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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두 마리 새


두 마리 새가 한 나무에 앉아 있다. 똑같은 깃에 똑같이 생겼지만, 한 마리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새이고 다른 한 마리는 불멸의 새이다. 죽을 운명의 새는 아래쪽 가지에 앉아 있고, 불멸의 새는 맨 위쪽 가지에 앉아 있다.

아래쪽 새는 이 가지 저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쉼없이 따 먹는다. 열매가 쓰면 불행해하고, 달면 행복해한다. 늘 부족함을 느껴 더 많은 열매를 원하며 다른 새들이 먼저 따 먹지 않을까 초조해한다. 하지만 위쪽 가지의 새는 먹지 않고 아래쪽 새를 바라볼 뿐이다. 이 새는 존재 그 자체로 행복할 뿐 열매가 달든 쓰든 관심이 없다. 좋고 나쁨, 행복과 불행에 흔들리지 않으며 완전한 고요 속에 앉아 있다.

쓰디쓴 열매를 맛보고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래쪽 새는 위쪽 가지에 앉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새를 올려다본다. '저 새는 뭐지?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왜 저토록 초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 새를 닮고 싶은 마음에 위쪽 가지를 향해 한 단계 올라간다. 그러나 이내 유혹에 못 이겨 또 다른 열매를 따 먹는다. 열매가 쓰면 몹시 괴로워하며 위쪽의 평온한 새를 올려다보고는 다시 한 단계 올라간다. 그렇지만 또 금방 잊고 습관처럼 열매에 탐닉한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한 끝에 첫 번째 새는 마침내 두 번째 새가 앉아 있는 맨 위쪽 가지에 이른다. 그 순간 자신이 본래 그 두 번째 새였음을 깨닫는다. 자신들이 서로 다른 두 마리의 새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새였음을. 그리고 아래쪽 가지에서 열매들을 따 먹으며 기뻐하고 슬퍼하던 일들이 다 환영이었음을 자각한다. 고대 철학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우화이다.

이 가지 저 가지 분주히 움직이는 새는 나의 마음이고, 위쪽 가지에 고요히 앉아 있는 새는 나의 참 자아이다. 열매를 탐닉하는 새는 에고이며, 그것을 초연히 바라보는 새는 참나이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내 육체이다. 이 두 마리 새처럼 우리는 두 가지 차원에서 살아간다. 한 나는 상대적인 세계에서 살고, 또 다른 나는 절대적인 세계에서 산다.

세상 차원의 새는 이 가지 저 가지 옮겨다니며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고통의 열매를 맛보는 순간 그 기대가 헛된 것임을 깨닫고 위쪽 가지에 앉은 새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첫 번째 새가 두 번째 새를 알아보는 순간,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된다.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위쪽 가지의 새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앉아 있다. 그 새는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있어 온 초월적 자아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자아는 서서히 가까워져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 무한한 자아가 곧 자신이었음을 깨달아 완전한 평화에 이른다고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단, 그 자아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동안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교육 지도자 파커 J. 파머는 두 친구의 비유를 이야기한다. 긴 세월 동안 한 친구가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다. 한 블록쯤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 그 친구는 내 관심을 끌기 위해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른다.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진실을 말해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듣는 것이 두렵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자만심 때문에 그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걸어간다.

친구는 더 가까이 와서 더 크게 내 이름을 부르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내 관심을 돌리는 데 실패하자 내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나한테 심리적 고통이라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나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시도로 나를 자기한테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나는 친구에게로 돌아서서 묻는다.
"왜 나를 부르는 거야? 원하는 게 뭐야?"

그 돌아봄이 자아 탐구의 첫걸음이다. 철학서와 경전들은 뒤에서 부르는 그 친구를 '참 자아'라고 부른다. 이 참 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있어 왔다. 이 세상에서의 쓴맛과 불행을 맛보는 순간 우리는 문득 방향을 돌려 참 자아를 찾아나선다. 오래된 습관이 금방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감각 세계에서 또다시 길을 잃지만, 반복되는 고통과 슬픔은 우리를 내면 세계로 이끌어 마침내 참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다. 그 나와 가까워져야 한다.


art credit_Yuko Hos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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