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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수행을 돕는 바른 생각들

<< 마음에 지혜의 잠재력이 있습니다. 수행하면 이 잠재력이 더 커지기 때문에, 지혜가 좋아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낄레사(kilesa 번뇌 오염원)로써 즐겁게 사는 것만을 압니다. 지혜로써 즐겁게 사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
 
_수행을 돕는 바른 생각들_
* 수행하는 것을 다 요약하면 8정도입니다. 부처님께서 8만4천 법문을 하셨지만, 그걸 요약하면 37조도품(助道品)이 됩니다. 37조도품을 요약하면 8정도가 되고, 8정도를 요약하면 계, 정, 혜 3학이 됩니다. 계, 정, 혜 3학을 요약하면 사띠입니다. 사띠는 보통의 사띠가 아니라, Appamāda(불방일) sati(아빠마다 사띠)입니다. 잊지 않는 사띠, 항상하는 사띠, 지혜가 있는 사띠입니다.

 

 

* 【낄레사(Kilesa 번뇌 오염원)가 아주 강합니다. 낄레사를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자신을 보세요. 하루 중 담마를 이해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지혜는, 가끔 한 번씩만 나타납니다. 지혜가 나더라도 잠깐입니다. 지혜가 없는 순간에는, 모하(Moha 癡 어리석음)가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 낄레사의 마음으로 보면,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서 있는 그대로를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 보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낄레사의 마음으로 보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합니다.】

 

 

 
* 【지혜가 없는 마음이, 모하(Moha 癡 어리석음)입니다. 지혜와 모하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지혜가 나면, 그것이 확실하게 알아집니다. 지혜가 없는 상태는 모하이고, 지혜가 있는 상태는 모하가 아닙니다. 알지 못하고 멍한 상태가 모하이고,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도 모하이고, 망상하고 있는 것도 모하입니다.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도 모하입니다. 사띠가 없는 것도 모하입니다. 로바(Lobha 貪欲)가 일어나면, 그것도 모하입니다. 모하가 있기 때문에, 로바가 일어납니다. 모하가 있기 때문에, 도사(Dosa 瞋心)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 로바와 도사가 일어날 때, 모하는 함께 있습니다. 지혜가 나야, 모하를 알 수 있습니다. 모하는, 지혜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모하는, 항상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지혜가 없으면 사띠가 있어도, 모하가 있습니다.
 
* 사띠와 지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놓치면, 항상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띠와 지혜가 없는 그 순간에는, 모하가 항상 있습니다.
 
* 위빳사나 수행을 제대로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그냥 자연적 성품으로, 자기 일을 자기가 할 뿐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사마타적으로 수행하면, 원인ㆍ결과를 알지 못해서 '내가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마타적으로 수행하면, 바른 견해가 생기지 않게 됩니다. ‘내가 한다. 내가 잘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단지 원인으로 인해서 결과가 나타날 뿐인데, ‘내가 잘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상태를 고요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면, 미세한 쪽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과도 만나야 하고, 고요해지게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띠를 두어야 합니다. 사야도가 속인이면서 많은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이 더 고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면 마음이 동요될 수 있어서, 마음에 더 사띠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바깥이 복잡하고 시끄러우면, 안은 더 고요해졌습니다. 【바깥의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바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안을 놓치게 됩니다. 안을 놓치게 되면, 마음이 동요됩니다. 그래서 항상 안을 더 보고, 더 생각해야 합니다. 바깥의 대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쪽에다 신경을 쓰게 됩니다.】
 
* 마음에 대해 묻게 되면, 마음에 대해 더 알게 됩니다. 선(善)과 불선(不善)은 대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선한 마음이 많이 일어나게 노력해야 합니다. 수행은 이것뿐입니다.

 

 
* 의도를 압니까? 하고 싶어 하는 마음, 움직이고 싶은 마음, 하루 종일 수많은 의도가 일어납니다. 하는 것마다, 거기에 의도가 있습니다. 마음을 지켜보면, 이런 의도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의도를 알 때, 내가 지금 움직이는 것과 의도를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의도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낄레사(번뇌)가 시키는 의도인지, 지혜가 시키는 의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낄레사(번뇌)로 인한 의도는 아주 거칠고, 낄레사가 없는 의도는 아주 미세합니다.
 
* ‘무엇 때문에’라는 것을 항상 알고 나서, 무엇을 하십시오. 항상 사띠를 두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당연히 알 것입니다. 항상 사띠가 있는 사람은 말하거나 행동할 때, 좋은 쪽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합니다.
 
* 빠라맛타는, 지혜의 대상입니다. 낄레사의 대상은, 빤냣띠입니다. 생각을 빠라맛타로 볼 수 있으면, '일어나는 성질'을 알 수 있습니다. 낄레사로 보게 되면, 내용을 보게 됩니다. 대상을 대상인 줄 바르게 알고, 자연의 이치인 줄 알 때, '성질'이 지혜의 대상이 됩니다. 낄레사의 대상은, 개념. 내용입니다.
 
* 마음이 만들어 낸 대상을, 분명하게 마음이 만들어서 나타난 대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해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가짜를 진짜로 생각할 수 있고, 견해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 보통 사람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 마음을 믿습니다. 그걸 믿으니까, 그 마음이 더 강해지게 됩니다. 지혜가 작용을 하면, 바로 믿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고, 조사를 합니다.
 
* 지금은,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믿고 행동합니다. 자꾸 마음을 보게 되면, 마음이 일어나도 바로 믿지 않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어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자꾸 보고, 바로 믿지 말고 옳은지 그른지? 조사를 해야 합니다.
 
* 【무엇을 알던지, 일어나는 것을 알면 됩니다.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지, 현재 내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면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그와 관련된 상황이 생기면 언제나 낄레사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일어나면,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바로 마음을 바꿔버립니다.】

 

 

 
* 【고통이라는 것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라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고통이라고 느끼게 되면, 행복한 것을 원하게 됩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원한다면, 거기에서 로바(Lobha 貪欲), 도사(Dosa 瞋 憎惡心)가 일어나게 됩니다.】 지혜가 생겼다면, 그때 로바가 없습니다. 로바가 없는 것을 닙바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둑카와 도사는, 딱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지혜는, 자기 일을 자기가 합니다.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원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둑카를 싫어하기 때문에, 닙바나를 원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 번뇌가 사라진 상태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상태에 이르러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동안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낄레사로써 즐겁게 사는 것만을 압니다. 지혜로써 즐겁게 사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 듣고, 보는 데에, 사띠와 지혜가 있으면 수행하는 것입니다. 듣고, 볼 때에도, 로바(탐심)·도사(진심)·모하(치심)로 듣고 본다면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여기에 사띠와 지혜가 들어 있으면 수행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항상 사띠와 지혜가 있다면 수행하는 것입니다.
 
* 말할 때는, 이미 다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몰랐다면, 지혜로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낄레사로써 말을 할 때는, 선택할 겨를도 없이 말을 해버립니다.
 
* 안 해야 할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의 질이 뚝 떨어져버립니다. 해야 할 말을 하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지 않았을 때는 힘이 생깁니다. 지혜가 말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이해를 했을 때,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 정말로 할 말이 없으면, 마음 안에서도 할 말이 없습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있으면, 안에서 넘쳐나게 됩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는 그런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속이 아주 깨끗해서 생각조차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어 하는 것에, 사띠를 두고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까? 낄레사 때문입니다.】
 
*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 아픈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면, 머리도 사라지나요? 머리와 아픈 것이, 따로따로입니다. 배가 아픈 것도, 배와 아픈 것이 따로따로입니다. 아픔의 성질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라고 하면, 거기에는 '내'가 들어갑니다. ‘내 몸이 아프다.’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성질은 내가 아닙니다. 아픈 것이 아플 뿐이지, '내'가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 몸이, 못 견디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이, 못 견디는 것입니다.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몸이 안 좋다고 수행을 잘할 수 없다고 하는가요? 그럴 때는 마음을 유의해서 보도록 하십시오. 【몸은 아프더라도, 마음은 아프지 않도록 하십시오.】
 
_Sayadaw U Tejaniya's Dharma Talks_
 
 
출처: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654374018917520&id=100030347837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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