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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바로보는 불교_무념 스님

툴파 이야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
고행자는 허공을 베어내어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툴파를 창조하려는 것이었지요.
툴파는 고행자가 고도로 정신을 집중하여
허공으로부터 만들어내려는 창조물을 말합니다.
허공을 압축하여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취하게끔 하지요.
그는 6년을 고행했습니다.
허공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허공이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고분고분해지면서 농도가 짙어지더니
키 작고 토실토실한 수도승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승이 되어 그의 앞에 섰습니다.
미소 띈 얼굴로.

툴파는 묵묵히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의 창조를 섬겼습니다.
1년이 꽉 차자 툴파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묵묵히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 맞서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화를 냈으며 점점 반항했습니다.
고행자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내 정신이 노예를 통제할 힘을 잃었단 말인가?
그는 가장 위대하고 어려운 툴파 해체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툴파는 이제 솟구쳐 오를 정도가 되었으니
해체당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둘의 싸움은 3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3년째 되던 어느 날 아침
고행자는 낭떠러지 바닥에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국기행' 중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는 옛날부터
사람들은 텅 빈 마음에서 번뇌를 일으켜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씁니다.
자아의식(유신견)을 창조하려는 것이지요.
자아의식이란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세뇌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창조물을 말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끝없이 드러내려는 마음을 뭉쳐서 원하는 형상을 취하게끔 하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무명 속에서 열심히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고요하고 텅 빈 마음은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마침내 자아의식이 되어 그들 앞에 섭니다.
미소 띤 얼굴로.

자아의식은 묵묵히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의 창조자를 섬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아의식이 성장하기 시작하자
예전처럼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탐욕을 일으키고 분노하고 애욕의 덪에 걸려 허덕이고 우울증에 걸리고 근심 걱정하고 저항합니다.
사람들은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정신이 자아의식을 통제할 힘을 잃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제 가장 어려운 자아의식 해체작업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아무리 관찰하고 사유해도 자아의식은 순순히 해체당하지 않습니다.
더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강하게 저항합니다.
울고 불고 한탄하며 강하게 저항합니다.
사람들은 자아의식과 열심히 싸우지만 승리할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아의식이 '나 자신'이라고 강하게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웃고울고 근심걱정하고 한탄하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사의 괴로움 속으로 휩쓸려갑니다.

- 석무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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