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법념처에서 질문 잠시 하겠습니다. 그 오온하고 사성제 등 다섯 개 정도를 지금.... 경전에 설명하고 계시는데 거기서 스님이 ‘안다’라고 하는 것이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지요... |
<답변> 오온을 말하는 거죠. 그 법념처에 보면 오온이 있잖아요. 그 오온이에요. 그 오온을 본다라고 하는 것이 법념처로 말할 때 수행자가 오온을 찾고 있는 거 아니에요. 사실은 그때 오온 밖에 모르는 거에요. 수행하다가 수행하다가 보면 깊어지면 그렇게 알아요. 수행자가 표현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 표현하지요. 지도자가 알아요. 수행자는 수행하고 있을 때 이 몸 형태를 못 느껴요. 그렇지만 대상을 말할 때 뭐가 있고, 또 그것을 알고 있는 거도 따로 있고, 노력하고 있는 거 따로 있고... 이런 거예요. 다 별개가 되고 있는데, 그 노력하고 있고, 깨어있고, 이런 거 한 사람인 것 같고, 거의 대부분 표현할 때 딴 사람 같이 표현하는 거. 사람이 네 다섯 명이 되고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수행자는 헤깔리면서 말해요. ‘아 조금 이상해졌어요. 처음에 아는 거 달라요.’ 이런 거에요. 예를 들면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 있는 거 같고, 또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놈이 한 놈이 하나 있는 거 같고. 또 예를 들면 따뜻함 차가움 뭐 이런 거. 물질적인 대상이 따로 있는 거 같고.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수행하고 있는 것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이런 거. 그런 말들을 하고 자기 마음 보는 것을 말할 때 행의 표현을 하고 있을 때 행을 알고 있는 거에요. 처음에는 내가 수행하고 있는 줄 알죠. 그 다음에 수행하고 있는 나는 모르고, 노력하고 있는 마음, 집중하고 있는 마음. 이런 거 여러 가지 알아요. 또 전체적으로 알고 있는 거는 식을 말하고... 식이 또 한 사람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은 ‘나’가 여러 사람이 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나’ 혼자 수행하고 있는데 지금은 ‘나’라고 해야하는 사람이 다섯 명 정도 되어 있는 거 같고. 아니면 ‘나’가 없어지는 같고. 이 사람이 ‘나’이고 저 사람은 ‘나’가 아닌 같고. 이런 거. 수행자가 헷갈리는 거 같은 느낌이 되는데 헷갈리는 거 아니고 그 확실해지는 거. 사실을 알게 되는 거. 처음에 하나로 묶어서 알고 있는 건 사견이고 해체가 되면서 여러 사람이 되면서... 무슨 말이예요? ‘나’가 없어지는 거에요. 그것이 무아를 아는 지혜. 그래서 수행자가 그렇게 말을 할 때 지도자가 아는 거에요. ‘아 이 수행자가 오온을 관할 수 있는 단계로 와 있구나’ 이런 겁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못해요. 미리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미리 말하면 조금 거짓말 할 줄 알지만 수행자들이 이런 공부 여기까지 안해봤던 사람들은 수행 지도자한테 와서 거짓말 할 수 없어요. 자기의 수행해 가는 경험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근데 지도자는 들어 보면 아는 거에요. ‘아 이제는 법념처로 와 있구나’. 이 1시간 안에도 법념처로 1시간 내내 있는 거 아니고, 어느 땐 법념처를 알고, 어느 때는 수념처만 알고, 어느 때는 심념처를 알고 이렇게 되요. 근데 심념처를 많이 보게 되면 법념처가 오게 되는 거에요. 관련 돼 있어요. 신념처 육체를 많이 보고 있으면 수념처를 보게 되고. 신과 수를 많이 보게 되면 심을 보게 되고. 이런 거. 심을 많이 보다가 skill이 되면 법을 알게 되고. 그래 이 신수심법이 skill에 level이 있어요. 조금 수행이 얼마정도 되면 되는대로 깊어가는 거지.그러면 내가 오온을 찾고 수행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색을 내가 관찰한다, 수를 관찰한다. 행을 관찰한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교과서 같이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제가 알고 있는 거. 그냥 수행하다보면 수행의 깊음과 수준에 따라서 계속 변하고 있어요. 조금 떨어지면 법념처를 몰라요. 심념처를 .... 쭉 떨어지면 신 같은 거 물질 같은 거 많이 알지 이 법념처를 잘 몰라요. 수행이 무척 깊어질수록 모든 것이 법념처가 돼 버려요. 그냥 부품 꺼짐이 법념처가 되고. 호흡도 법념처. 다 뭐든 봤든 수행자의 수준 따라 그때는 법념처로 느껴져요.
그래서 오온을 아는 것이 신수심법 사념처에서 오온이 법념처 안에 있어요. 그러면 수행자들은 그냥 모르면은 그냥 글만 보고 아는 사람은 앉아서 ‘아 이것이 색, 이것이 수..’ 이렇게 하고 있는 사람 많이 있어요. 사실 있는 거예요. 수행도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 많아요. 그거 진짜 잘 못된 거에요. 그것이 뭐하고 있는 거에요? suta-mayā하고 cintā-mayā예요. 책을 보고 듣는 거, 법문을 듣는 거, 내 머리로 그리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알 수가 없죠.계속 관찰하다가 그 관찰의 힘으로 지혜가 올라가서 지혜로 궤뚫어 볼 때 아는 거에요. 그때 아는 거 하고 아까처럼 색수상행식을 분석하고 생각 하는 거는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들이 경전반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수행 안하는 사람 많아요.공부 많이 하는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는데 실천 수행을 안하는 거 말이죠. 그거 틀렸단 말이지. 내가 경전반까지 공부하면 공부하는 거 아니고 실천이 있어야 공부가 된단 말이죠. 그래, 여러분들이 실천수행 많이 하세요. 공부는 왜 하냐? 실천을 위해서 한다. 실천수행하기 위해서 공부합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수행실천 쪽으로 많이 시간 가지기를 바랍니다. 수행할 때 그 분위기가 좋아야 되고 공기가 맑고 그렇게 돼야 되는데 그렇게 안돼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수행함으로써 그런 것이 변해가야지. 내가 항상 기다릴 수는 없어요.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거 있어요. 그래서 수행 많이 하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좋아지게 돼 있어. 어떻게든지 좋아질 거에요. 그래서 조금 극복해서 수행해 나가야 돼. 그러면은 어떻게 어떻게 됐든 좋아질 수 있는 이유들이 나타날 겁니다. 수행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은 좋아질 수 있는 조건들이 차차 생길 겁니다.
* 녹취: 김병수님 사~두 사~두 사~두 |
BUDDHISM/위빠사나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