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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삶의 나침반

노인과 바다 -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The Old Man and the Sea (1999) Alexander Petrov (한글 자막)



The Old Man and the Sea (1999) Alexander Petrov (영문 자막)


...헤밍웨이의 후기 대표작이자 195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산티아고 노인은 하바나에서 고기를 낚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이다.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는 이제는 노쇠하지만 이웃 소년 마놀린과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84일 동안 계속해서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소년을 다른 배의 조수로 보낸다. 
산티아고 노인은 혼자 먼 바다까지 나갔고, 그의 낚시에 거대한 돛새치 한 마리가 걸린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노인은 대어를 낚아 배 뒤에 매달고 귀로에 오른다. 그러나 돛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따라오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노인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노인이 가까스로 항구에 닿았을 때 그가 잡은 고기는 이미 상어 떼에 물어뜯겨 앙상하게 뼈만 남은 후다. 노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으로 가서 정신없이 잠든다. 노인이 잠든 사이 소년은 노인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의 귀결만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헤밍웨이의 허무주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물고기와 인간의 끈질긴 대결에서 헤밍웨이가 강조하는 것은 승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최후까지 위엄 있게 싸우느냐는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인간과 물고기가 벌이는 이 비장한 싸움에서는 승리나 패배라는 것이 있을 수는 없고, 오직 누가 끝까지 비굴하지 않게 숭고한 용기와 인내로 싸우느냐가 중요하다. 

물고기의 몸에 작살을 꽂고 밧줄을 거머쥔 채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노인, 작살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틀임치는 거대한 물고기, 물고기와 노인의 이러한 팽팽한 대결은 서로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영예로운 싸움이다. 그래서 노인은 스스로 곤경에 몰리면서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적에게 사랑과 동지애를 느끼며 외친다. 

 "아, 나의 형제여, 나는 이제껏 너보다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귀한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 자, 나를 죽여도 좋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이제 나는 상관없다."

 노인은 물고기와 자신이 같은 운명의 줄에 얽혀 있다고 느낀다. 물고기는 물고기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은 어부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규범에 순응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사흘 밤낮으로 이어진 싸움 끝에 결국 물고기는 죽어 물 위로 떠오르지만, 노인은 승리감보다는 물고기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때문에 상어가 돛새치의 몸을 물어뜯을 때마다 마치 자신의 살점이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물고기와 싸우면서 노인이 되뇌는 말,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ated)"라는 말이다.

인간의 육체가 갖고 있는 시한적 생명은 쉽게 끝날 수 있지만 인간 영혼의 힘, 의지, 역경을 이겨내는 투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지속되리라는 결의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말은 노인이 죽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해 상어와 싸우며 하는 말,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라는 말이다.

 삶의 요소요소마다 위험과 불행은 잠복해 있게 마련인데, 이에 맞서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행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그 싸움은 너무나 비장하고 슬프다.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는 희망, 누군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주리라는 희망, 내일은 내게 빛과 생명이 주어지리라는 희망, 그런 희망이 있어야 우리의 투혼도 빛나고, 노인이 물고기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은 삶에 대한 동지애도 생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 버리는 자살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마치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 같은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고통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침착성과 불굴의 용기로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간과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인물(?)이 또 있다. 그것은 돛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오는 상어 떼이다. 긴박하고 위험한 투쟁을 택하기보다는 남의 전리품을 약탈하기 위해 배를 공격하는 상어 떼는 노인과 돛새치와의 정정당당한 싸움과는 대조적이다, 이미 죽은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기 위해 노인을 쫓는 상어 떼는 비열하고 천박한 기회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이 상어 떼처럼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에 관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어른들이 걸핏하면 써먹는 상어 떼와 같은 수법, 즉 노력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 남의 것을 덥석 새치기하는 야비한 기회주의, 남이야 아파하든 말든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비열한 편의주의, 그리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 싸우기에는 너무 무서운 곳이라고 미리 단정짓고 불의인 줄 알면서도 군중에 야합하는 못난 패배주의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인의 상처투성이 손을 잡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계승을 다집하는 소년의 마음이 우리 학생들의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 장영희 선생님. [내생애 단한번]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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