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위빠사나 수행

고성제를 알아야 8. saṅkhāra dukkha ②

 saṅkhāra dukkha 


그러면

왜 무상이 고()이고, 무아가 고()이고, ()가 고()이냐?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는데 부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무상이 고()이다를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물건을 좋다고 말할 때 든든하지 않은 물건은 좋다로 말하지 않아요.

든든하다 든든하지 않음이 무상의 차이에요.

얼마나 무상한지 덜 무상한지로 우리가 가치를 평가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다이아, 루비를 왜 우리가 비싸게 사고 가치롭게 생각해요? 돌인데!

돌은 돌인데 다른 돌하고 다른 거예요.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때 미는 돌은 딱딱하지 않아요. 빛도 없고...

형성되고 있는 거 자체가 든든하지 않아. 쉽게 부숴질 수 있어.

그런데 다이아, 루비 같은 것은 쉽게 부서지거나 그러지 않아요. 딱딱해요. 힘이 있어요.

그래서 든든하고 오래 가고 변화 없는 것이 가치롭다고 세속적으로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옷 하나 살 때도 한 번 빨면 물이 다 빠지고 못쓰게 되는 옷은 되게 싸지.

뭐 하나에 천 원이나 이천 원이나 그리 사겠지. 그것을 100만원 이라고 말하면 누가 사겠나?

그래, 세상의 가치관 자체가 무슨 말 하고 있어요? 무상하면 안 좋다. 이런 말이에요.

쉽게 말 해서 든든하지 않으면 안 좋다. 든든해야 오래가야 변하지 않아야 좋다.

맞지요?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무상이고 부처님 말씀도 이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물건 같은 것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나를 그리 생각 못합니다. 나를 물건 하나라고 생각해봐.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단 1초도 든든하지 않은 거예요.

겉모습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단계 말고 깊이 들어가서 보면

진짜 일회용보다 못하는 거예요.

계속 무너지고 있고 계속 사라지고 있고...


무상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치관과 똑같아요.

자동차나 집이나 등 모든 것이 아주 든든하고 오래가야 좋다고 하지.

그래서 우리가 가치 있다로 보는 것이

든든하고, 변하지 않고, 오래가고 등 다 무상의 반대를 말하고 있어요.

무상할수록 가치 없고 영원 할수록 가치가 있다' 이런 의미에요.


그러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무상한가?

그것이 vipassanā 지혜로 봐야 하는 이유예요.

 vipassanā 지혜가 없으면 무상을 모르고,

무상을 모르면 이 몸과 마음이 가치 없다고 어떻게 알아요? 알 수가 없어요.


 vipassanā 지혜가 우리한테 왜 필요 하느냐?

우리는 고통 속에 빠져 있지만 고통을 모른다.

고통 속에 빠져있는 한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아주 딜레마에요.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고통 속에 빠져있다.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 것을 어디서 찾고 있어요?

이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거예요.

고통 속에 행복이 있을 수가 없단 말이지.

고통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이 행복을 주기 위해서 고통을 알게끔 하십니다.


 고통을 아는 방법이 바로 vipassanā.

통을 알려면 vipassanā를 해야 돼.

vipassanā 수행해서 무상무아를 알 때

 ‘pancupādānakkhandhā dukkha’를 이해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앞에 말씀하고 있는 ‘jātipi dukkhā’ 이런 것은 고고(苦苦).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 많지요?!

'jarāpi dukkhā' 늙음이 고통이다는 사람들이 알아요. 이것도 고고(苦苦)를 말해요.

쉽게 알 수 있는, 진짜 고통이 느껴지는 거...

‘byādhipi dukkho’ 아픔이 고통이다. 고고(苦苦).

‘maraṇaṁpi dukkhaṁ’ 고고(苦苦).

‘appiyehi sampayogo dukkho’ 고고(苦苦).

‘piyehi vippayogo dukkho’ 고고(苦苦).

'pancupādānakkhandhā dukkha' 행고(行苦)를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행고(行苦)를 알아야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알 수 있어.

그런데 부처님이 왜 앞에 그런 말씀을 하고 있느냐?

아까 말했듯이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행고(行苦) vipassanā 지혜가 있어야 알기 때문에.

부처님이 사실은 그 말을 하고 싶지만 일단 사람들이 아는 고통을 말하고

그 다음에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고통을 말하고 있어요.

이 말의 앞뒤 순서를 그리 이해해야 돼.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등 아무나 아는 고고(苦苦)를 말해주고

그래야 마음을 잘 기울이게 되고, 잘 듣게 되고...


그 다음에 끝으로 pancupādānakkhandhā dukkha 오온이 고통이란

dukkha sacca를 말씀하셨어요. 먼저 말했듯이 ariyasacca를 말해요.

고귀한 진리, 고귀한 사람들의 지혜. 고귀한 사람 깨달은 자를 말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 부처님 그런 분들의 진리.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부처님 말씀하고 있는 dukkha sacca를 제대로 아는 거 아니에요.

부처님 아는 것을 내가 들었다 이런 거예요. 들었고 이해했다.

진짜 내가 아는 거 아니에요.

진짜 내가 알려면 기본이 vipassanā 지혜고

제대로 아는 것은 깨달음이죠.

깨달음이 도지혜...

수다원의 도, 사다함의 도, 아나함의 도, 아라한의 도로 이 사성제를 알아야

진짜 내가 아는 겁니다.

사-두 사-두 사-두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