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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지식 창고

백수에 대한 예찬

바이런 케이티는 네 가지 질문을 통한 작업에서 우리 대부분이 거의 의심없이 옳다고 믿고 있는 밑바탕 믿음(아봐타에선 이를 투명한 신념이라고 한다)을 탐사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런 밑바탕 신념 가운데 하나로 '삶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라는 믿음이 있다. 과연 그런가. 그것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일깨워 주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실은 그 반대로 우리 존재 자체가 존재의 유일한 목적일 수 있다는 일깨움이다. 왜 이런 인용을 지금 하느냐 하면 백수로서 그냥 지내다보면 뭔가 해야 하는데 그냥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를테면 자기검열로 인한 부담감이 느껴질 때 케이티의 이런 작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싶어서다. 이 땅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절로 백수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래된 백수로서 이제 백수의 길로 접어든 새내기 백수들에게 드리는 조언이기도 하다.  
내 일찌기 백수의 길로 들어 그 길에서 백수이신 스승을 만나 예까지 오면서 이 세상의 평화와 안녕을 이루는 길은 저마다 백수로 사는 길에 있음을 깨달았는데도 그럼에도 세상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욱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리 기를 쓰고 안달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 없다. 더구나 이제 선거철이라 경첩 지나 개구리 뛰어 나오듯 온 사방에서 모두 저마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평안하게 해 주겠다고 아우성이니 시끄러워 도무지 잠자리가 편하질 않다. 그런 이들만 좀 잠잠해도 세상이 한결 조용하고 편안해질테인데. 
세상이 하 답답해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해량하시길.

나의 스승은 백수였었다/
- 무위당 10주기에  

나의 스승은 백수였었다.
처음 스승을 만났을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스승은 그렇게 백수로 사셨다.
백수로 사셨기에 만날 사람 자유로이 만나셨고 
백수였기에 우리 또한 자유롭게 뵐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갖지 않았으니  
당신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으셨고
밥을 사고팔지 않으심으로 밥 속에 든 하늘을 보셨다.
백수였기에 얽매이지 않으셨고 
백수였기에 하는 일없이 하실 수 있었다.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음으로써 
절로 이루어짐을 즐겼다.
스승은 백수였기에 정신없이 달리지 않을 수 있었고
느릿느릿 걸으시거나 멈춰 서서 
나무도 보고 풀꽃도 만나며 
사람과 세상을 깊이 보듬어 안으면서 
땅과 하늘을 함께 바라 볼 수 있었다.
스승은 백수였기에 가진 것이 없었고 
가진 것이 없어서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다.
자동차가 없어 걸어 다니는 수고는 하였으되
자동차에게 소유 당하는 수모는 겪지 않으셨다. 
백수였기에 깊은 산골에 핀 난초의 향기로움을 
저자거리 한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었다.
백수였기에 멈춘 자리에서 우뚝한 나무가 되셨고 
백수였기에 걸림 없는 바람이 될 수 있었으며
스스로를 열고 낮은 데로 흘러 깊은 바다에 이르셨다..
나의 스승은 백수였었다.
그러고 보니 스승의 스승 또한 백수였었다.
스승을 닮아 살고자 하는 나 또한 
다행히 처음부터 백수이다.

백수의 꿈 /

일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안다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존재란 그대로 여여한 것이므로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매 순간을 다만 감사하고 즐길 뿐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한다는 것 또한 없다
때로는 바라는 것도 있고 
이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고 매달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이리 살아있음을 먼저 감사하고
존재 그 자체를 즐긴다
삶을 기쁨에 두는 것
언제나 기쁨에 머무는 것
그것이 삶의 만트라다
하는 일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여유를 잃지는 않는다
바쁘다는 것은 왕성한 호기심
설렘으로 이 또한 즐길 다름이다
소유하는 것이 소유당하는 것임을 알기에
가진 것이 없지만 성긴 그물을 스치는 바람처럼 여유롭다
덧붙여 꾸미지 않음으로써 가려졌던 아름다움이 환히 드려나게 한다
세상이 더 갖기 위해 정신없이 내닫을 때도 
느리게 걸으면서 길섶에 핀 들꽃에 오래도록 눈 맞추거나
때로는 돌아서서 걷는 것도 멋진 여정임을 안다
귀 기울려 듣는 것은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
언제나 겸손하지만 어디서나 당당하다
끼니를 구하기 위해 존재를 저당 잡히지는 않는다
세끼면 황송하고 두 끼면 넉넉하고
한 끼라도 족하다
달랑 숟가락 하나만 들고 남의 잔칫상에 가 앉더라도
감사하고 즐기며 마음모아 축복한다 
삶이란 한 바퀴의 순례
또는 무대 위를 뛰노는 한마당 연극 같은 것
멋진 경험하기거나 신명나게 즐기기일 뿐
매 순간을 활짝 가슴 열어 환하게 미소 짓기
쓸모없음이 쓸모인,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백수인 세상
그것이 꿈꾸는 세상이다
마침내 백수가 세상을 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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