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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만약에

내가 출가를 했고 출가 전의 인연으로 얽혀 있던 관계들로부터 책임과 의무가 매듭 지어졌다면

나는 자유의 길을 향해 가볍게 떠날수 있고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수 있다.

굳이 출가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 여기서 출가란 마음의 출가가 아닌 물리적 출가를 말함 ) 결혼을 하지 않은 몸이고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부모 형제 관계에서 어느정도 카르마의 부채가 청산 되었다면 ( 서로 미워하지 않고 무관심과 초연함을 가질수 있다면 ) 마음으로 출가할수 있고 어느정도 자유롭게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수 있다.

내 자신이 세속으로부터 멀어져서 자발적 가난과 소박한 삶을 살며 그저 밭에서 키운 푸성귀 정도로 연명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고독하게 살아갈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면 많은 부분에서 거쳐야 할 카르마가 커진다.

일단은 내 육신의 가족 부모 형제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 부모 형제로 부터 얽힌 모든 관계에서 부채 청산이 명확하게 끝이 나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낳은 자식이 성장하여 하나의 인간 존재로 버티어 살 자립을 하고 서로 부양할 의무와 책임이 끝났을때 라야 비로소 출가자로서 자유와 가벼움을 누릴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나 자신도 자식에게 심리적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하고 내 육신이 건강할 것이 전제 된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이렇게 실제적인 상황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바램이고 미완의 인연일 뿐이다.

인도에서 바이샤 이상의 가문에서는 대부분 60 살이 될때까지는 세속의 삶을 살면서 자기자신과 가족에게 헌신한다.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고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양육에 힘 쓴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 60이 되면 어느정도 세속의 성취를 이루게 되고 가족으로부터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되어 남은 여생을 신에게 바치며 명상의 길을 가게 된다.

이것은 평범한 인도 사람들의 인생 사이클 이다.

내가 이러한 사이클을 이해 못했던 젊은 날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여러번 길을 떠났다가 엄청나게 카르마의 후폭풍을 치루면서 결국 더 커진 숙제를 해결 하느라 더 긴 시간이 걸렸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인생의 무대는 진실하고 진리의 법칙에 따라 전개 된다.

카르마의 법칙은 인과응보 이고 사필귀정 이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안에 있다.

이 세상 어느 존재도 이 법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예수나 부처도 그러했고 신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법칙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 편법이 허용 되는 신의 세계를 어떻게 믿을수 있겠는가.

세상은 공정하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겠지.

만약에 내가 무엇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나의 길을 가되 원하는 그것 외의 모든 관심을 거두어 들여서 오로지 그것에 집중 해야 한다.

몽중일여가 되어야 한다고 옛 어른들은 말한다.

죽을때까지 그냥 하나의 길.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다보면 비로소 그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죽음이고 시작이며 보다 진화된 다음 생으로의 출발점 이리라.

목적은 단 하나 잘 죽는 것에 있음을.

자유로움이란 질서. 조화. 균형. 깨끗함. 투명함. 가벼움 이다.

나 혼자서 자유에 취한다고 해서 진짜 자유로운가.

때로는 망상이고 때로는 허세 이며 기만이기도 하다.

아. 아.

나는 진짜로 자유롭고 싶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을만큼.

과연 그럴수 있을까 ?

- 문성희 선생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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