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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깨달으면 정말 모든 것이 달라지나?

깨달음은 번뇌가 해소된 경지 
신비주의적 현상 집착 말아야 

질문)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 깨달음의 세계가 현실과 다른 무엇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깨달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른 세계인지,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깨달음의 경지는 현실과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코가 더 커지는 것도, 하늘에서 금덩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던 산스크리트를 달통하게 되는 것도, 저 멀리 다른 세계에 가는 것도, 만인을 호령하는 황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이처럼 외형적인 조건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깨달으면 어떻게 됩니까? 초기경에 입각해서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범망경〉(D1) 등에서 부처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서(paccattam- eva) 완전한 평화(nibbuti)를 분명하게 안다’고 하셨습니다.
이 완전한 평화를 우리는 열반이라 부릅니다. 이처럼 깨달음은 내면세계의 변화입니다. 

둘째, 고정불변하는 존재론적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지 않습니다.
존재론적 실체를 초기경에서는 유신견(有身見, sakaaya-ditthi)이라 합니다.
깨달으면 진아니 대아니 유일신이니 하는 존재론적 실체에 대한 가설을 말끔히 극복하고 연기와 무아의 이치를 철견합니다.
불성이나 여래장을 존재론적 실체인양 잘못 이해하는 불자들을 봅니다.
불성이나 여래장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대승경들은 분명히 밝힙니다.
이러한 유신견의 척파를 두고 견혹(見惑)이 제거되었다, 무명이 타파되었다, 어리석음[癡]이 소멸되었다고도 합니다. 

셋째, 해로운 심리현상[不善法]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감각기능[根]-대상[境]-알음알이[識]가 맞닿으면서 전개되는 역동적인 흐름 그 자체입니다.
이 과정에서 범부들은 좋은 대상은 갈망하고 탐착하고 거머쥐고 아등바등하며, 싫은 대상은 밀쳐내고 혐오하고 증오하고 저항합니다.
깨달으면 근-경-식-촉-수-애-취-유의 연기구조를 철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유익한 심리현상[善法]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해로운 심리현상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수혹(修惑)이 제거되었다, 탐욕[貪]과 성냄[瞋]이 소멸되었다고도 표현합니다. 

넷째, 상응부 경전에서는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범부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깨달은 사람도 꼭 같이 이러한 느낌들을 느낍니다.
그러나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정신적으로까지 근심하고 슬퍼하고 울부짖고 광란합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더 이상 그 때문에 근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지만 그 첫 번째 화살에 연이은 두 번째 화살에는 맞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다섯째, 깨달은 사람은 해로운 심리현상들 대신에 항상 자애.연민.함께함.평온(慈悲喜捨)의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대표되는 유익한 마음을 내면서 이웃과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삽니다.
부처님과 많은 옛스님들의 행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사성제를 철견함으로 해서 이지적인 번뇌[見惑=어리석음]와 정서적인 번뇌[修惑=탐욕과 성냄]가 말끔히 해소된 경지이지,
깨달았다고 해서 별천지가 전개되거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외형적인 조건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깨달음은 결코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조주스님은 평상심이 도라고 하셨습니다. 

각묵/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 2126호/ 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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