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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긴 글]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긴 글]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2020.12.18. 재수정)


수행修行은 '닦을 수修 + 행할 행行'의 합성어로 '행行을 닦음(修)' 또는 '닦는(修) 행行(행위)'라는 뜻이다. 수행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Buddha이 설법(법法을 설명) 시 사용한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중국어(한문)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또는 닦는 수행' 정도로,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정각에 이르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닦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무상정등각(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 줄임말로 정각);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我, ego)'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시고 나서,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암중모색하여 완성한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여 자신과 같은 '정각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줄임말로 '팔정도'라 이름 짓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수행, 줄임말로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셨다.


일생이 뭇 생명(중생)을 향한 무한한 자비(‘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연민)의 발현이셨던 부처님. 부처님의 위대한 점은 정각을 증득하셨다는 점이 아니라, 정각을 증득하신 후 입멸하실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맨발로 걷고 걸식(탁발)하시면서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아무 대가 없이, 아무 차별(분별) 없이 정각(해탈, 열반)에 이르는 바른 실천(팔정도 바와나;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가르치셨다는 점이다.


부처님은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 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및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과 처지(처해 있는 상태; 사정이나 형편, 환경, 상황 등)에 맞춰서 비유적, 우화적, 시적(게송), 문학적, 함축적, 서술적, 분석적, 종합적, 논리적, 경험적, 합리적, 과학적 표현 방법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사용해서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의 많은 설법說法(법法을 설명說明함)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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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이른바 석가모니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불佛, 즉 불타佛陀'는 고대인도어(산스크리트어 & 빠알리어) 붓다Buddh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우리말(한국어, 한글)로는 '부처'라고 음역한다.


그러면 깨달은 자, 븟다는 무엇을 깨달았나?


부처님은 법法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법法을 깨닫고 나서 법法을 가르치셨다.


법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 또는 빠알리어 담마Dham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달마達磨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은 '깨달음의 내용'(부처님 자신이 깨달은 내용인 법法)과 '깨닫는 방법'(부처님 자신이 완성한 깨닫는 방법인 법法)을 통칭한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음의 내용'은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부처님이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깨닫는 방법'은 '팔정도(정각에 이르는 또는 깨달은 자가 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음의 내용'(부처님 자신이 깨달은 내용, 존재의 실상과 진리; 무상·고·무아, 연기법)은 어느 정도 유사하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부처님이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깨닫는 방법'(부처님 자신이 완성한 깨닫는 방법, 실천법, 수행법)인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 계행•정행•혜행; 팔정도 바와나)을 왜곡 변질 없이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불교는 부처님佛이 가르치신 법法(깨달은 내용과 깨닫는 방법)을 온전히 가르치는 불교佛敎(부처님佛 가르침敎)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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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경》에서 사리뿟따(사리불, 사리자)가 설명하듯이, 부처님이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 경험-일상경험, 수행경험 등과 그로부터 형성되는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및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과 처지(처해 있는 상태; 사정이나 형편, 환경, 상황 등)에 맞춰서 설하신 모든 가르침(설법; 이른바 대기설법)은 초전법륜경의 사성제 가르침에 포괄되고,


부처님이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과 처지(처해 있는 상태)에 맞춰서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행,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 모든 수행법(이른바 37조도품 등)은 초전법륜경에서부터 대반열반경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전에서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에 포괄된다.


꼰단냐를 비롯한 최초의 다섯 제자에게 팔정도를 바와나(계발)하는 중도[majjhimā paṭipadā; 양 극단에 의지하지 않는 길을 감/길걸음/실천/수행]를 설하신 초전법륜경(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317044811941414&id=100009077529459 )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입멸하시기 전 마지막 제자인 수밧타에게 사부대중과 함께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닦음)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시는 대반열반경의 마지막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수행은 '정각에 이르는 또는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바른 길(八支聖道, 八正道)을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이 전부다.


혹자는 "팔정도는 구체적인 수행법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이고 원론적인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경전(이른바 불설 경전, 즉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부처님의 설법; 正法)을 제대로 바르게 배우지 못하여 '팔정도'와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修 행行), '중도'[majjhimā paṭipadā, 양 극단에 의지하지 않는 길을 감/길걸음/실천/수행]의 차이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여러 경전에서 설(설명)하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법을 제대로 공부하여 정확히 알게 되면 이것만큼 구체적인 것도 없다.


부처님이 여러 경전에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닦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修 행行; 실라•사마타•위빠사나, 계행•정행•혜행)’를 바르게 공부해서 바르게 실천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과학적(=경험적+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훌륭한 실천방법인지 알게 된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실천하고자하는 자(불자, 불제자), 특히 正法(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따르고자 출가한 자(스님; 비구, 비구니)라면 부처님이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修 행行)를 자신도 바르게 공부해서(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이해해서) 바르게 실천하고 사람들에게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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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팔정도를 '수행(바와나;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관점에서 아래와 같이 계戒(실라; 정어·정업·정명), 정定(사마디; 정정진·정념·정정), 혜慧(빤냐;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법(법을 설명) 시의 편의를 위해, '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慧; 정견·정사유) 바와나'를 위빠사나라고 이름 붙이셨다. '실라(계; 정어·정업·정명) 바와나'는 그냥 실라


1. 실라sīla(계戒) : 지킬/경계할 계戒는 실라의 한문 번역


- 정어正語(sammā vācā) : 바른 '언어/말과 글'


- 정업正業(sammā kammanta) : 바른 (신구의身口意) 업/행위/습관/습성


- 정명正命(sammā ājīva) : 바른 삶/생활/생계


• 실라sīla(계행戒行) =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 = 정어(바른 언어)·정업(바른 행위/습관)·정명(바른 삶/생활)을 닦는 또는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2. 사마디samādhi(정定, 삼매三昧) : 평정할/고요할/그칠 정定은 사마디의 한문 의역意譯, 삼매三昧는 사마디의 한문 음역音譯(음사)


- 정정진正精進(sammā vāyāma) : 바른 노력/정진


- 정념正念(sammā sati) : 바른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


- 정정正定(sammā samādhi) : 바른 삼매(몰아 고요집중)


• 사마타samatha(정행定行) =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 =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을 닦는 또는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3. 빤냐paññā(혜慧, 반야般若) : 지혜 혜慧는 빤냐의 한문 의역意譯, 반야般若는 빤냐의 한문 음역音譯(음사)


- 정견正見(sammā diṭṭhi) : 바른 '봄/관찰/통찰, 조사, 이해/견해/앎'


- 정사유正思惟(sammā saṅkappa) : 바른 '생각/사유, 분석'


• 위빠사나vipassanā(혜행慧行) =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정견·정사유) 바와나 = 사마타의 바른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 능력을 사용해서 신수심법(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을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닦는 또는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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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 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실라(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중국어(한문) 번역경전식 표현으로 말하면 '계행戒行•정행定行•혜행慧行'(戒•定•慧를 닦는 行) 또는 '戒•定•慧 三學'이고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실라•사마디•빤냐 바와나)다.


니까야(부처님 말씀/설법/가르침을 고대인도어로 기록한 경전 모음집)의 한문 번역본에 해당하는 경집(경전 모음집)인 아함경집에 등장하는 지관법止觀法; 지법(止法, 정행, 정향; 사마타)과 관법(觀法, 혜행, 혜향; 위빠사나), 선禪 또는 선정禪定 수행, 계향戒香-정향定香-혜향慧香-해탈향解脫香-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등의 용어도 후대 사람들(중국의 불교도들)이 부처님이 가르친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수행, 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한문으로 달리 표현한 것들이다.


부처님은 특히 여러 삼매경(사마디 숫따), 삼매계발경(사마디 바와나 숫따, 사마타 숫따), 아나빠나 사띠 숫따(안반수의경), 마하 사띠 빳타나 숫따(사띠의 확립 정착에 대해 설한 큰 경; 대념처경),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 확립 정착의) 단계별 길들임경 등으로, '사마타•위빠사나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계발하는/닦는 수행’, 한문식 표현으로 '지止•관觀(사마타•위빠사나) 겸수兼修(상호의존 수행)' 또는 ‘정定•혜慧(사마디•빤냐) 쌍수雙修(한 쌍으로 닦음)’를 누누이 강조하여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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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지혜(빤야, 반야)가 계발(열리고 발전향상)되는 단계에 따라, 지혜(빤야, 반야)를 세 종류의 지혜 즉 수타-빤냐(들은 지혜; 문혜聞慧), 찐따-빤냐(사유 지혜; 사혜思慧),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수혜修慧)로 구분하셨다.


우선 완전히 바르게 깨달은 자(붓다, 부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설법 또는 그 설법을 기록한 경전), 즉 존재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바른 가르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실천(팔정도 바와나; 팔정도 수행, 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에 대한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바른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들어서 (또는 그 설법을 기록한 경전을 읽어서) 생기는 수타-마야-뺜냐(부처님의 설법을 들어서 생기는 지혜), 줄여서 수타-빤냐(들은 지혜; 聞慧), 그리고 들은 것(또는 읽은 것)을 바르게 사유해서 생기는 지혜, 찐따-빤냐(사유 지혜; 思慧)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설법 또는 경전)을 바르게 배우고(듣고, 보고 읽고) 바르게 사유해서 聞慧와 思慧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것이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의 첫 단계(예비 단계 또는 준비 단계; 교학 단계)인 '머리로 하는 지식(교학) 차원의 혜慧(빤냐/반야/지혜;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다음 단계(지식의 실천 단계; 경험 차원의 단계)로 앞의 첫 단계에서 계발된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인 聞慧와 思慧를 바탕으로, 5계 등의 계율 실천을 포함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바와나(계발 수행)를 자발적으로(스스로) 바르게 실천하여 청정한 생활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함으로써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이를 바탕으로 사마타(사마디/삼매 바와나; '정定;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와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혜慧;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바르게 실천해서 바와나-빤냐[수혜修慧, 수행 지혜, 통찰 지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한다.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聞慧와 思慧)를 넘어선 경험(수행경험) 차원의 지혜인 바와나-빤냐[修慧, 수행 지혜, 통찰 지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모든 사람을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완전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경지(상태)로 이끄는 진정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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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만 하는 수행자는 하급 수행자다.


몸으로만 하는 수행자는 중급 수행자다.


머리와 몸으로 하는 수행자야 말로 상급 수행자다."


- 부처님


부처님이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수행, 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진행 단계를 간략히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로 하는 '지식(교학) 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단계


; 첫 단계의 목표는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正法)을 바르게 듣고 보고(정견), 바르게 사유(정사유)하여 (달리 말하면 머리로 바르게 공부하여)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 계•정•혜 계발 수행, 계행•정행•혜행, 실라•사마타•위빠사나)를 흔들림 없이 스스로 바르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교학) 차원의 이해[또는 지혜; 聞慧(들은 지혜)와 思慧(사유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것이다.


(2) 몸으로 하는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바와나(계발 수행)'(계행戒行) 단계


; 이 단계 ‘실라 바와나’(계행戒行)의 일차목표는 (1)단계에서 계발된 聞慧(들은 지혜)와 思慧(사유 지혜)를 바탕으로 정어·정업(바른 신구의 행위)을 닦아서 5계 등의 계율을 자발적으로(스스로) 지키고 여섯 감각기관(6근)을 단속하여 정명(바른 생활; 청정한 생활)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함으로써 바른 삼매(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로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3) 몸으로 하는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계발 수행)'(정행定行) 단계


; 이 단계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정행定行)의 일차목표는 (2)단계에서 어느 정도 청정해진 6근(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정정진(바른 노력/정진)과 한 가지 대상(호흡과 같은 까시나)에 대한 정념[바른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을 통해서 정정(바른 삼매)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것이다.


(4) 머리와 몸으로 하는 '경험(수행경험) 차원의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혜행慧行) 단계


; 이 단계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 혜행慧行)의 목표는 (3)단계의 바른 선정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신수심법(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을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하고 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통찰 지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것이다.


(5)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수행, 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완성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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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교학 단계)인 '지식(교학) 차원의 혜慧(빤냐)를 계발하는 수행'으로 계발된 지식(교학) 차원의 이해/견해 또는 지혜(聞慧와 思慧)를 바탕으로, 


바른 공양과 5계 등의 계율을 지키는 실천을 포함한 ‘실라(戒; 정어·정업·정명)를 닦는 수행’(실라 바와나, 戒行)을 자발적으로(스스로) 실천하여 청정한 생활을 닦고 여섯 감각기관(6근)을 단속하여 어느 정도(바른 삼매/정정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로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다.


어느 정도 닦아진 실라(戒行), 즉 초선정 삼매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청정해진 6근(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定行; 계행을 바탕으로 '바른 정진, 바른 사띠, 바른 삼매'를 닦는 수행)가 계발(열리고 발전향상)되고, 


사마타를 바탕으로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 慧行; 사마타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계발되는 바른 봄/관찰과 바른 사유를 통해서 통찰(깊은 관찰) 지혜를 닦는 수행]가 계발된다. 


발전향상된 사마타는 실라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키고, 발전향상된 위빠사나는 사마타와 실라를 더 발전향상시키며, 발전향상된 실라는 다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킨다.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실라•사마디•빤냐 바와나, 실라•사마타•위빠사나; 계•정•혜를 닦는 수행, 계행•정행•혜행)는 이렇게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완성된다. 또한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 바와나는 실라나 사마타나 위빠사나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호의존 방식의 중도中道 수행임을 명심해야 된다.


부처님이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변질되지 않은 바른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은 이해하기에 어렵거나(피상적이거나, 난해하거나) 실천하기에 어렵지 않다.


다만 수행의 성취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바른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실라•사마타•위빠사나, 계행•정행•혜행)에 대한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正法)을 사리자나 주리반특 같은 부처님 제자들처럼 바른 공양과 5계 등을 지키는 계행에서부터 매우 철저하고 충실하게 실천해야 된다.


부처님이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훌륭한 길(실천방법)이다.


수행의 중간 과정에서도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에고식 또는 에고심)의 착각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정도만큼 그리고 탐(갈망, 욕망, 탐욕), 진(갈망의 다른 측면인 혐오, 미움, 성냄, 증오, 분노, 두려움), 치(갈망과 혐오, 탐·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정도만큼 저마다의 자유와 평화,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바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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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본 문_


※ 부처님이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는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경험적+합리적)인 수행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수행 단계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머리로 지식(교학) 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단계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첫 단계(준비 단계, 예비 단계; 교학 단계)는,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 그리고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서 완전한 행복의 경지(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가르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경전/설법)을 


정견(바르게 보거나 들음)·정사유(바르게 사유)하여 머리로 바르게 이해하는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이해, 또는 견해)인 聞慧(正法을 들어서 생기는 들은 지혜)와 思慧(正法을 사유해서 생기는 사유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지식(교학) 차원의 수행 단계다.


달리 표현하면 아상(에고심)과 아집, 아만심, 탐(갈망, 욕심, 탐욕), 진(혐오, 성냄, 증오), 치(탐·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 같은 해로운 마음들이 자신의 무명(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는 걸 지식(교학) 차원에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학습學習(배워서 익히는) 단계이며,


또한 경험차원의 수행지혜(修慧)를 계발하는 실라(정어·정업·정명 계발 수행)-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스스로 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바르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지식(교학) 차원에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는 학습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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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不立文字는 가장 마지막 순간(피안의 언덕에 도달한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을 문자도 필요 없고, 붓다의 설법(그리고 붓다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도 필요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큰일이다. 약이 필요 없다는 것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병자에게는 약이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약을 곁에 두고 먹어야 된다." - 성철스님


처음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실라-사마타-위빠사나)를 접하는 사람은 팔정도 바와나에 대한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경전)을 잘 가려서 자꾸 읽고 사유하면서(聞慧와 思慧를 계발하면서) 지식(교학) 차원에서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여 익히고, 바른 수행처에 가서 초보적이나마 수행을 체험하고 질문하며 일단은 친숙해져야 된다.


학문은 정보를 날로 더해야 발전이 있고, 수행은 날마다 정보(지식차원의 앎)를 덜어내야 발전이 있다.지만 그것은 어느 단계 이상으로 수행이 깊어진 후에 이야기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은 바른 정보(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설법; 正法)를 지식(교학) 차원에서 명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여 익혀야 한다. 알 만큼 알고 익숙해져야 앎을 버릴 수 있다.


"알고..버리고..깨달으리. 팔정도를 바르게 닦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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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첫 단계(준비 단계, 예비 단계; 교학 단계)인 머리로 하는 빤냐(慧;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통해서 계발되는 聞慧와 思慧는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다.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의 통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는 아니라도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경전)을 바르게 배우고(듣거나 읽고), 바르게 사유해서 계발(열리고 발전 향상)되는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와 자비는 일상생활에서 개인적, 집단(사회)적인 진정한 이익[진정한 행복, 괴로움의 근원적 소멸, 탐진치의 소멸, 마음의 부정성의 소멸, 나와 너를 초월한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의 계발 증대]에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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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에는 얕은 습관이 있고 깊은 습관이 있다.


세뇌에는 얕은 세뇌가 있고 깊은 세뇌가 있다.


착각에는 얕은(단순한) 착각이 있고 깊은 착각이 있다.


무지에는 얕은 무지가 있고 깊은 무지가 있다.


관찰에는 얕은(피상적인) 관찰이 있고 '깊은 관찰'(통찰)이 있다.


앎(이해)에는 얕은 앎(이해)이 있고 깊은 앎(이해)이 있다.


지혜에는 얕은 지혜(들은 지혜, 사유 지혜; 지식 차원의 지혜)가 있고 깊은 지혜(수행의 통찰 경험의 의해서 생기는 경험 차원의 지혜)가 있다.


'팔정도; 정견(바른 봄/관찰, 앎/이해/견해)......정정(바른 삼매)'에는 얕은 '팔정도; 정견......정정'이 있고 깊은 '팔정도; 정견......정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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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에는 얕은 정견이 있고 깊은 정견이 있다. '정견 바와나(계발 수행), 즉 정견(바른 봄/관찰/통찰, 이해/견해/앎)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은 지식(교학) 차원의 피상적인 앎(이해, 견해), 피상적인 관찰, 얕은 정견에서 시작하여,


궁극에는 무명(실상과 진리를 여실히 모르는 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극복하고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완전히 꿰뚫어(통찰하여, 깊이 관찰하여) 바르게 보는 것, 깊은 정견으로 발전 향상하는 수행이다.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시작은, 正法(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설법/경전)을 선입견과 편견 없이 바르게 배우고 (시작은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인 '정견(바른 견해/이해/앎)을 계발하는 수행'이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에 대해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 (시작은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나와 세상 그리고 삶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바르게 추구하여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은 수행의 일부이므로 단순한 지식축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처음에는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견해가 서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른 견해, 정견(正見)은 부처님이 강조하셨듯이, 처음에는 머리로 공부하여 시작은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사성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정견(正見; 바른 이해, 견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가?


그 네 가지는


'중생(생명의 무리)은 근원적인(근본 원인이 있는) 고(苦; 괴로움)를 품고 있다.[고성제苦聖諦]


괴로움의 근원(근본 원인, 集)은 갈애(달리 말하면 탐진치)다.[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滅)된 상태(정각, 해탈, 열반)가 있다.[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정각,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道, 팔정도)이 있다.[도성제道聖諦]'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정각,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인가?


그것은 바로 '고귀한(ariyo)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aṭṭhaṅgiko) 길(magga)'[팔지성도八支聖道 or 팔정도八正道]이니, 그 여덟 부분은


정견正見[sammā diṭṭhi; 바른 ‘봄/관찰/통찰, 조사, 앎/이해/견해’],


정사유正思惟[sammā saṅkappo; 바른 생각/사유, 분석],


정어正語[sammā vācā; 바른 언어/말과 글],


정업正業[sammā kammanto; 바른 (신구의) 업/행위/습관/습성],


정명正命[sammā ājīvo; 바른 삶/생활/셍계],


정정진正精進[sammā vāyāmo; 바른 노력/정진],


정념正念[sammā sati; 바른 사띠],


정정正定[sammā samādhi; 바른 삼매]이다."


- 『분별경(Vibhanga Sutta), 상윳따니까야, S4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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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는 유익한 생각과 해로운 생각이 있다. 나와 남을 괴롭히는 해로운 생각을 번뇌망상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모든 생각을 없앤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망상(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생각)을 소멸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나와 남에게 이로운 바른 생각(正思, 정사유; 또는 善한 생각)의 중요성을 팔정도(정각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의 한 부분으로 가르치셨다.


正思에는 얕은 正思가 있고 깊은 正思가 있다. '正思(바른 생각) 바와나(계발 수행), 즉 바른 생각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은 피상적인 얕은 이해(얕은 正見)에서 생기는 피상적인 얕은 생각(얕은 正思)에서 시작하여, 


궁극에는 無明(실상과 진리를 여실히 모르는 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극복하고 번뇌망상을 모두 소멸해서 아상(에고심) 또는 아집(‘나我’에 대한 집착) 없이 항상 바르게 생각하는 것으로 발전 향상하는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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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몸으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를 닦는/계발하는 수행'(계행戒行) 단계


이 단계는 지식의 실천을 통해서 바른 心身의 행복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즉, 머리로 正法(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설법/경전)을 바르게 이해한 지식(지식/교학 차원의 지혜; 聞慧와 思慧)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자발적으로(스스로) '바른 삶, 지혜와 자비의 삶, 도덕적인 삶, 청정한 삶, 실라(정어·정업·정명)'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여, 몸과 마음을 점점 더 건강하고 청정(맑고 깨끗)하게 함으로써 그에 따라 점점 더 眞正한(진실로 바른) 心身의 행복을 즐기기(경험하기, 체험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먹는 얘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결코 배가 부르지 않는 것처럼


머리로만 수행하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수행은 이와 같다" - 부처님


수행의 과실을 따서 먹기(心身의 행복을 즐기기) 시작하는 단계는 머리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이 단계에서부터다


이 단계 이후에, "자신이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측정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화를 내는 빈도'와 '화가 지속되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 들었는가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을 바르게 실천하면 '탐진치'의 발생빈도와 지속시간이 모두 줄어들지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진'에 속하는 거친 감정인 '화'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완성하면 '화'를 비롯한 모든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된다.


현재의 삶은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행위로 인한 업業(잠재적인 습, 습관 또는 습관의 경향성)의 결과이며, 동시에 현재의 행위는 이후의 삶과 내생의 삶을 조건지어주는 새로운 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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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무명無明(실상과 진리를 여실히 모르는 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저질러 왔던 몸과 마음의 탁한(불선한) 행을 어느 정도(바른 삼매/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 청정(맑고 깨끗)하게 닦는 계행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 = 실라 바와나)은


정행定行(사마디定를 닦는 수행行 = 사마디 바와나 = 사마타; 지止 수행)과 혜행慧行(사마타 후에 깊은 빤냐慧를 닦는 수행行 = 빤냐 바와나 = 위빠사나; 관觀 수행), 달리 말하면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지관止觀(사마타•위빠사나) 겸수兼修(상호의존 방식의 수행)로 ‘사띠(念)를 확립정착(處)하는 수행’(념처念處 수행)의 기반(기초, 토대, 바탕)이 된다.


아직 구체적인 계율(戒律; 실라를 닦는 수행의 구체적인 실천 항목과 규범)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에도 청정한 삶(또는 몸과 마음)을 닦는 행으로 부처님이 특히 강조하신 구체적인 실천은 '오후불식'이었다. 오전에 탁발하여 한 번 식사하고 오후에는 물 이외에 음식을 먹지 않는 '오후불식의 1일1식'은 고타마 싯달타 보살이 수행을 시작한 후 그리고 부처님이 되신 후에도 평생 계속한 생활 습관이다.


부처님 가르침(佛法, 佛敎)에서는 밥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한 수행으로 생각하는데 ‘공양한다’고 표현한다. 공양供養은 ‘존경하여 받듦, 베풀고 이바지하고 기여함’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인도어 '뿌자나'를 한역한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내 입으로 밥 한 술, 반찬 한 입이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과 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수고가 쌓였는지 가슴 깊이 새기는 일이 바로 공양이다.


발우공양을 할 때는 발우(수행자 밥그릇)에 담긴 음식을 (음식이 맛있거나 맛없거나 간에)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을 생각하면서 먹는 것에 대한 경건함과 연기(인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의 이치를 일깨우게 하는 중요한 수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양'이다.


몸과 마음의 음식에 대한 탐진치貪瞋痴(욕심貪, 혐오瞋, 그리고 욕심과 혐오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痴)를 비우고 청정하게 닦는 바른 공양(오후불식의 발우공양)은 청정한 삶을 닦는 계행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의 시작이자 정각을 향해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수행; 팔정도를 닦는 수행,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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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戒; 정어·정업·정명, 바른 언어·바른 행위·바른 생활)를 닦는 수행의 구체적인 실천 항목과 행동 규범인 계율戒律은 내용에 따라 능동적 다짐조항인 계戒와 수동적 금지조항인 율律로 나눌 수 있다.


계戒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서 수행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다짐하는 실천 항목을 말한다. 예컨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기로 다짐하는 의미의 삼귀의계와 5계는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율律은 승가(수행자 집단)의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규범을 말한다. 율律은 고대인도어 '비니'를 한역한 것으로 ‘조복調伏’으로 한역되기도 하는데, '身口意의 악업(불선업)을 다스리고 멀리한다'는 뜻이다. 보통 계라고 말할 때 율을 포함한 계율을 말된다.(예컨대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등)


계율은 일시에 만들어 공표한 것이 아니라 승가와 비구, 비구니들이 타락의 징후가 있을 때 그리고 불선한 행위가 있을 때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것을 규제하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계행(실라 바와나)의 일차목표는 5계 등의 계율을 자발적으로(스스로) 지켜서 여섯 감각기관(6근)을 단속하여 바른 삼매(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로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다.


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 = 실라 바와나)을 한 마디로 말하면 六根(여섯 감각 기관; '眼耳鼻舌身意' 根)이 그 대상에 습관적으로(무의식적으로) 끌려가는 것을 단속하는 것이다.


바른 공양과 5계는 중생(생명의 무리)들의 삶을 크고 거친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보호하고 벗어나게 해주는 최소한의 보호장치이자 定行(사마타)과 慧行(위빠사나)의 직접적인 토대(바탕, 기반, 기초)가 된다.


5계(五戒; pañca śīla)


불살생不殺生: 생명을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살해하지 않기


불투도不偸盜: 남의 것을 탐내거나 훔치거나 빼앗지 않기


불사음不邪淫: 부당한 성행위나 성추행이나 성폭행하지 않기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이나 모함, 비방, 비하, 욕설 등 언어폭력하지 않기


불음주不飮酒: 술 마시거나 마약하지 않기, 술 취해 주정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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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正語는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와짜vāc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와짜는 언어를 뜻한다.


언어(와짜)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인간의 감각 기관(기능)을 통한 물질적 정신적인 일체의 경험 [부처님이 사용한 용어로 말하면 12처(=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감각 기관/기능인 6근 + 그 대상인 6경) 일체의 경험] 을 기호화(개념화)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언어로 학습 당하는 사람들의 식識(=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과 생각을 세뇌하고(길들이고) 지배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언어)을 학습한(배워 익힌) 이후에는 생각도 일종의 말(언어)이다. 생각은 내면의 말, 내면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미국사람은 미국말로 생각을 한다.


말(언어)에는 힘이 있다. 어떤 말(언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식(=의식+무의식)과 생각과 감정이 바뀌게 된다. 그것이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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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正業은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깜만따kammant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깜만따는 한문 경전에서 '업業, 행위行為' 등으로 번역하고, 영어 경전에서는 'doing(함, 행동), acting(행위), working' 등으로 번역된다.


행行(행위)에는 이른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가 있다. 즉 (1) '마음, 생각, 뜻, 의지, 의도'가 몸(身)으로 표현된 행(행위, 행동). (2) '마음, 생각, 뜻, 의지, 의도'가 말(口)로 표현된 행. (3) '마음, 생각, 뜻, 의지, 의도'(意) 자체의 행인데, 행行(행위)을 하게 되면 거기엔 반드시 업業이 지어지게 된다. 


그래서 업을 행위라고도 한다. 업은 행위뿐 아니라 행위로 인해 형성되는 습관과 습성(습관의 경향성)을 포함한다. 업력業力이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에 의해 형성되는 잠재력 또는 관성력(습관/습성의 힘)으로 업의 과보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정업正業(바른 업/행위)은 단순히 몸의 바른 행위가 아니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지어지지 않는 바른 행위를 말한다. 업이 지어지는 행위를 ‘유위의 행’이라고 하고, 업이 지어지지 않는 행위를 ‘무위의 행’이라고 한다. 


'유위의 행'은 아상我相이 개입된 행위이고, '무위의 행'은 아상이 개입되지 않은 행위, 달리 표현하면 '무아의 행'이다. 무아의 행은 그 결과에 아무런 흔적, 즉 아我의 업業이 없다.


요컨대,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계발 수행), 즉 정어(바른 언어)•정업(바른 신구의 업/행위/습관/습성)•정명(바른 삶/생활)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명(무지)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길들여지는 언어(말)•행위•생활(삶)에서 벗어나


궁극에는 무명(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극복하고 아상(에고심) 또는 아집(‘나我’에 대한 집착) 없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냄새, 맛, 감촉을) 바르게 느끼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行(행위)하며 사는(생활하는) 것으로 발전 향상하는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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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특히 대승불교권에서 많이) 행해지는 108배는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 데서 유래하며 절은 下心이라하여 마음을 비우는 한 방편(방법)으로 사용된다.


매일 108참회문을 낭송하며 一心으로 정성스럽게 절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평화롭게 만들며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108배 참회(또는 참회발원)는 心身을 청정하게 하는 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 = 실라 바와나)의 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단 기복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참회문 또는 참회발원문을 바르게 선정하고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108배 참회발원을 해야 된다. [ref.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968250813487484&id=100009077529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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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바른 공양, 108배 참회발원, 5계를 지키는 실천 등을 자발적으로 매일 실천함으로써 어느 정도(바른 삼매/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 여섯 감각 기관(6근, '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 戒行은 定行(사마타;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직접적인 조건(토대, 바탕, 기초, 기반)이 된다.


사마타(定行; 선정定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行)로 바른 선정 삼매에 들고자 한다면 집중수행(또는 안거수행) 기간 동안은 물론 평상시에도 戒行을 철저히 실천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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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으로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정행定行) 단계


이 단계는 머리로 正法(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경전; 변질되지 않은 붓다의 바른 가르침/설법/法을 설명함)을 바르게 이해한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聞慧와 思慧; [1] 수행 단계)와 戒行([2] 수행 단계)을 통해서 어느 정도(바른 삼매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 청정해진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어느 정도 청정해진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한적한 장소에서 잡념 없이 마음을 고요히 집중하는 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를 통해서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단계다.


이 단계를 좌선수행(좌선자세로 앉아서 하는 수행, Sitting Meditation, 좌선 명상, 명상수행) 또는 본격적인 수행 또는 실實수행(실제 수행)의 첫 단계라하기도 한다. 팔정도를 완성하는 직접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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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어떻게(How)'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보실 수 있었을까?


부처님이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 보고 완전히 바르게 깨닫기 위해 실천한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 중에서 사마타(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는 인간의 '일상적인 감각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이, 매 순간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성주괴공)적 수준에서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며 인과 연기적으로 순환(삼사라)하는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할 수 있는 수단(극대화된 정신 능력;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계발하는 것을 가능하게 된다.


《사마디 바와나 숫따(삼매 계발 경), S.III.I.i.5(쌍윳따 니까야, 제III권 칸다 쌍윳따, 제I편, 제i품, 제5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로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으면, 법法(실상과 진리)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바르게 볼 수 있다. 법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면 법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유사정법경, 상윳따니까야 S16:13》에서 부처님은 '바른 삼매‘(正定)를 강조하시며 정법正法을 사라지게 만드는 유사정법의 출현을 엄중히 경고하신다.


"깟사빠여, 중생들이 하열해지고 정법正法(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사라질 때에는 학습계목은 더 많아지지만 구경의 지혜에 안주하는 비구들은 더 적어진다.


예를 들면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면 황금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이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은 사라지게 된다.


깟사빠여, 자연현상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쓸모없는 인간(사자충)들이 나타나서 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든다.


깟사빠여, 여기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 여래(如來; 자연의 이치/법칙에 따라 그렇게如 온來 자; 부처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의 가르침에 따른 공부지음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여래가 가르친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깟사빠여, 이런 유해한 현상이 나타나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된다."


부처님이 설하신 여러 경전들을 읽다보면 ‘바른 삼매’(正定)의 계발을 누누이 강조하시는 부처님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른 삼매'(正定)는 아래와 같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불선한 것(不善法)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탐색작용(위딱까)과 회귀반성작용(위짜라)이 있는 상태(위딱까-위짜라, 즉 마음의 미세한 흔들림, 진동 혹은 동요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세속, 감각적 욕망 또는 신체감각을) 멀리 벗어남에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숙카)에 대한 사띠(알아차림)의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를 갖춘 초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구는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흔들림, 진동, 동요)를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숙카)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도 확실한 사띠의 심일경성을 갖춘 두 번째 선정 삼매(제2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구는 (상대적으로 거친) 희열(삐띠)을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더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성인聖人(예류자~아라한)들이 말하는 '고요함(평정심; 우빽카)에서 사띠를 갖추어 행복(숙카)에 머문다'는 더욱 더 고요한 평정심(우뻭카)에서 오는 행복(수카)에 대한 더욱 더 섬세하고도 확실한 사띠의 심일경성을 갖춘 세 번째 선정 삼매(제3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구는 이미 기쁨, 슬픔, 만족, 불만족의 느낌이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괴로움(둑카)도 즐거움(행복; 숙카)도 떠나서(벗어나서, 뛰어넘어서) 둑카와 수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온전히 청정한 평정심(고요함; 우빽카)에 대한 (온전히) 섬세하고도 확실한 사띠의 심일경성을 갖춘 네 번째 선정 삼매(제4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正定)라고 말한다."


-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ā Sati·Paṭṭhāna Sutta; 대념처경), DN 22》


자신이 든 삼매가 부처님이 설하신 바른 삼매(초선정 삼매 ~ 제4선정 삼매)인지 아닌지는 마음 상태(또는 마음 작용)에 위의 요소들(위딱까, 위짜라, 삐띠, 숙카, 우빽카, 찟따-에깍가따) 중 어떤 요소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이 진정 무엇인가(어떤 것인가)는 선정에서 나온 직후에 선정 상태를 반조返照(되돌아 비추어 봄)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알아내야 한다. 


[상세 내용은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 https://www.facebook.com/photo?fbid=2192417441070819&set=a.1853267608319139 의 ‘4.5 사성제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 절의 ‘바른 삼매’(正定) 부분을 참조하세요]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 수행의 바이블이라고 잘못 알려진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ā大 Sati念·Paṭṭhāna處 Sutta經, 대념처경大念處經; 사띠를 확립 정착하는 수행에 대한 부처님 설법을 기록한 긴 경), DN 22. https://www.facebook.com/photo?fbid=2327698770876018&set=a.1853267608319139 》는 사실은 사마타•위빠사나 상호의존 수행을 설한 경이다. 


좀 더 상새히 말하면,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Sati, 念)를 지止•관觀 겸수兼修(사마타止•위빠사나觀 상호의존兼 수행修) 방식으로 빳타나(Paṭṭhāna, 處; 확립 정착)하는 수행방법에 대한 부처님의 상세하고 친절한 설법을 기록한 긴 경이다.


《대념처경(마하 사띠 빳타나 숫따)》은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마타•위빠사나에 있어서 매우 (또는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부처님이 이 경전에서 설(설명)하신 사마타•위빠사나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방식 수행의 핵심 요체는 '신수심법(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것'이다.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좁혀 가면 사띠와 삼매가 남는다. 사마타(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가 호흡 등 한 가지 대상에 '사띠를 집중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통찰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는 여러 가지 대상(身·受·心·法)을 '사띠하여 이어보는'(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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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正精進은 고대 인도어 삼마sammā 와야마vāyāma를 한역한 것이다. 팔정도의 한 부분인 정정진(바른 노력)은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 에고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바르게 살려는 노력, 달리 표현하면, 아상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더 많이 '놓아버리는' 노력이다.


특히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사마타)으로 바른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수행이 점점 깊어질수록 자기(我)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점점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이 바른 노력(정정진)이다. 왜냐하면 수행이 깊어질수록 자기(我)의 노력조차도 미세한 집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초선정 삼매에 들어선 이후의 단계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놓아버리고 얼마나 더 마음('수상행식' 작용)이 고요해지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궁극에는 다 놓아버리고, 일어나고 사라지는(생멸하는) '수상행식' 작용(마음)이 고요히 멈출 때까지(상수멸을 성취할 때까지)...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이해하여 바르게 실천하면 수행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 물론 몸과 마음(식識; 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배어있는 탁한(불선한) 습관으로 인한 수행 초기의 어려움은 개인차에 따라 누구나 어느 정도 있다.


수행은 자기(我)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 我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我의 자기주장인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我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자기(我)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바른 노력(정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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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正念은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사띠sati를 한역한 것이다. 념念은 '지금(今)+마음(心)'의 합성어로 사띠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띠를 한글로 번역하면 지금(현재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또는 작용)을 전념하여 ‘마음챙겨 알아차림' 정도로 표현하면 부처님이 설(설명)하신 의미와 유사하다.


한역경전에서 념念(생각 념; 마음에 둠, 기억함)이라고 번역하는 사띠sati는 부처님 설법(法을 설명함)에서 '마음챙김,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빠자나pajāna(알아차림; 앎, 이해), 깨어있음, 마음챙겨 알아차림'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부처님 설법에서 사띠는 대개 빠자나(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즉 '사띠 빠자나의 준말'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사띠(마음챙김)와 빠자나(알아차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정념正念이라고 한역하는 삼마사띠samma-sati도 대개 삼빠자나sam-pajāna(바른 알아차림; 바른 앎, 바른 이해, 분명한 이해)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삼마사띠(正念; 바른 마음챙김)와 삼빠자나(正知; 바른 알아차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로 삼빠자나sam-pajāna에서 ‘삼’을 빼면 ‘빠자나’인데, ‘빠자나’의 동사형이 ‘빠자나띠pajanati’다. ‘삼sam’은 흔히 ‘삼붓다, 삼보리, (팔정도의) 삼마사띠, 삼마사마디 등등’에서처럼 단어 앞에 붙는 접두어로 ‘바른’이라는 뜻이다. 빤냐의 동사형도 ‘빠자나띠(알다, 이해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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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에는 얕은(rough, 거친, 무딘) 사띠가 있고 깊은(fine, 섬세한, 예리한) 사띠가 있다.


사마타 수행을 가르치지 않는 수행쎈터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위빠사나 명상쎈터에서는 식사 중에도 알아차리면서 먹으라고 가르치지만, 배고파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기 바쁜 (몸과 마음의) 상태에서는 알아차림이 없거나 매우 거친 알아차림이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 허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사실 준비단계(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fine한 사띠를 준비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일상생활 중에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사마타 =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 = 정정진(바른 노력)·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을 통해서, 비록 바른 선정 삼매에 들지는 못했더라도 어느 정도라도 fine한 사띠가 계발된 상태라야 일상생활 중에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바른 선정 삼매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상수행에서의 사마타'는 쉽게 말하자면 사띠(깨어있음, 마음챙김, 알아차림, 마음챙겨 알아차림) 능력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고요할수록 더 잘 알아차려지고 더 잘 알아차릴수록 마음이 점점 더 고요해지고 생각이 좀 느려지고 이렇게 마음이 조금 비워진다. 이렇게 마음이 좀 비워지고 좀 고요해지고 사띠 능력이 어느 정도라도 좀 계발된 상태가 되어야 '일상수행에서의 위빠사나', 즉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 또는 ‘오감각과 생각, 감정’을 관찰(사띠하여 이어봄)하는 수행을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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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正定은 고대 인도어 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를 한역한 것이다. 정定은 사마디를 한문 의역한 것이고, 삼매三昧는 사마디를 한문 음역(음사)한 것이다. 사마디(삼매)는 '몰아沒我 고요집중'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한 가지 집중대상에 대한 "사띠(알아차림)의 초점 확립 계발 수행"인 '사마타, 즉 정정진(바른 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계발 수행’을 통해서 사띠(알아차림) 대상의 범위를 점점 줄여 가면 마침내 사띠(알아차림)의 초점이 하나로 모여져 고요히 집중되는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사띠의 고요한 집중은 선정 삼매 상태에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자아의식) 또는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이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 또는 자아의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된다.


삼매에는 '얕은 삼매'(예컨대 근접 삼매, 초선정 삼매)가 있고 '깊은 삼매'(예컨대 제4선정 삼매, 비상비비상처 삼매)가 있다.


부처님은 삼매를 색계 삼매(호흡과 같은 물질色적인 것을 대상으로 드는 삼매; 초선정 삼매 ~ 제4선정 삼매)와 무색계 삼매(허공과 같은 비물질無色적인 것을 대상으로 드는 삼매; 공무변처 삼매 ~ 비상비비상처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색계 삼매를 자나jhāna(한역 경전에서는 선정禪定으로 표기)라고 지칭하셨다. 


[상세 내용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824821061163794&id=100009077529459 의 『색계 삼매(선정) 4단계, 무색계 삼매 4단계, 그리고 상수멸(멸진)의 성취』를 참조하세요]


매순간 찰나 생멸하는 물질과 정신을 관찰하는데 필요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는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부터 계발되기 시작하여 제4선정 삼매 상태에서 극대로 개발된다. 삼매에 들었다 나오면 삼매 상태에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가 '한시적'으로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약해진다.


위빠사나[관觀 수행;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통해서 통찰(깊은 관찰)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에 필요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빽카(평정심; 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정한 마음상태)는 수행자가 닦은 삼매의 깊이와 수행자가 처한 주변상황(경계)에 따라 다르지만 제4선정 삼매 상태에 들었다 나온 경우 길게는 수 일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인 사마타로 고요집중의 사띠가 활성화된 상태를 '지혜의 빛이 계발되었다(생겼다), 혜안(慧眼; 지혜의 눈)이 열렸다(각성되었다, 계발되었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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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의 자유자재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선정 삼매는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 신수심법에 대한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하는데 쓸모가 없다.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완성하고 정각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해야 된다.


사마타(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를 숙달시켜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하면 할수록 위빠사나(사마타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깊은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 수행)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를 더 발전 향상시킬 수 있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 전체가 더 발전 향상된다.


사마타에 숙달된 수행자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머무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튕길 사이에도 입정入定할 수 있다고 한다.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깊은 잠에 드는 사람과 유사한(?) 능력인 셈이다.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들은 모두 손가락 튕길 사이에 입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자재한 선정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경전에 기록된 선정의 자유자재는 아래와 같다.


• 전향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의 조건들로 자유자재하게 전향함


• 입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 입정함


• 머묾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에 들어 자유자재하게 머물 수 있음


• 출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서 나올 수 있음


• 반조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조건들과 선정상태를 반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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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 방법에 대한 지적(교학적)인 이해는 수행의 받침대로써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할지라도 수행 그 자체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입니다. 특히 이 단계(사마타 단계)에서부터의 수행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입니다.


사마타(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놓아버리기(원제; Mindfulness, Bliss, and Beyond), 아잔브람 지음 | 혜안비구 옮김>을 참조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ref.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936088676703698&id=100009077529459 )


아나빠나사띠(호흡에 대한 사띠)를 통해서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의 구체적인 실천 가이드는 '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304592673186628&id=100009077529459 '를 참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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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머리와 몸으로 경험차원의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혜행慧行) 단계


이 단계는 사마타([3] 수행 단계) 후에 깊은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 수행인 위빠사나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통찰 지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단계다.


즉, 사마타의 삼매 상태에서 나온 '직후'에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 능력을 사용해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 단계다.


주의할 점은, 부처님이 강조하셨듯이 삼매 상태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삼매 경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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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러 가지(身受心法)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는 위빠사나를 하다가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약해지거나 더 강력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필요해지면 수행자는 하시라도 사마타를 하고 더 깊은 삼매를 계발한다.


사마타는 위빠사나를 계발(열고 발전향상) 시키고 위빠사나는 사마타를 발전향상 시킨다.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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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무더기) 쌍윳따(상응)의 《사마디 바와나 숫따(삼매 계발 경), S.III.I.i.5》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로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으면,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볼 수 있다.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면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色)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 감각(느낌; 受)·지각(想)·상카라(行)·식識(= 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요히 잘 집중된 비구는 오온(색·수·상·행·식 무더기)과 그 원인(인因-직접적인 원인과 연緣-간접적인 원인) 그리고 그것의 연기(인연因緣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일어남과 사라짐)를 있는 그대로 잘 안다. 그 원인이 일어날 때 오온이 일어나고, 그 원인(또는 조건)이 완전히 소멸될 때 오온도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비구는 분명히 보고 안다.“


여기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현상(法)은 오온의 현상과 오온의 연기 현상을 말한다. 오온(다섯 무더기)은 '색色(물질 작용)·수受(감각/느낌 받음 작용)·상想(image 작용, 지각 작용)·행行(상카라; 마음의 습관적 reaction 작용)·식識(앎 작용과 알음알이; 의식+무의식)' 무더기를 말한다


수·상·행·식 무더기를 통칭하여 정신(nama, 또는 정신작용 무더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오온을 다른 말로 정신(nama; 名)-물질(rupa; 色) 무더기라고 한다. 즉,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현상(法)은 오온(정신-물질 작용)의 현상과 오온(정신-물질 작용)이 인연因緣(직간접적인 원인 또는 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 현상을 말한다


사마타로 깊은 삼매를 계발하면 정신-물질 그리고 그 연기의 무상·고·무아의 성질(성품,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명확성이 사마타로부터 오는 가장 큰 이익이다.


또한 사마타는 휴식을 제공한다. 위빠사나에서는 식별하고 관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피곤함이 일어난다. 위빠사나를 하다가 피곤해지거나 고요집중의 사띠와 평정심이 약해지면 수행자는 하시라도 사마타를 하여 삼매에 머물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음을 쉬게 하고 다시 활기가 넘치게 하고,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빽카(평정심)를 다시 강하게 한다. 그러면 다시 위빠사나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어떻게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제4선정을 성취한 사람은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소위 지혜의 빛 또는 삼매의 빛)로 통찰(깊은 관찰)이 이루어진다. 


그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로 자신의 몸을 점점 더 미세하게(또는 깊게) 관찰하면 매 순간(찰나) 생멸하는 깔라빠(물질의 최소 단위;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원자 또는 아원자)를 식별하고, 그 깔라빠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 물질요소(또는 물질작용)인 지地(무거움) 작용, 수水(수축) 작용, 화火(변화) 작용, 풍風(팽창) 작용을 볼 수 있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이 사용하신 용어로 깔라빠)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地 작용(무거움 작용, 중력重力, 질량)’이 있다. 


그 질량(무거움; 地) 작용은 다른 작용, ‘水 작용(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 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風 작용(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물체의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火 작용(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다.


궁극적 물질작용인 지·수·화·풍 작용을 통칭하여 물질의 사대四大(네四 가지 근본大 작용, 사대작용 또는 사대요소)라고 부른다. 이 궁극적 물질요소(사대요소)는 찰나 간에 생멸을 거듭한다. 물질(깔라빠, 아원자)의 찰나 생멸을 봐야 내 몸과 외부 세계 간의 경계(boundary)가 허물어지고 이 몸이 무상·고·무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해탈(모든 苦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진정으로 원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정신(정신작용)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정신작용은 물질작용보다 훨씬 더 생멸이 빠르다. 물질이 한 번 생멸할 때 정신(심찰나)은 십여 번 생멸한다고 한다. 깊은 선정 삼매를 계발하지 않은 사람은 빠르게 생멸하는 심찰나의 정신(정신작용)을 볼 수 없다. 


이 하나하나의 심찰나에 여러 가지 마음부수(心所, cetasikā; 생각, 기억, 감정 등의 마음의 내용요소)가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이것을 식별하려면 깊고 강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필요하다. 깊은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로 이것을 식별하고 관찰해야만 정신의 무상·고·무아를 통찰(깊이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정신-물질이 일어난 원인(또는 연기)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깊은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으로 바왕가(존재 지속심; 마음의 기저에 흐르는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정신작용)를 추적해 올라가면 -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퇴행기법과 유사함, 


그러나 퇴행기법처럼 타인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발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바왕가를 추적해 올라가면 -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사몰심; 전생의 업의 표상 또는 재생의 표상 또는 재생연결식이라 부르기도 함)을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인가 식별하고, 그 원인으로 금생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사몰심(또는 재생연결식)은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장소(태어나는 곳 또는 세상)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와 연기(인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다음 생인 금생이 계속된다.


이런 식으로 물질과 정신 그리고 물질-정신이 일어난 원인(연기)과 물질-정신의 인과 연기적인 순환(삼사라; 윤회)을 관찰한다. 이렇게 통찰(깊은 관찰)이 이루어질 때 존재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할 수 있게 되고 모든 오염원인 탐(갈망, 탐욕, 욕심), 진(혐오, 성냄, 두려움), 치(갈망과 혐오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정한 지혜(빤냐, 반야; 존재의 실상과 진리, 즉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진정한 자비심, 즉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에서 벗어나 모든 중생(생명의 무리)을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의 마음이 자라기(계발되기) 시작한다.


사마타[지止 수행 또는 선禪 수행;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을 통해서 선禪(선정삼매)을 계발하는 수행]만 하다 말거나, 사마타를 제대로 했더라도 위빠사나[관觀 수행; 사마타 후에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통해서 통찰(깊은 관찰)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즉 사마타•위빠사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행 지혜는 물론이고 자비도 제대로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수행을 그만두면 결국 수행 이전의 습관과 행동에 다시 '무의식'적으로(자기도 모르게) 천천히(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수행의 퇴보가 발생하게 된다. 자기 자신과 세상의 사물에 대해 관찰할 때마다 인과 연기적으로 찰나 생멸하는 궁극의 물질(찰나 생멸하는 깔라빠; 찰나의 물질현상)과 정신(심찰나의 정신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유신견有身見, 즉 나(또는 내 몸身)와 세상의 모든 사물이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실체로서 존재한다(있다., 有)라는 견해(見)'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더 이상 수행의 퇴보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지를 '수다원(예류預流 또는 입류入流)'이라고 부른다. '예류, 입류'는 '성인(아라한, 부처) 또는 도道(깨달음의 길; 정각)의 흐름에 예편했다, 들어갔다'는 뜻이다.


즉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를 바르게 실천하여 예류과를 성취하면 (자기 자신과 세상의 사물에 대해) 관찰할 때마다 '인과 연기적인 매 순간의 생멸 변화'(무상)를 보기 때문에 유신견이 완전히 사라지고 법法(부처님 가르침; 진리)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더 이상 도道(정각으로 가는 길)의 흐름에서 퇴보하지 않게 된다.


부처님이 강조하셨듯이 (관찰할 때마다 매 순간 생멸하는 물질과 정신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유신견이 완전히 사라지는 예류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방일하면 수행의 퇴보가 발생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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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의 '바른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안으로', 즉 자신의 내면(몸과 마음)을 '거친' 수준에서부터 점점 더 '미세한(또는 깊은)' 수준(몸은 물질의 최소단위인 깔라빠의 사대작용 수준, 


오늘날 용어로는 원자나 아원자의 상호작용 수준; 마음은 기저에 흐르는 정신작용인 바왕가 수준, 오늘날 용어로는 심층의식/잠재의식/무의식 수준)까지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는 것이 위빠사나의 일차 목표다.


부처님은 《단계별 길들임 경(Dantabhūmi Sutta), 맛지마니까야 MN12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수행자는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로 계발된 고요집중의 사띠를 사용해서, 매 순간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성주괴공)적으로 생멸(생기 소멸)하며 순환(삼사라)하는 신수심법(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를


'안으로 밖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 '현재에서부터 과거', '현재에서부터 미래' (달리 표현하면 12연기 순관, 역관),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 함으로써 바와나빤냐[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하고 세 가지 명지[세 가지 밝은 지혜, 삼명三明; 숙명명, 천안명, 누진(멸진)명]를 성취해야 한다"


부처님 설법에서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 Kāya(身) : 몸, 신체, 물질, 색온色蘊(물질작용/사대작용 무더기)


• Vedanā(受) : 감각(또는 느낌; 특히 ‘몸에 나타나는 현상, 물질감각’), 수온受蘊(감각 受받음 작용 무더기)


• Citta(心) : 마음,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 Dhamma(法) : 부처님이 설하신 다섯 가지의 법(오개, 오온, 육내외처, 칠각지, 팔정도를 포함한 사성제); 또는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생각, 기억, 감정 등의 정신감각). 또는 마음(찟따心, 마노意, 윈냐냐識)의 대상(法)으로서의 세상(우주자연)의 일체 모든 것(法). 또는 물질 정신적인 일체 모든 현상(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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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大念處經(마하大 사띠念 빳타나處 숫따經;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念를 확립 정착處하는 수행을 설한 부처님 설법을 기록한 큰大 경經), D22》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마타•위빠사나에 있어서 매우 (또는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ref. https://www.facebook.com/photo?fbid=2645384829107409&set=a.1853267608319139]


이 경전은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을 사띠하는 수행과 사마타(호흡에 대한 사띠를 확립 정착하여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와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선정 삼매에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평정심을 사용해서 신수심법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머무는 수행)를 모두 포함하여, 


'신수심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念)를 빳타나(확립 정착; 處)하는 수행'(이른바 사념처四念處 수행) 방법을 자세히 설(설명)하신 부처님의 설법(법을 설명함)을 기록한 경전이다.


부처님이 이 경전으로 가르치신 사념처四念處 수행은 아나빠나사띠(호흡에 대한 사띠) 수행을 기초(기반, 토대)로 하여 지관止觀(사마타•위빠사나) 겸수兼修(상호의존 수행) 방식으로 신수심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 念)를 빳타나(확립 정착; 建立, 住立, 處)하는 수행이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이 '사띠를 확립 정착하는 수행'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기초(기반, 토대)로 계발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신수심법을 "이어보면서[anupassi] 머문다. 즉 '이어서 사띠하면서, 또는 사띠하여 이어보면서'(관찰하면서) 머문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감성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몸(身)과 몸에 나타나는 현상(受; 몸의 감각, 물질감각)부터 사띠하여 관찰하는 것이 근기(소질, 적성, 성향, 성격, 능력..)에 맞고, 이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마음(心)과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法; 생각, 기억, 감정 등의 정신감각)부터 사띠하여 관찰하는 것이 근기에 맞는다고 설(설명)하신다.


감각으로부터 발생하는 느낌(feelings)은 최초에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좋거나 싫은 느낌을 스스로 점점 더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것들이 의식(표면의식) 층에 도달하게 될 때는 대부분 너무 강하게 증폭되어서 마음을 쉽게 압도해버린다. 그러면 마음은 감각과 느낌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감각 자체는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감각과 느낌을 사띠하면(마음챙겨 알아차리면) 감각과 느낌으로부터 일어나는 번뇌라는 괴로움의 오염원을 물리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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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을 통해서 바른 선정삼매를 계발하는 수행)가 호흡 등 한 가지 대상에 '사띠를 집중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통해서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는 여러 가지 대상(身受心法)을 '사띠하여 이어보는'(관찰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을 하다보면, rough(거친, 얕은, 피상적인, 투박한, 무딘, 흐릿한, 들뜬, 느린, 미숙한, 불완전한) 사띠에서부터 점점 더 fine(섬세한, 깊은, 명확한, 세밀한, 정밀한, 미세한, 예리한, 또렷한, 분명한, 고요한, 빠른, 능숙한, 완전한) 사띠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사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지혜도 얕은(피상적인, 무딘, 흐릿한, 미숙한, 불완전한) 지혜에서부터 점점 더 깊은(명확한, 예리한, 분명한, 능숙한, 완전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거친 사띠라도 일상생활에서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 연습(훈련, 수련,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하면 한만큼 그 효과가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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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수행, 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완성 단계


팔정도 바와나를 완성하여 정각을 증득하고 나면 팔정도는 더 이상 계발해야(닦아야) 하는 길이 아니라 삶 또는 생활 그 자체가 된다.


부처님은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 즉 실라(戒, Morality;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Concentration;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Wisdom; 정견·정사유)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을 '바퀴가 구르는 것'에 비유하셨다.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을 상징하는 ‘여덟 개의 바퀴살로 이루어진 법륜法輪(법의 바퀴)’은 불교(부처님 가르침)의 심볼(상징)이 되었다.


아래의 사진 속 그림(우하)처럼 Morality(계戒, 실라; 정어·정업·정명) -> Concentration(정定, 사마디; 정정진·정념·정정) -> Wisdom(혜慧, 빤냐; 정견·정사유)을 계발하는 수행이 바퀴처럼 순환하며 구르면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향해 굴러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부처님이 가르친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는 마치 바퀴가 순환하며 구르듯이 실라(정어·정업·정명 계발 수행)-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연기) 방식으로 '반복 순환해서' 실천함으로써 


‘팔정도, 즉 정견(바른 봄/관찰/이해), 정사유(바른 생각/사유), 정어(바른 언어), 정업(바른 신구의 행위), 정명(바른 삶/생활), 정정진(바른 노력/정진), 정념(바른 사띠), 정정(바른 삼매)’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여 궁극에는 팔정도 전체를 완성하고 


'삼명三明'[註1]으로 '무상정등각(줄임말로 정각)'[註2]을 증득하는 것이다. [ref.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916817911964108&id=100009077529459 ]


수행자는 팔정도 전체의 완성과 함께 지혜(빤냐, 반야)와 자비(멧따·까루나)를 완성하고, 완전한 자유(해탈; 모든 괴로움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화(평정심; 우빽카)와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 닙바나, 니르바나)의 경지(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의 수행이다. 팔정도의 여덟 부분의 순서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 의미가 없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팔정도의 여덟 부분이 상호 의존한 병렬 방식으로 계발이 진행되지만, 


부분적으로는 어느 한 방향에 무게 중심을 둘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근기'[註3]나 처지(처해있는 상태; 사정이나 형편, 상황, 환경) 등의 조건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달리 표현하면 팔정도는 정각을 향해가는 팔차선 도로다. 정견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여 완성한 후에 정사유를 완성하고 정사유를 완성한 후에 정어를 완성하는 식의 직렬 방식의 일차선 도로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직렬 방식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호의존(연기)해서 함께 발전 향상하는 병렬 방식의 수행이다.


즉 팔정도의 여덟 부분이 ‘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연기)하여 서로를 계발시키고 지혜(빤냐, 반야)와 자비(멧따·까루나)를 계발(열고 발전향상)시켜서 궁극에는 팔정도 전체와 지혜와 자비가 함께 완성되고 정각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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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삼명三明, 세 가지 밝은 지혜 : 삼명三明을 이루면 정각을 증득한 자가 된다. 삼명이란 정각(또는 아라한과)을 성취한 사람이 갖게 되는 세 가지 밝은 지혜인데, 한역경전에서는 숙명명, 천안명, 누진명이라고 번역된다.


1. 숙명명宿命明 : 고타마 보살은 현재에서부터 과거(그리고 현재에서부터 미래)를 통찰(깊이 관찰)하여 갖게 된 숙명명으로 인과 연기적인 업業을 완전히 바르게 깨달았다.


지나온 과거 생을 추적 상기하여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갖게 되는 지혜로 인과 연기적인 업業[Kamma, Karma]에 대해 밝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과거 여러 생에 걸친 전생을 한문으로 숙세宿世라고 한다. 


즉 숙명명은 겹겹이 쌓인 과거 전생의 인과 연기적인 업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바르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연기의 법칙이기도 한 인과응보의 법칙 또는 업의 법칙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보고(관찰하고) 바르게 아는 것이다.


2. 천안명天眼明 : 고타마 보살은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을 통찰(깊이 관찰)하여 갖게 된 천안명으로 우주자연의 연기를 완전히 바르게 깨달았다.


거리의 ‘멀고 가깝고’에 상관없이 일체 세간의 모든 고락苦樂의 모습(相)과 물질(色; 물질 작용)과 정신(名; 정신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기소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갖게 되는, 연기의 실상과 진리에 대해 밝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천안명은 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함으로써 갖게 되는 지혜를 말한다. 


즉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으며,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생로병사)적으로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기소멸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하는 것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것이다.


숙명명과 천안명은 모든 유정(생명)과 무정(무생물)의 실존 양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을 말한다. 중생(아직 깨닫지 못한 생명의 무리)에게는 그런 눈이 없다. 


그래서 세간(감각적 욕망의 세계, 욕계)의 조건 지어진(conditioned, saṅkhāra) 부질없는 것들에 집착한다. 중생은 그런 집착과 무명(실상과 진리를 여실히 모르는 무지; 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으로 인해 끊임없이 생사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하며 근원적 괴로움(둑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3. 누진명漏盡明 : 고타마 보살은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하여 갖게 된 누진(멸진)명으로 사성제 전체를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정각을 증득한 자(부처)가 되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6243 도 한번 참조해 보세요)


이른바 숙명명으로 숙세의 연기적 인과관계(업)를 꿰뚫어보고, 천안명으로 모든 무정(무생물)과 생로병사우비고뇌라는 근원적 괴로움을 품고 있는 모든 유정(생명)의 연기적 실상(실존 양상)을 꿰뚫어보게 되면[고성제], 자신과 세상(우주자연) 모든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실존 양상; 연기의 실상)과 진리(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완전히 꿰뚫어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실존 양상과 왜 그런 실존 양상을 갖게 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완전히 꿰뚫어보게 된다.[집성제]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알기 때문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존재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침내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을 성취하게 된다[멸성제].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이 괴로움(고통, 번뇌)을 근원적으로 다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중생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부처님은 그 길을 경험적으로 합리적으로 완전히 바르게 아시게 되었던 것이다.[도성제]


정각을 이루기 전의 고타마를 보살(Bodhisatta; '깨달음을 구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하고 붓다(Buddha, 부처; 깨달은 자)가 되신 후에는 세존世尊(Bhagavad)이라고 존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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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2] 정각正覺 : 고대인도어 'Anuttara-samyak-sambodhi'(한문 음사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한역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의 줄임말. 「아」는 無, 「뇩다라」는 上, 「삼」은 正, 「먁」은 等, 「보리」는 覺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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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3] 근기根機 : 근기는 6근('안이비설신의' 근根)을 통한 전생과 금생의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틀(기機), 즉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및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집중력, 인내력..) 등을 통칭한 것이다.


'근根('안이비설신의' 근根) + 기機(틀 기機)'의 합성어인 근기根機는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 '우빠니싸야upanissay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 번역경전에서는 'basis(기반, 기틀); sufficing condition(충분 조건), qualification(자질, 적성, 능력)' 등으로 영역한다. 참고로 '감각 기관'을 뜻하는 근根은 '감각 기능'을 뜻하는 고대인도어 인드리야indriya를 한역한 것이다. 영어 번역경전에서는 'faculty(신체적·정신적 능력 또는 기능)'라고 영역된다.


부처님은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 기능(indriya; 根)을 통한 전생과 금생의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경험, 즉 보고 듣고 (냄새, 맛, 감촉을)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살아온 일상적인 경험, 수행한 경험 등의 전생과 금생의 모든 경험과 


그 경험으로부터 형성되는 틀(機), 즉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및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집중력, 인내력..) 등등을 통칭하여 '우빠니싸야(根機)'라고 이름 붙이셨다.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신 바와 같이, '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근기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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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맺음글_


● 팔정도 바와나(팔정도 계발 수행,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팔정도를 닦는 수행) 관련 용어 정리


• 수행 :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 '바와나'를 한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를 '계발 수행', 팔장도 바와나는 '팔정도 계발 수행' 또는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 실라(계戒) : 정어(바른 언어)·정업(바른 업/행위)·정명(바른 삶/생활)


• 사마디(정定, 삼매; 定은 사마디의 한문 의역, 삼매는 사마디의 한문 음사) :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 빤냐(혜慧, 지혜, 반야; 慧는 빤냐의 한문 의역, 반야는 빤냐의 한문 음사) : 정견(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정사유(바른 생각/사유, 분석)


• 빤냐(반야) : 법法, 즉 자신과 세상(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이자,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 수타 빤냐(들은 지혜, 聞慧)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경전)을 바르게 듣거나 읽어서 생기는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


• 찐따 빤냐(사유 지혜, 思慧) : 듣거나 읽은 정법正法을 바르게 사유해서 생기는 지식(교학) 차원의 지혜


• 바와나 빤냐(수행 지혜, 修慧) : 팔정도 계발 수행(실라•사마타•위빠사나)을 바르게 실천(수행)해서 생기는 경험 차원의 지혜


• 사마타 =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


;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계발하는 수행


• 위빠사나 =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정견·정사유) 계발 수행


;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신수심법(자신과 세상)을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통찰(깊은 관찰) 경험의 지혜(통찰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


• 마른 위빠사나 = 사마타로 바른 삼매를 계발하지 않고 하는 위빠사나.


; 바른 삼매 상태에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계발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림하는 수행을 '마른 위빠사나'라고 부르기도 함


• 사띠 : 마음챙김(Mindfulness), 알아차림 ; 지금(현재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또는 작용)을 전념하여 '마음챙겨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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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두루뭉술하게 사용되는 '명상(Meditation) 또는 명상수행'이라는 용어는 사마타•위빠사나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어야 하지만 대부분 사마타를 위주로 하는 명상수행과 위빠사나를 위주로 하는 명상수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체로 남방불교(소위 테라와다 불교) 계통의 수행쎈터는 ‘위빠사나’(부처님이 가르치신 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지 않고 하는 소위 '마른 위빠사나', 이 변질된 위빠사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순수(?) 위빠사나'라고 표현하기도 함)를 위주로 하고, 


북방불교(소위 대승 불교) 계통의 수행쎈터는 ‘사마타'(선정 삼매를 닦는 수행, 부처님이 가르치신 사마타가 변질된 화두선, 간화선)를 위주로 (사실은 변질된 사마타만) 합니다.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고대인도어로 실라•사마타•위빠사나, 한문으로 戒行•定行•慧行)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호의존(연기) 방식의 수행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에 속하는 수행은 어떤 수행이라도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실천하면 그 나름대로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실라•사마타•위빠사나, 계행•정행•혜행)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의 전체적인 수행 과정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현재 단계(근기와 처지)에 맞는 수행을 한다면 누구나 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라•사마타•위빠사나에 대한 변질되지 않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한 수행경험이 풍부한(깊은) 수행자(스승, 도반)에게서 자신의 현재 근기와 처지에 맞는 수행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정각을 증득하시고 나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여 자신과 같은 깨달은 자(부처)가 되는 (또는 정각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줄임말로 팔정도라 이름 지으시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앞의 ‘_본 문_’에 상세히 기술된 바와 같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는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경험적+합리적)인 수행입니다.


부처님이 듣는 사람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및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와 처지(처해 있는 상태)에 맞춰서 가르치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의 가르침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정각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천이백 아라한)


당시의 인구 추정치와 역사적 자료를 참고한 학자들의 추정치에 의하면 부처님이 활동하셨던 갠지스강 중북부 지역에서 사문(재가자, 출가자를 포함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효가 약 십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에서 약 천 명 정도(백 명당 한 명 꼴)를 자신과 같은 아라한(부처님도 아라한입니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펼쳐 놓으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즉 계戒(실라; 정어·정업·정명)•정定(사마디; 정정진·정념·정정)•혜慧(빤냐;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고대인도어로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바른 가르침(正法)이 


오늘날에도 바르게 전승 전파되어 사람들에게 정각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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