와 같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고 당신은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할 때도 길을 잃지 않고 불행할 때도 길을 잃지 않는다. 행복의 감정이 일어도 고통의 감정을 잊지 않는다. 두 가지 감정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이로움을 보았으면 그 해로움도 보아야 한다. 미움과 혐오감을 느낄 때는 사랑과 이해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균형을 이룰 수 있고 마음도 안정된다.
마음과 감각을 잘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감각이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가는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지 철저히 이해하자. 감각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고통이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어떤 것도 자아가 아님을 깨닫는다면 그 감각들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미친 짓임을 안다.
사실 감각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서 우리는 진리로 감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닭이 낟알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깨닫는 것처럼 우리도 감각을 어떻게 활용할지 깨닫는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관찰하고 잘못 이해하는 한, 모든 것이 우리의 적이다.
마음이 무상, 고통, 무아를 깨달으면 스스로 놓아 버리고 벗어난다. 이 세 가지야말로 진정으로 수행하고 계발하는 자의 마음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