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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



나를 흔든 책 - 우 떼자니야 사야도의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


이 책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쉐우민 수행센터)는 미얀마 쉐우민 센터의 선원장인 우 떼자니야 사야도가 수행자들에게 한 법문을 엮은 것이다.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교학보다는 수행을 강조하는 분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좌부쪽 스님들은 수행 법문을 할 때에도 교학적 해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경전이나 논서를 거의 인용하지 않고 수행 법문을 전개하고 있다. 스승인 쉐우민 우 꼬살라 사야도의 모습과 유사한 것 같다. 

사실 부처님 당시 제자들은 경전을 해박하게 알아서 아라한이 된 것이 아니다. 짧은 법문만 듣고 성자가 된 분들이 허다했다. 그런 측면에서 쉐우민 선원의 가풍은 초기 교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경전 공부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극단일 것이다. 지금 시대의 불자들은 '이끌어 주어야 하는 사람'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세한 해설도 필요한 것이다. 

내가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를 접한 것은, 2016년 가을 2박3일간 천안 호두마을에 머물 때였다. 호두마을 종무소에는 우 떼자니야 사야도의 법문집이 다량 비치되어 있었다. 호두마을은 한국에서 위빠사나 수행의 근거지 같은 곳이다. 그런데 호두마을 위빠사나 수행의 흐름을 보면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창기에는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방식이 대세였다. 중간에 파욱 사야도의 수행방식이 시도되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쉐우민 사야도의 수행방식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제 위빠사나가 한국에서 제대로 시작된지 30여 년이 되면서 수행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데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아무래도 초심자에게는 마하시 사야도 방식이 실천하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수행을 하다보면 그 단계를 초월한 분들이 생긴다. 그 분들에게는 쉐우민 사야도 방식이 더 적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굳이 수행방식에서 우열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자연스러운 마음챙김을 강조한다.


잊지 않도록 하는 것에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띠를 두는 것과 자신에게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사띠를 두는 것은 대상에 조금 집중해야 하므로 힘이 듭니다. 사띠를 두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쓰는 순간이 많아지다 보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또 한 가지는 자기 자신에게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음에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몸에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묻기만 해도 이미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가?'라고 묻기만 해도 이미 마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이 들어온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자신에게 일깨워 준다면 사띠는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사띠가 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무조건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일의 원리를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익이 있습니다. 수행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이 바뀌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쁜 마음에서 좋은 마음이 되도록, 질이 낮은 마음에서 질이 높은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참 중요한 말씀이다. 

오래 전, 불교학 연구자들과 '수행'이란 단어의 뜻이 '무수(無修)'냐, '불수(不修)'냐 같은 현학적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서로 간에 해결이 되지 않기에, 수행이란 용어의 원래 의미을 알아보자고 제안한 일이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수행에 해당하는 빨리어 '바와나'는 '선한 행위를 늘려가는 것'이란 뜻이다. 너무나 쉬운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 엉뚱하게 구업(口業)만 짓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무지가 원인인 것이다.


수행을 할 때에 '보고 들은 지식에 의한 지혜(聞慧)'와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지혜(思慧)'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지혜(修慧)'는 원인이 갖추어지면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먼저 보고 들은 지식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지식이 바르고 충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갖추기 위해 법문을 들어야 하고, 스승에게 묻고 상의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바르게 생각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우 떼자니야 사야도의 법문집이 여러 종 발간되어 있지만, 수행자들은 그 가운데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를 꼭 일독하시라 권하고 싶다. 수행에 대한 바른 관점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우 떼자니야 사야도의 법문집들이 모두 법보시로 발간되었기 때문에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쉐우민 수행센터에 연락하셔서 받으시거나, 해당 법회에 참석해서 받으시면 될 것 같다.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었을 때 수행하십시오.pdf


출처 : http://blog.daum.net/thanksbuddha/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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