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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여행에서 만나는 것들


지구 행성에 여행을 온 것이라 믿었다. 민들레 홀씨가 미약한 공기의 흐름에도 멀리 날아가듯, 언제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다. 30년 동안 매년 인도를 여행하다 보니 인도인들보다 더 많은 장소를 가 본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부임하는 인도인 외교관들도 내가 방문한 도시와 마을들에 대해 묻곤 한다. 북인도 우타르칸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레와트 씨는 자신의 고향인 가르왈 히말라야 지역에서의 여행 경험을 들려주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끌림은 누구에게나 강렬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를 질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와 만나 생의 교감을 나눴는가는 잘 묻지 않는다. 내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장소들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도.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갠지스강이 발원하는 고산지대에도, 어른거리는 흰 빛뿐인 라자스탄 사막에도,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외길 중턱에 기적처럼 나타나는 찻집에도. 어디나 인간의 삶이 있고, 따뜻한 불길이 타는 부엌이 있고, 자선과 배움이 있었다. 짧은 만남도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인도와 네팔의 웬만한 장소들에 가면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 갈 필요도 없이 나를 반겨 주는 친구들이 있다.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다. 그들은 어느덧 인생의 동지들이다. 우리는 음식과 잠자리뿐 아니라 삶의 크고 작은 애환과 기쁨을 나눈다. 모든 불행의 해결은 신에게 맡기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그들의 인내심, 굳건한 삶의 의지, 그리고 친절함에 놀란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저토록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을까?

델리에 사는 한 타블라 연주가의 아내는 자신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나에게 "아비 압 하마레 파리와르 케 헤(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며 두 딸과 함께 쉴 새 없이 온갖 인도 음식을 내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기어코 자기 집에서 나를 묵게 했다. 자신들은 딸들 방에서 함께 자며.

처음 라다크 지역에 갔을 때는 레의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내가 말을 건넬 수도 없이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녀가 꽃을 좋아해 매일 화단을 가꾸는 것을 보고 화초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대화 중에 그녀는 바로 앞집에 사는 시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결국 달리아꽃 만발한 화단 한가운데에서 투숙객이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을 위로하며 껴안아 주는 풍경이 벌어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 십 년 넘도록 나는 그 게스트하우스의 가족이자 무료 투숙객으로 여름마다 환영받아 왔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의 풍경 사진 옆에, 혹은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 옆에, 당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다. 사실 장소는 상징에 불과하다. 그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떠올리게 하는 상징 말이다. 당신이 낙천주의자든 염세주의자든, 삶은 인간과의 경이로운 만남들이 정거장처럼 다가오는 긴 여정이 아닐까? 장소들과 함께 당신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엽서 사진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바닷가를 걷고 있던 한 청년이 해변에서 열 개가 넘는 작은 진흙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마치 누군가가 진흙 구슬을 만들어 놀다가 버려두고 간 듯 햇빛에 단단하게 구워져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주워든 청년은 해변을 걸어가며 재미 삼아 하나씩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진흙 덩어리는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 파도 속으로 가라앉았다. 거의 다 던졌을 때쯤 실수로 손에서 떨어뜨린 진흙 구슬 하나가 돌에 부딪히며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놀랍게도 진흙 덩어리 안에 흰 진주 보석이 박혀 있었다. 흥분한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한 개의 진흙 덩어리도 깨 보았다. 그 안에도 역시 눈부신 광채를 지닌 진주 보석이 들어 있었다. 이미 열 개 남짓한 보석은 바다 멀리 던져 버린 후였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삶의 해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우리는 대개 인간을 겉모습으로만 보고 진흙으로 된 육체 속의 보석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멀리 밀어낸다. 겉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을 보석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안의 무엇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삶의 예술은 타인 안의 보석을 발견하는 일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러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진흙 덩어리들을 멀리 던져 버렸는가가 아니라, 사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보석을 발견했는가일 것이다.


art credit_Amitesh Chandra, Lada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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