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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꽃 핀 가지- 헤르만 헤세


<아침의 시>

꽃 핀 가지가 바람결에
쉼 없이 흔들린다.
내 마음은 아이처럼
끊임없이 흔들린다.
맑은 날과 흐린 날 사이에서
욕망과 체념 사이에서.

꽃잎이 모두 바람에 흩어지고
가지에 열매가 열릴 때까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가라앉고
마침내 평온함을 찾아
인생의 소란스러운 유희도 즐거웠으며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때까지.

- 헤르만 헤세 <꽃 핀 가지> (류시화 옮김)


서정적이고 동화 같은 문체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주는 헤르만 헤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스스로 말했듯이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소년시절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신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자살을 시도했고, 그 후에 들어간 김나지움에서도 퇴학당했다. <간추린 이력서>에서 헤세는 썼다.
"나는 어떤 훈육도 오래 견디지 못했다. 나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어른들의 모든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가는 곳마다 도주나 퇴학이 잇따랐다."

작가가 되어서는 그의 작품을 비난하는 언론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극단적 애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매국노로 취급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나치의 탄압으로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 금지당했다.

결혼생활에도 맞지 않았다. 아홉 살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전원생활을 추구한 헤세와 다르게 명망 높은 가문의 딸 마리아는 그런 생활에 공감하지 못했다. 빵 한 조각,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를 가방에 넣으면 떠날 준비가 끝난다고 말하는 헤세는 그녀가 원하는 남편이 아니었다. 헤세는 집에 있을 때조차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나 부인의 다정함조차 집필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겼다. 괴벽과 변덕, 두통과 정신적인 열병을 앓고 있던 그에게 가족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헤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갑자기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나곤 했으며, 불안정한 결혼생활과 뇌수막염에 걸린 아들의 병간호로 마리아는 우울증이 깊어졌다. 스위스의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헤세도 우울증에 빠져 1년 반 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칼 융의 제자에게 72회나 정신분석 상담을 받아야 했다.

결국 마리아의 정신착란 증세가 깊어진 상태에서 두 사람은 이혼을 한다. 스무 살 어린 두 번째 부인인 성악가 루트 벵거와는 더 불행했다. 석 달도 같이 살지 않아서 "루트와 함께 있으면 듣기 싫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괴로웠다."라고 말할 만큼 관계가 악화되었다. 헤세는 자신이 스위스 바덴의 요양원에서 지낸 생활을 기록한 자전적 수기 <요양객>을 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루트는 이 수기를 헤세의 정신병력 증거로 법원에 제출해 이혼 판결을 받아 냈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심리적 안식을 되찾은 것은 십 대 시절 헤세의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읽고 편지를 보냈던 미술사학자 니논 돌빈과 결혼한 이후의 일이다. 니논의 애정과 보살핌 속에서 헤세는 노년의 나이에도 대작 <유리알 유희>를 썼으며,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삶은 유리알 유희와 같다. 꽃 핀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 우리의 마음도 쉼 없이 흔들린다. 생의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마법과 현실 사이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유희를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음이 평화를 찾고 이렇게 말하게 되리라. 삶의 모든 소란스러웠던 유희들이 즐거웠노라고. 어느 것도 헛되지 않았노라고.


art credit_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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