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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사성제(四聖諦)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근원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이다."

_초전법륜 경(S56:11) Dhammacakkapavattana-sutta_ 🌷

3.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사띠,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

5.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다섯 무더기[五取蘊] 자체가 괴로움이다.” 🌿

6.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근원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

7.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집착 없음, 벗어남, 해탈, 열반이다.” 🌿

8.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사띠[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

9.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0.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근원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1.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었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2.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法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3.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하였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14.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지(知)와 견(見)이 일어났다.”

15.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비구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는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고 이해하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

_중략(中略)_

20.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어를 읊으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구나(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구나.”라고.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시 꼰단냐(aññāsi koṇḍañña)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98107964544130&set=a.177408933280700&type=3&theater&ifg=1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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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냐시 꼰단냐(aññāsi koṇḍañña) 존자는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인 오빅쿠 가운데 한 분이며 가장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 분이다. 그래서 안냐시Aññāsi라고 불리게 되었다. 6차 결집 본에서는 안냐시로 나타나는 반면에 PTS본에서는 안냐Aññā(궁극의 지혜)로 나타나고 있다.

• aññā : 완전한 앎. 아라한의 지혜
• aññāsi는 jānāti로서 알다, 알아채다, 발견하다의 뜻이다

꼰단냐 존자는 "ehi, Bhikkhu(오라, 빅쿠여)"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첫 번째 빅쿠가 된 분이어서,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에서 부처님께서는 존자를 '구참 빅쿠 제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다.

Dhammacakkappavattanasutta(초전법륜경, SN56.11)에 의하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꼰단냐 존자에게 "일어나는 것은 모두 소멸하는 법이다(yaṃ kiñci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nirodhadhamman)라는 법안(dhammacakkhu)이 생겼고, 부처님께서는 그 기쁨을 "꼰단냐는 알았다.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라며 두 번이나 외치셨다.

이후 안냐시 꼰단냐 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두 번째 법문인 'Anattalakkhaṇasutta 무아의 특징 경(無我相經, SN22.59)'을 들으며 집중 수행을 함으로써 비로소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라고 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였음이 기록에 나타난다.(Vin.i.13~14).

이처럼 꼰단냐 존자는 부처님의 최초 법문(초전법륜경, SN56.11)을 듣고 그 즉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것이 아니므로 6차결집본의 '안냐시'라는 표현이 PTS본 보다 더 정확한 것이다.

꼰단냐 존자는 까삘라왓투 근처에 있는 도나왓투라는 곳의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고따마 싯닷타 태자가 태어났을 때 관상을 보기 위해서 온 8명의 바라문 가운데 한 명으로 8명 중 가장 젊었다고 한다. 그는 고따마 태자가 깨달은 분이 될 것을 예견하고 태자가 출가하기를 기다렸다가 석가족의 다른 네 명과 함께 출가하였다(꼰단냐 존자가 이 다섯 명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고따마 싯닷타 태자와 함께 출가한 이들을 오빅쿠(五比丘, pañcavaggiyā bhikkhū)라고 일컫고 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5362888&logNo=22138369391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fbclid=IwAR2oMuTZ98UVaTXwrq6ZqMVpBbcLYQeaWxev5CyOYnhZ-9ooXAmgyKaLo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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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_오빅쿠(五比丘, pañcavaggiyā bhikkhū)에게 초전법륜을 설하시는 부처님 (우하단에 머리가 허연 분이 꼰단냐 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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