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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수월리 아삶공

산다는 것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싶고 

하루하루 살아 온 날들이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면 아득아득한데 말이다. 


알고도 모를 일. 산다는 것. 


엄마가 90즈음부터는 자꾸 “지업다, 지루하다” 하셨다. 그 와중에도 “다시 태어나면 너거 아버지와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도 하셨다. 


“다시 태어나 다시 만나서 살게 되면 좀 더 좋은 아내이고 싶다”는 거였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한번씩 퍼 붓고 히스테리를 부렸으나 자주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도 오십대 중반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늘 미안해 하셨다. 아버지가 돈을 못 벌고 엄마가 다섯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고 짜증 날때가 많았을까 싶은데 정작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만 남았나 보았다. 


엄마가 스물두살. 아버지가 스물세살때 결혼 했다 했으니 못 살아도 삼십년 이상은 함께 사셨는데도 그리워 하셨다. 마흔살 넘어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세째딸 안나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93세 생일을 앞 둔 어느날 엄마는 집에서 가족들 품에 안겨서 돌아가셨다. 


엄마의 큰 언니 이모님은 100살을 넘기고 어느날 점심 잡숫고 달달구리 커피 한잔 마시고 잠깐 잠든 사이 곧장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모는 하도 건강 하니까 “이래 가지고 죽을수나 있을랑가? 모르겠다“ 맨날 걱정 하셨다. 돌아가실때 까지 깨끗하고 건강하셨다. 이모님이 돌아 가신 뒤 2년후에 엄마도 뒤따라 가셨다. 


이모님은 엄마보다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더 정갈 하셨다. 엄마도 그런 편이었지만 맏언니를 따라 잡지는 못 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맞는가 보았다. 이모님은 좀체 화 내지 않으셨고 음식도 굉장히 소식 이셨다. 엄마도 식탐이 없었고 낙천적인 성격 이었다. 기억해 보면 내 나이때 엄마나 이모님은 지금의 나 보다 더 건강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엄마나 이모님 보다는 덜 고생 했고 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명상도 하고 사니까 그분들 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다. ‘올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때 꼭 순서대로 가는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드시 꼭 그런 것 만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엄마나 이모님 사신걸 생각하면 얼추 100살까지는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는 분들 중에 요가명상수련을 잘 하신 분들은 90세에서 100살 넘어까지‘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사신 분들이 많다. 90세까지 봉사 할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나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깊어진다. 그때까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전제 한다면 말이다. 지난 70년 동안 받은 혜택과 은총을 회향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엄마가 80이 되었을때 “ 내가 이제까지는 자식들과 나 자신 만을 위해 살아 왔는데 이제부터는 좀 봉사도 하고 살아야겠다 “ 문득 하신 말씀이 떠 오른다. 


노인이 할수 있는 봉사란 어떤 것일까 ? 


나의 스승은 

“너 자신에게 봉사 하라. 너 자신을 잘 돌보아라. 평화를 잃지 마라. 마음으로의 봉사. 좋은 염원을 가지거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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