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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수월리 아삶공

나이듦의 혜택

 

나에게 늙어감은 참 좋은 것이다.

더 이상 불확실성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 없고

더 이상 좌절과 실패로 인한 쓰라린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나이.

이제 불안해 하며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 하지 않아도 되고

이대로 머물어도 누가 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나이.

구비진 길을 돌아 돌아 왔고.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발가락엔 물집이 잡히고

붉게 부풀어 올라 쓰라릴때도 있었지.

언젠가는 끝 날때가 있으리라고.

짐작은 하였지만.

갸날픈 실날 같은 앞 날을

아스라히 바라보이기만 하던 앞 날들을

막막하게 바라보곤 했었지.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는 동안 세월이 가고 가고 가고 가더니.

어느새 다달았어.

이제는 스르르 손을 놓아도 될때.

녹색 벨벳의 낡아서 삐거덕 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눈을 뜨고 폐부기를 뒤적거리곤 하지.

만화경 같은 세상이 폐부기 안에서 쏟아지고

내가 살아온 것과 같은 길들을 걸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보여.

안스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자기 앞의 생들을 마주 하고 있지.

지난 세월동안 내가 진짜로 바라고 원했던 것이 무엇 이었나.

내가 가려 했고 도달하려 했던 목적지는 어디 였을까.

때로는 졸린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해 보곤 해.

놓치면 안 되고
잊으면 안 되는

나의 목적지는 무엇이고 어디 였을까.

인생의 모든 희. 노. 애. 락.과. 애. 별. 리. 고. 가 시들해 졌으니

이제는 오직 하나의 길만 남아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조용히 이끌어 가네.

70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지 못하고 도저히 얻지 못할 안락함이여.

내가 원한다면
나는 평온할수 있고

내가 원한다면
주위의 시끄러움에 영향 받지 않을수도 있어

세상은 아수라장.

아수라장에 이끌려 들어가지 않을수 있는 것도

다 늙은 덕분이지.

이제까지 살아서 이 맛을 보다니 참 감사한 일이야.

서두를 것이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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