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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살며 사랑하며

마지막 길

마지막 길, 가족과 집에서 지내다 떠나고 싶은데…

세상을 하직할 때 평생을 살던 집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눈을 감았다. 이부자리·장롱·가족 사진 등 아끼던 물품이나 추억을 기억하면서…. 10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보기 드문 장면이 됐다. 병원의 차가운 병상에서 생을 마감한다. 어떤 이는 면회도 제한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항생제 주사 등 연명장치를 주렁주렁 달기도 한다. 죽음이 돌봄이 아니라 의료의 한 과정으로 전락했다. 

 

 

의료기 스위치 끄며 죽음 맞는 시대…임종 풍속도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위암으로 사망한 박모(57)씨는 마지막 7주를 울산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약성 진통제에다 고칼로리 영양제와 수액을 맞는 게 전부였다. 병원 측에서 “집으로 가도 좋다”고 했지만 박씨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서는 통증을 관리하기 어렵고 응급상황에 대처할 길이 없어서다. 박씨도, 아내(54)도 집에서 맞는 임종이 두려웠다. 결국 박씨는 기계 소리, 다른 환자의 신음소리에 휩싸여 생을 마감했다. 임종한 사람은 그의 아내뿐 20대 두 아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자식들에게 유언도 못했다. 박씨는 입원 내내 “고구마 캘 때가 됐는데…”라고 했다. 집 근처 공터에 심은 고구마를 걱정했지만 근처에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자택 사망, 병원과 역전 … 20%뿐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죽음의 대량생산’을 비판했다. 주인공인 무명 시인 말테가 당시 세태를 그렇게 표현했다. 말테는 아픈 사람들이 병원으로 모여들어 똑같이 침대 위에서 죽는다고 탄식했다.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려는 소망은 점점 희귀해진다”고.

 

말테의 이 우울함은 100여년 전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한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2011년 사망자 25만7396명 가운데 17만6324명(68.5%)이 병원에서 숨졌다. 병원 이송 중 숨진 사람도 8076명이다. 집에서 숨진 사람은 5만1079명(19.8%)에 불과하다. 1991년에는 죽음의 장소가 대부분 집(74.8%)이었고 병원(15.3%)은 특별한 경우였다. 병원 사망이 늘더니 2003년에는 가정 사망을 추월했다. 2011년에는 집-병원 사망 비율이 20년 전에 비해 거의 반대가 됐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대부분의 과정이 병원으로 이동했다. 집에서 임종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의료장비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의료기술 향상이다. 가망이 없는 환자도 심폐소생술, 강력 항생제 등으로 끝까지 치료하려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장례 비즈니스’가 커지기 시작했다. 96년 335곳이던 장례식장이 2011년 1001곳으로 늘고 대형화·고급화했다. 농어촌에서 숨져도 장례식장으로 간다.

 

80년 39만1000호(전체 주택의 4.9%)에 불과하던 아파트가 2010년엔 816만9000호(47.1%)로 20배 늘었다. 연세대 의대 이일학(의료법윤리학) 교수는 “아파트에서는 장례를 치르기가 마땅치 않고 관을 옮기기도 곤란하다. 장례식장으로 갈 게 뻔한데 가정 임종을 고집할 이유가 없게 됐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다가도 임종 상황이 닥치면 병원으로 가서 숨진다.

 

아파트 생활 늘면서 장례 엄두 못 내 

 

연세대 이 교수는 “병원에 부속 장례식장이 있는 데다 사망진단 등의 절차가 가정 사망보다 훨씬 수월하다. 가족들이 임종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전시 이모(75)씨는 뇌졸중으로 2년간 집에서 누워 지내다 호흡곤란 증세가 와서 119 구급차로 응급실로 실려가 폐렴 치료를 받다가 바로 세상을 떴다.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숨이 넘어갈 듯한 상황에서 병원으로 실려오는 환자의 20~30%가 ‘죽으러 오는 환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손영순(까리따스) 수녀는 “가정에서 편히 임종하려면 환자·가족 교육, 통증 관리 등의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며 “죽음의 과정에 접어들면 환자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미리 교육하면 당황해서 병원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걸 가능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제도가 가정방문 호스피스 서비스다. 폐암 환자 박상복씨는 2년6개월간 투병하다 지난해 10월 54세로 집에서 편하게 세상을 떴다. 까리따스 수녀가 운영하는 모현호스피스에서 집을 방문해 진통제를 놔주고 상태를 살폈다. 대화를 하며 분노와 절망을 다스리게 도왔다. 가족과 추억을 쌓으라는 조언에 따라 박씨는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산이며 바다로 떠났다. 부인 손정자(55)씨는 “남편은 집에서 지내면서 아프기 전보다 오히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삶을 정리했다”며 “떠나기 전 ‘행복해, 고마웠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이들 죽음 과정 배울 기회도 잃어

 

사망 장소가 바뀌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예전엔 죽음은 일상의 영역이었다. 가족이 안방에서 임종을 지켰다. 마당에서 장례를 치렀고, 동네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장지(葬地)로 갔다. 이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봤다.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예전에는 아이들이 위독한 어른을 지켜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죽음의 과정을 알게 됐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숨지는 부모와 단절돼 있다”며 “지금은 죽음을 터부시한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병원 허 교수는 “임종 전에 마지막을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며 가족·친지·친구·이웃 등과 맺힌 것을 풀고 삶을 정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병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며 “영국처럼 지역 단위 호스피스와 의사의 왕진 등이 활성화되면 가정 임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55곳(881병상)의 호스피스가 있지만 제대로 된 데는 많지 않다. 말기환자 중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11.9%(2011년)에 불과하다. 영국은 40%가 넘는다.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1153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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