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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삼매에 든 수행자는

< 지금 현재 건강할 때 열심히 수행해서, 사띠와 지혜의 힘이 좋아지도록 해 놓아야 합니다. 임종 시 육신은 죽어도 지혜는 죽지 않습니다. 잘 때 사띠를 둘 수 없는 사람은, 죽을 때 사띠를 두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_죽음과 잠 그리고 수행_🌷

[수행자]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임종하는 순간에 수행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띠(와 지혜)를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야도*] 죽음이 다가왔을 때, 특별히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현재 건강할 때 열심히 수행해서, 사띠와 지혜의 힘이 좋아지도록 해 놓아야 합니다. 임종 시 육신은 죽어도 지혜는 죽지 않습니다.🌿

[註*] 20안거 이상의 수행을 거치고 수행승(비구)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스승비구를 ‘사야도'라 칭합니다.

죽는 순간에 수행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혜에 따라서 어떻게 하라고 조언해 주어야 합니다. 수행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한 번도 수행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수행하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경우 임종을 맞이한 사람 옆에서 단지 좋은 말을 해 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수행하는 것은 마음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수행에 대해 아무것도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습니다. 단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상태가 좋아지도록, 좋은 마음이 되게끔 좋은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지게 할 수 있는 대상을 보여주고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라는 것은 대상에 따라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수행자] 수행을 10년 이상 해서, 어느 정도 능숙한 수행자가 죽을 때는 어떻게 해주어야 합니까?

[스승비구] 수행을 오래한 사람에게는 수행에 대한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10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수행했고, 수행을 바르게 했다면 사실은 아무 말도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위빠사나** 수행을 바르게 할 줄 안다면 뭔가를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註**] 부처님은 '사마타(선정 삼매를 닦는 수행) 후에 신(身)·수(受)·심(心)·법(法)을 깊이 관찰(사띠하여 이어 봄)하여 깊은 지혜(빤냐)를 닦는 수행을 '위빠사나'라고 명칭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아나빠나사띠(호흡을 사띠하는 수행)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에도 그것만 하시게 말해 드렸습니다. 나의 스승께서 돌아가실 때 나는 아무말도 없이 옆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나는 스승께서 수행을 바르게 해왔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행자] 10년 정도 수행한 수행자가 죽을 때도 Relax 음악(명상 음악) 같은 것을 들려주면 효과가 있습니까?

[스승비구] 그 사람 상태에 따라서 해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수행했고, 어느 정도 이해를 했는지에 따라서 해주어야 합니다.

25년 동안 수행한 사람이 죽을 때 수행할 수 없다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 사람은 집중해서 수행했기 때문에, 죽을 때는 (너무 아프고 해서) 집중할 수 없으니까 막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낸 것입니다. 그 사람이 힘이 있을 때는, 아플 때 아픈 것을 집중해서 봄으로써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집중해서 볼 힘이 없으니까, 아프다고 소리치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리 아픈 것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해서 깊은 지혜를 계발해 두면, 죽을 때에도 그 지혜가 작용하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 죽는 과정과 잠드는 과정이 같습니까?

[스승비구] 육체(물질작용)의 진행과정은 다르지만 마음(정신작용)의 진행과정은 똑같습니다.

[수행자] 그러면 현재 잠드는 과정이 관찰이 안 되는 사람은 죽을 때도 그냥 (수행을 못하고) 죽는 것입니까?

[스승비구] 그때는 원인(직접조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고쳐주거나 할 수 없습니다. 결과만 알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을 때에 낄레사(kilesa***; 번뇌, 오염원)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그렇게 됩니다. 깨어 있는 그 마음에 지혜가 있으면, 결과도 지혜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잘 때 사띠를 둘 수 없는 사람은 죽을 때 사띠를 두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사띠가 있으면 됩니다. 나의 스승께서는 나에게 ‘잠들 때 어떤 마음으로 자느냐? 깨어날 때 어떤 마음으로 깨어나느냐?’하고 자주 물으셨습니다. 잠들 때 마지막 마음을 기억하게 되면 아침에 깨는 그 순간 그 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것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의) 가속도가 있을 때 될 수 있습니다.

[註***] kilesa : 번뇌(烦恼), 오염(污染), 타락(堕落), 불순(不纯), 격정(激情), 욕념(欲念), 탐욕(贪欲; 갈망, 욕심), 분노(憤怒; 화, 혐오, 증오)。

[출처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10907179930875&set=a.177408933280700&type=3&theater&ifg=1](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10907179930875&set=a.177408933280700&type=3&theater&ifg=1) (일부 수정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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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쌍윳따 니까야>에는 부처님의 하루 일과가 이렇게 묘사돼 있습니다.

“새벽 4시 경에 일어나셔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한 시간 정도 멸진정에 드신 후…. 하루 두 번씩 대자비삼매경에 들어 세상을 살피시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시거나 찾아온 사람들과 제자들을 만나 종일 법을 전하시고…. 잠은 사띠하시며 깊은 삼매 상태에서 한 시간 정도 주무시고….”

[출처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428108487501712&set=a.1844617145850852&type=3&theater](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428108487501712&set=a.1844617145850852&type=3&theater)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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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우리가 숙면을 취할 때 경험하는 깊은 잠의 상태와 깊은 삼매 상태는 매우 유사합니다.

깊은 잠의 상태와 깊은 삼매 상태에 있을 때 그는 자아自我(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이 없습니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시간이 흐르는지, 여기가 어딘지 알지 못합니다. 그 세계에는 '이름(분별; 철수인지 영희인지 분별)'이 없습니다. 나의 이름과 형상, 개체성, 아我(자아)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은 잠의 상태와 삼매 상태는 노자老子가 말하는 (아상我相이 개입된 행위, 판단, 분별이 없는) 무위無爲의 세계인 셈입니다. 그런 판단과 분별(구분, 차별)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깊은 잠의 상태와 깊은 삼매 상태는 우리에게 커다란 휴식, 근원적인 휴식을 줍니다.

깊은 잠의 상태와 깊은 삼매 상태는 모두 비이원성의 세계, 무분별의 세계, 무위無爲(아상我相이 개입된 행위爲가 없음無)의 세계, 무아無我의 세계이며, 시간이 멈춘 세계, 시공(시간-공간)을 벗어난 세계입니다.

깊은 잠의 상태와 깊은 삼매 상태에서는 모든 외부감각(오감각)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생각, 판단, 분별 따위의 모든 ‘조작심(人爲), doer(능동적인 정신작용)’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삼매 상태가 깊은 잠의 상태와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사띠, (생각, 판단, 분별 없는 수동적인) 알아차림, knower(수동적으로 아는 정신작용)'만은 알아차리는 마음의 초점이 완전히 고요하게 하나로 모여진 상태(심일경성心一境性)로 완벽하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사띠만은 잠들지 않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고요하면서도 또렷하게'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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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_성성적적하게 깨어있는 수행자. 세상이 모두 잠들어도 삼매에 든 수행자는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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