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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몇 주 전에 한 카페에서 불필요하게 덧글 논쟁을 했다. '뭐하러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습관적으로 계속 반응을 하고 내 의견을 쓰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 내면에서 짤막하게 상념이 전해졌다.

'논쟁을 해서 실제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옳음을 주장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해결책을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무엇이 최선인지 살펴보십시오.'

그 상념에 공감이 되어 이후로 불필요한 덧글 달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논쟁에 휘말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 존재와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자기 존재에 대해 공격하는 것처럼 느낀다.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무슨 말을 하든지 불만을 가진 사람이 발생한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찬성하면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불쾌해하며, 내가 어떤 것에 대해 반대하면 그것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불쾌해한다. 무슨 글이나 의견을 쓰든지 그것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말을 하면 계속 얽히게 된다. 말은 소용이 없다. 그래서 옛 현자들이 묵언수행을 많이 했나보다. 내가 다른 뜻으로 한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차갑게 말할 수 없다. 그런 생각 또한 판단하고 분별하는 일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든지 현실에서는 실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대안은 두 가지 정도가 된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오해하고 상처받기 쉬운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그리고 보편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이렇게 글로 적어두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부터 내 주변에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과거에 나는 남의 말에 상처받는 일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단지 나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에 급급했지만, 지금은 좀더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1. 말은 실체가 아니며 공허하다.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관념이다. 가상의 관념에 의해 희노애락을 느끼는 습관을 떨쳐야 한다. 사람의 말에 의해 좌우될 것이 아니라 실체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 진정한 실체는 이 우주, 사물,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의 의식밖에 없다.

2. 말은 진실이 아니며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다.

누가 나에게 '너는 바보다.'라는 말을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 감정을 품고 있다는 표현을 한 것이며, 내가 실제로 바보라는 객관적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말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 표현이며, 감정 표현이 직접적으로 들어 있지 않은 말들도 그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남의 말에 반응하기보다는 그 말을 한 사람의 상태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3.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해 본다. 상대의 카르마를 이해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느낄 만한 감정, 그 사람의 과거 성장 환경과 가족 관계 등을 생각해 보며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해본다.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의 상처와 고통들을 살펴볼 수 있다면 나를 비난한 사람을 오히려 불쌍히 여길 수 있고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잠재의식의 사념들(카르마)처럼 상대방 또한 그러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몸에 때를 가지고 살아가고, 영혼에도 때가 묻어 있다. 때가 묻었다고 존재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니며, 누구나 속사람은 완전하고 아름다움을 기억해야 한다.

4. 사람이 내뱉는 모든 말은 자기 자신을 설명한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남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단지 자기의 경험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에서 타인들은 자기 내면을 자극하는 매개일 뿐, 내면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들은 나의 것이다. 상대방이 누구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든지 모두 자기 안의 것이 투사된 것이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남에게 하는 판단의 말과 욕은 어떤 것이든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을 외부로 표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의 외모에 대해 흉보는 사람은 자기의 외모에 대해 열등감이 강한 사람이다. 남의 어떤 성격적 특성을 싫어하는 것은, 자기 안에 그런 면이 있고 스스로 그 부분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의존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의존성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이기심을 스스로 혐오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인식과 표현이 자기 자신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타인의 언행에 의해 상처받는 일이 줄어든다.

5. 상대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하지만 상처를 받는 경우 : 나의 내면아이(카르마)의 문제이다.

상대의 카르마와 정신적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막상 비난받거나 무례한 일을 당하면 상처받게 될 수 있다. 머리로 아무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려 해도 몸에서 부정적 반응이 온다.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칠어지고 제어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나 자신의 카르마의 정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상처받을 만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비난받은 기억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한다.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를 당한 사람은 배우자의 무관심에 대해 민감하고 상처받는다. 내가 나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야 상처받을 일이 없어진다.

어떤 경우에 심리적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은 그 부분의 오래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명상 등의 방법으로 잠재의식의 정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6. 말다툼은 카르마의 공명이다. 말다툼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실제적인 해결책을 생각해야 한다.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두 사람이 가진 공통의 카르마가 얽히는 것이다. 서로 감정적인 상처를 가진 사람끼리 만나 다시 상처를 주고 받고 미워하고 괴로워한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의 부정적 기억이 수도 없이 반복 재생될 뿐이다.

논쟁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한다. 아무 결과도 없는 일에 소모적인 일을 벌이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좀더 실제적인 일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나의 옳음을 주장하거나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최선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7. 나의  생각, 감정과의 동일시에서 벗어나도록 중심을 잡고 유지한다.

말다툼, 논쟁에 휘말리는 큰 이유가 자기의 생각, 감정을 자기의 존재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의 의견에 대해 반대하면 마치 나의 존재가 부정되고 공격받는다고 느낀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은 내가 만들어낸 입김같은 것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려면 늘 나 자신의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늘 나의 순수한 존재 자체, 참나 안에 머무른다면 타인의 생각,감정이 나의 그것과 다른 것에 대해 개의치 않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지 나 자신은 늘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

출처 : 소요유의 자아성찰  https://m.blog.naver.com/sirius18/2200079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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