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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삶의 나침반

내 앞의 생

 




2019. 2. 11. 지난 해 오늘 포스팅. 지금도 새로와서. 뭉클 ~

내 손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수 있고

내 손으로 내가 입을 옷과 덮을 이불을 만들수 있고

내가 스스로 살아 갈 만큼의 삶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적당히 가까우며, 적당히 따뜻함을 나눌 좋은 벗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을만큼 있고

땅을 일구어서 내가 먹을 채소들을 심고 가꾼 경험도 있으니

내가 진정 원할때에는 그리 살수도 있다

웬만한 집안 안팎을 가꾸는 노동의 방법도 알고 있다

60이 훨씬 넘었을때도 

외바퀴 수레 굴리는 요령과 내 키보다도 훨씬 크고 내 몸의 두배 이상 되는 나무들을 등짐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고 노동으로 몸이 익은 일꾼들이 놀랄 정도 였으니까.

낫을 휘둘러 풀을 베었고 , 제법 커다란 돌멩이들을 굴려서 내 맘에 들도록 정원을 만들기도 한다

혼자서 수십개의 커다란 항아리를 굴리고 굴려서 자리를 옮기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전기톱은 다루지 못해도 손 톱으로 자잔한 가지를 잘라서 불 붙이기 쉬운 땔감으로 차곡차곡 쌓을수도 있고 어느정도의 지게질도 할 줄 안다

마른 나뭇가지와 장작을 알맞게 쌓아서 멋지게 불을 일구는 기술은 나의 자랑거리 이기도 하다 

나는 불을 일구어서 타오르는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살 집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도 안다

이 모든 일을 남자 없이도 할수 있었다.

젊을때 나는 지나치게 여성적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는지 파마끼 없는 숏커트에 바지나 몸에 딱 붙는 H라인의 타이트스커트에 아무 장식이 없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검정색 구두만 신었다. 

어쩌다 장신구를 하는 경우에도 달랑거리지 않는 귀걸이나 굵직한 팔찌 외에는 착용하지 않았다

음식을 만지는 직업을 가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화장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랬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내 안의 여성성을 한껏 즐기기로 마음 먹는다.

열흘 넘도록 앓고 난 뒤 

몸이 가벼워지고 개운해진 것을 느끼게 되어

오후 햇살이 사라지기 전의 연남동 경의선 숲길~숲이라고 하기엔 보잘것 없는 키만 커다랗고 무성한 잎을 가지지 못한 듬성듬성한 나무 사이로 2킬로 정도 좁다란 산책로지만 내가 연희동에 살면서 걸을수 있는 적당한 산책로 이기에 자주 찾는 걷기 코스다

아직 무릎이나 어깨나 허리가 아파본 적이 없는 나는 무릎을 쭉~쭉~뻗으며 길을 걷다가

이렇게 걷기와 요리와 바느질을 할수 있는 내가 다복다복 쌓아온 삶의 시간들이 생각나서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생활기술을 잘 습득해 왔으니 이제부터 잘 사는건 문제도 아니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나는 기도하는 방법도 잘 안다

사람들과 떨어져서 홀로 있고 싶을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채울지

그리 어렵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 축복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

나는 어렴풋하게 바라기는 했어도 

진짜로 그렇게 살아갈 날이 있으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어제까지는 감기 몸살 기운이 좀 남아 있었는데

올해 들어 첫 수업을 하고 나니

뭔가 깨끗해진 느낌.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좋고 나쁘고 슬프고 기쁘고 고통스럽고 환희스러운 수 많은 사건 사고와 시간을 지나 왔다

앞으로도 그러 하겠지만

인생이 바로 그러한 것 이더라

젊은 이들아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거라

가슴을 열고 

온 힘을 다하여 

내 앞의 생을 직면하고 받아 들이면서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익어가면서 성숙 하리니 ~


- 문성희 선생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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