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없이도 생존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인생의 여러가지 불안증과 두려움이 사라진다.
사하라의 성자 까를르 까레또 수사의 ‘사막에서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가슴에 품고 살던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매일 밤 별을 헤는 사막에서의 밤을 꿈꾸었다. 그렇게도 꿈꾸던 사하라를 가 보지 못한채 어떤 인연으로 라다크를 가게 되면서 사하라에 대한 나의 염원은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아직도 가끔 몽골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간절하진 않다.
간절함은 그 일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간절함은 결국 나를 히말라야 오지마을 라다크를 가게 했다. 겹겹. 첩첩. 차곡차곡. 중첩된 잔스카르와 히말라야산맥을 넘으며 희박한 산소로도 숨쉴 수 있었던 나는 비로소 문명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훌훌 날 수 있었다. 야생적인 삶의 조건들은 생명을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게 함으로서 삶의 에너지를 퍼 올린다.
오늘 새벽에 밤을 까면서 뜬금없이 맥락 없이 훅~ 들어 온 회상과 함께 야생에서의 생존법을 알게 되면 자기 앞의 생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린 딸을 데리고 철마산 상곡마을로 갔을 때, 나에게 절실했던 것은 야생에서 살아남기였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생존하는 법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문명이란 지긋지긋한 삶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었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엄청난 수레바퀴 안에 갇힌 다람쥐 같은 신세를 탈피해야만 살 것 같았다.
문명은 나의 숨구멍을 틀어쥐고 시시각각 조이는듯한 위협을 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소한의 생존 보따리만 꾸려서 황급히 도시를 탈출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 해를 야생으로 살면서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어느 정도 축적하였고, 어떤 연유로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어른인 나는 그 힘을 가지고 도시의 문명에 휘둘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아이는 문명. 야생. 또 다시 문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혼란을 겪으면서 차츰 나름의 생존 방법을 터득해갔다.
삶이란 철학이 아니라 실존이다. 숨 쉬기를 멈추게 되면 살아있다고 할 수 없으니까. 모든 것이 결국은 살아있음의 문제다. 살아감. 살아있음. 살아짐. 그 이상 더 큰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가르쳐 달라. 살아있는 것 만큼 엄중한 일이 달리 있으면 말해 달라. 살아있음 이란, 삶이란 이념이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가치도 아니며 숨 쉬는 것, 오직 그 하나다.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잘 훈련해야 잘 살아 남을 수 있다. 숨 쉬는 것 외에, 배를 채우는 것 외에 그 밖의 모든 것이 ‘사치롭다‘라고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이 거대한 문명의 수레바퀴가 정신없이 요란스레 돌아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수시로. 이 모든것이 사치스러운 허상이며 백주에 꾸는 꿈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화들짝 찾아 온다.
어제와 오늘 아침. 나는 뜨개질을 하다가 밤껍질을 벗기는 일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밤껍질을 벗겨 두라는 딸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제는 내 딸이 나를 먹여 살리므로 나는 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예전에 내가 명령할 때, 자신을 먹여 살리는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어야 했던 딸처럼 ~^*^ 곳간 열쇠를 꿰찬 놈이 제일 세다.
이 밤은 *보늬를 잘 다듬어서 간장과 향신료와 사탕수수를 넣고 졸여서 단팥죽 수업에서 맛보일 것이다.
- 문성희 선생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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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늬( 本衣 ) : 밤·도토리 따위의 가장 안쪽에 있는 얇은 껍질. 내피(內皮).
"밤의 ∼를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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